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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혐오 선동에 동참하는가

마라수 2025. 3. 7. 10:53

 

 

[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수술실의 칼, 골목길의 칼

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수술실의 칼, 골목길의 칼 칼 든 사람, 수술실선 의사·골목길선 강도 중요한 건 맥락 시대적 변화 읽어야 할 때 역사를 잊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고 그런데 왜 중국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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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조선일보 칼럼을 읽고 불쾌했다. 그의 글은 날카로운 통찰력은커녕, 낡은 ‘색깔론’ 칼날을 휘두르며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노골적으로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카시의 전당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것은 그의 속성을 들어낸 것이다.

칼럼 곳곳에서 묻어나는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적 사고와 근거 없는 ‘간첩 몰이’는, 건강한 사회 비판은커녕 극단적인 사회 분열과 혐오만을 조장할 뿐이다. 정녕 건축가가 아니라 ‘매카시즘’ 부활을 꿈꾸는 극우 논객을 자처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칼’ 비유로 본질 호도


유현준은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칼 이야기를 꺼낸다. 수술실의 칼은 의사의 칼, 골목길의 칼은 강도의 칼이라는 비유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칼날은 현실 분석이 아닌, ‘혐오’라는 목적지를 향해 춤춘다. 그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을 ‘배경’ 탓으로 단순화하며, ‘지정학적 변화’라는 거창한 포장지로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정당화한다. 정작 중요한 ‘맥락’은 외면한 채, 자신이 설정한 ‘배경’에 맞춰 칼춤을 추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배경 변화’는 기후 변화, 달러 패권 약화, 중국의 부상 등 거시적인 국제 질서 변화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문제는 그 ‘변화’라는 배경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 외국인 투표권, 반일 감정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싸잡아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일’로 규정하며, 이 모든 것이 ‘국내 친중 세력’의 ‘간첩 행위’ 때문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비약한다.

매카시즘 망령의 부활


유현준의 칼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실체 없는 ‘가면 쓴 세력’ 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아서 정책을 만들고 사회운동을 하는 세력”이 있으며, 이들이 “민주, 인권, 약자 보호, 워라밸이라는 가면”을 쓰고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자기편으로 흡수하고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섬뜩하고 위험한 발상인가? 마치 20세기 중반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일”이라는 자의적 판단과, “간첩 행위”라는 극단적인 단어 선택으로 자신의 주장을 포장할 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당연한 요구이며, 외국인 투표권은 민주주의 사회의 보편적 가치다. 반일 감정 역시 일본의 역사 왜곡과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한 미흡한 태도에서 비롯된 정당한 분노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비판 의식을 ‘간첩 세력’의 ‘공작’으로 매도하는 것은, 건강한 시민 사회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키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불온시’하는 극도로 위험한 발상이다.

뉴라이트 영향력은 외면,  진짜 위협은 감추기?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유현준이 현재 한국 사회의 진짜 위협은 외면한 채,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미미한 ‘북한 간첩’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0년간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하다 적발된 사례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이 뉴라이트 세력이 한국 사회, 특히 역사관과 교육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뉴라이트는 역사 왜곡, 식민사관 옹호, 친일 미화, 극우적 가치관 강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들은 교육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왜곡된 사관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작 경계해야 할 ‘칼’은 바로 눈앞에 휘둘러지고 있는데, 유 씨는 엉뚱하게 먼 곳의 칼 그림자만 쫓고 있는 것이다.

혹시 유현준은 자신의 형이 몸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혐중’ 정책 기조에 발맞춰, 극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안보’ 팔이에 나선 것은 아닌가? 진짜 위협은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 선거권과 주권 문제


외국인 지방선거권 확대는 2005년 참여정부 때 논의되었으나, 실제 법안 통과는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이루어졌다. 이 정책의 근본적 추진 세력은 2000년대 초반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개방 정책을 주창한 보수 재계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3년 외국인 투표권 확대가 외자 유치에 필수적이라며 압력을 행사했다.

유현준은 영주권자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것을 두고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영주권자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근본 취지는 그들이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이다. 한국 거주 영주권자들은 주민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주민세는 지방세이기에 그들이 납부하는 세금만큼의 참정권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2024년 기준 영주권자(F-5)의 숫자는 20만 2천 명에 불과하며, 이들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어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도 한국 영주권자인 자국민들의 투표 성향보다는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훨씬 더 중요한 관심사일 것이다.

 

‘혐오 선동’, 칼럼 가장한 ‘극우 팸플릿’


유련준 씨는 자신의 주장이 “혐중이 아니라 현실 직시”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의 칼럼 어디에도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나 균형 잡힌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극단적인 이분법, 근거 없는 의혹 제기, 혐오 표현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의 칼럼은 ‘현실 직시’가 아니라,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날카로운 칼날을 쥐여주는 ‘극우 팸플릿’과 다름없다.

유현준 씨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축가인가? 아니면 낡은 ‘색깔론’ 칼날을 휘두르며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극우 선동가인가? 부디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깨어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건설적인 사회 비판에 동참하길 바란다. 더 이상 ‘칼’ 비유로 포장된 혐오 선동을 멈추고, 진정으로 ‘맥락’을 읽는 지성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