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늦는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들썩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 언론의 책임

왜 진보정권만 들어서면 아파트값이 오르는가?
아이러니하다. 부동산 가격은 보수정권에서 오를 것 같은데, 정작 보수정권이 대출 풀고 세제 완화하고 재건축 규제도 풀어주며 열심히 부동산 부양에 나설 때는 시장이 싸늘하다. 그런데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대출 조이고, 양도세 강화하고, 다주택자 규제하며 시장을 조이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집값은 폭등한다. 규제를 하면 떨어지고, 풀면 오른다는 시장의 기본 상식이 왜 한국에선 정반대로 작동하는가?
첫째, 기대심리의 역설이다. 보수정권의 규제 완화는 시장에 이렇게 들린다. “곧 무너질 테니 마지막으로 팔아라.” 시장은 정책의 방향보다 정책의 신뢰도를 본다. 부동산을 직접 가진 이들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과 다르다. 세금 감면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집값이 오를 거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집값은 단순히 ‘규제의 강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가격을 띄울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가 먼저다.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푼 게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둘째, 공급 사이클의 시차 효과다. 부동산은 타이밍 게임이다. 집값이 오르기 시작할 때는 이미 수년 전의 공급정책이 작동한 결과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을 거치며 서울의 아파트 공급은 꾸준히 줄었다. 그 결과가 문재인 정부 중후반기와 윤석열 초기에 터졌던 공급 부족의 공포였다. 그런데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사람들은 ‘이제라도 집 사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매수세가 일면서 가격은 상승하고, 언론은 ‘좌파 정권은 집값을 못 잡는다’며 뒤통수를 친다.

셋째, 패닉바잉의 촉발자는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보수정권 집값 상승기엔 ‘거래절벽’과 ‘심리위축’을 운운하며 부동산 폭락론을 펴다가, 진보정권 들어서면 하루가 멀다 하고 ‘집값 폭등’, ‘지금 안 사면 큰일’이라는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낸다. 특히 포털 메인에 걸리는 기사 제목은 한결같이 불안을 자극한다.
“‘벼락거지’ 안되려면 당장 사야…돈 풀리면 무조건 떡상”, “‘지금 사면 늦나요’…또 시작된 벼락거지 악몽”과 같은 기사들은 특정 단지 가격의 단기 급등을 전체 시장의 흐름처럼 과장한다. 이런 보도는 서울 강남 3구에 집중돼, 전국 단위의 주택 심리를 왜곡시키고 시장의 객관적 인식을 흐린다. 언론이 쏘아 올린 프레임 하나가 수백만 시민을 부동산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와 관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이미 2015년 논문에서 언론 보도가 부동산 시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84%가 부동산 보도가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언론은 단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시장 조성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미친’, ‘폭등’, ‘대란’, ‘패닉’, ‘세금폭탄’ 같은 단어들은 뉴스라기보단 자극적 홍보문에 가깝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단지 기사 클릭을 유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책 효과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의 파괴력을 지닌다.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발표되는 순간, 언론은 “이러다 진짜 대출도 못 받는다”는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렇게 다시 매수세가 붙는다. 정부가 대출을 조일수록 언론은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신호를 대중에게 흘리고, 시장은 그 신호를 따라 움직인다.

이 구조에서 언론이 왜 자극적인 보도를 반복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광고 수익의 상당 부분이 건설사와 부동산 관련 업계에서 나오고, 주요 언론사의 대주주에 건설기업이 얽혀 있는 현실은 언론이 독립성을 상실하고 ‘건설 카르텔의 외곽 홍보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 언론 기사 댓글에는 “건축회사가 전언론의 대주주이다 보니…”라는 탄식이 달릴 정도다. 심지어 언론은 자신들이 부추긴 집값 상승을 사설에서는 ‘경고’하는 모순된 행동까지 한다. 이는 시장의 불합리성과 언론의 이중 플레이가 맞물려 ‘가격 조작’에 가까운 집값 변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넷째, ‘믿고 사는’ 보수정권, ‘무서워서 사는’ 진보정권이라는 심리 프레임이 작동한다. 보수정권에서는 “정권이 해줄 수 있는 게 여기까지구나”라는 자포자기 심리가 깔린다. 시장은 공급만 풀면 오른다는 단순 논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정권에서는 규제의 강도가 너무 세서 “혹시 내년엔 진짜 대출 자체가 막히는 거 아냐?”, “이번 정부 끝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사자”는 공포심리 기반 수요가 터진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섯째, 부동산을 자산이 아닌 권력으로 보는 시선의 차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들이 나온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개발 이익 환수, 공공임대 확대 등은 자산시장에 일종의 ‘불확실성’을 만든다. 그런데 그 불확실성이 더 큰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반작용이 생긴다. 특히 서울 중심부에 집을 가진 자들은 이를 ‘정부를 이기는 게임’으로 해석한다. 정권은 바뀌고 정책은 무력화되며, 결국 다시 오른다고 믿는다. 그래서 산다.
결론적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건,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의 정치적 반응 때문이다. 부동산은 이제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정치의 결과물이 됐다. 가격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정권의 ‘지배력’과 시장의 ‘반작용’ 사이에서 결정된다. 보수정권은 시장을 이끌 능력이 없고, 진보정권은 시장을 바로잡으려다 시장을 자극한다. 결국 집값은 오르고, 책임은 진보정권이 뒤집어쓴다. 이 기형적인
구조야말로, 한국 부동산의 가장 정치적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