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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넷플릭스,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의 완벽한 날들

스포주의: 아래 감상문은 영화의 주요 장면과 엔딩까지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이 영화는 거장 빔 벤더스가 연출하고,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놀랍게도 단순하다.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일상이, 볼수록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영화다.

줄거리: 반복되는 하루, 하지만 단 한 번뿐인 하루

히라야마의 하루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웃집 노파가 빗자루질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침구를 정리하고 양치와 면도를 마친 뒤 분재에 물을 준다. 이어서 전날 현관에 가지런히 준비해 둔 소지품을 챙겨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는다. 작업용 밴에 올라 루 리드나 패티 스미스 같은 올드 팝 테이프를 틀고 출근길에 오른다.  

일터에서의 청소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거의 수행과 같다. 변기 구석구석을 거울로 비춰가며 닦는 그의 손이, 마치 세상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점심에는 항상 같은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인 코모레비를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퇴근 후는 대중목욕탕에서 씻고, 역주변 단골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밤에는 헌책방에서 산 문고본을 읽다 잠이 든다. 그리고 잠들면 흑백의 꿈이 찾아온다.


이런 규칙적인 일상 속에 작은 파동들이 일어난다. 철없는 동료 타카시, 불쑥 찾아온 가출한 조카 니코, 오랫동안 소원했던 여동생과의 만남, 그리고 죽어가는 이자카야 여주인의 전남편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 그러나 히라야마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루틴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출근길 차 안에서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듣고 있는 히라야마의 얼굴로 끝이난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복합적인 히라야마 표정이  롱테이크로 펼쳐지면서...


퇴근이 하루의 진짜 시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뜨는 아침을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상식에 반기를 들고 싶어졌다. 히라야마에게 하루의 진짜 시작은 퇴근 이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서다.

아침부터 낮까지의 시간, 즉 기상 — 출근 — 청소 — 점심 — 퇴근까지는 그가 사회 속에 섞여 사는 시간이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청소부'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적적히 차별과 무례함을 견뎌야 한다. 놀이터 화장실에서 아이를 구해준 후, 아이 엄마가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아내는 장면이 안타깝다. 선행을 했음에도 '더러운 것' 취급을 받는 그 순간은, 히라야마 자신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적 폭력과 다름없다. 공원 벤치에서 옆 여자에게 가벼운 미소로 인사했을 때 받은 차갑고 경계하는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퇴근 후는 다르다. 작업복을 벗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갈아입는 순간, 비로소 사회적 껍데기를 벗고 온전한 '히라야마'라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목욕탕은 단순한 씻기가 아니라 재탄생의 의식과 같다. 노동의 땀과 타인들의 편견을 씻어내고, 가장 깨끗한 상태로 자신만의 시간을 맞이하는 준비이다. 저녁 식사, 독서, 그리고 꿈까지. 이 모든 것이 '진짜 삶'의 활동 시간이다.


이를 한 단계 더 밀어보면, 이 영화는 "저녁을 살기 위해 아침이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중요한 일을 거의 다 수면 중에 한다. 뇌는 낮 동안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고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며 손상된 세포를 복구한다. 즉, 깨어있는 시간은 잠든 시간에 이루어질 거대한 창조와 복구를 위해 재료를 수집하는 시간이다. 사회가 정해준 '노동 시간을 중심으로 한 하루'를 뒤집어, '밤을 중심으로 한 하루'로 재구성하면 삶의 주도권이 완전히 달라진다. 히라야마가 퇴근 후 목욕탕 문을 밀고 들어가는 그 순간은 바로 그 주도권을 되찾는 혁명적인 순간이다.

카세트테이프는 닻이다

디지털 AI가 취향을 분석하고 1초 만에 원하는 곡을 찾아주는 초고속 세상에서, 히라야마는 직접 테이프를 고르고 데크에 끼워넣고 되감는 물리적인 수고를 기꺼이 한다. 이는 단순히 옛날 물건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카세트테이프는 히라야마가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게 잡아주는 닻과 같은 존재이다. 디지털 음원의 깨끗한 복제와 달리, 테이프 특유의 약간의 잡음과 늘어짐은 흠집 많고 불완전한 우리네 인생을 닮은 것이다. 동료 타카시가 그 테이프들이 돈이 된다며 팔자고 했을 때 히라야마가 보인 거부 반응은, 테이프가 그에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고유한 기억과 감정의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영화 자체도 이 테이프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현란한 편집이나 기교 없이 그저 그가 테이프를 듣고 운전하는 모습을 묵묵히 따라간다. 이건 관객에게 "잠시 멈추어서 진짜 인간의 속도가 무엇인지 느려보라"는 권유와 같다. 효율성만 따지느라 마모되어 가는 현대인의 감성에 조용한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루틴 안에서의 자유

루틴은 자유의 반대처럼 느껴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관속에 갇힌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상식을 뒤집는다.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면 인간은 오히려 불안해진다. 매일 아침 "오늘 뭐 하지?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선택의 형벌이 된다. 히라야마는 생활의 기본 골격을 루틴으로 고정하고, 그 덕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에너지'를 '느끼고 감각하는 에너지'로 온전히 돌린다. 몸은 기계처럼 움직이지만, 정신은 온전히 깨어 나뭇잎의 흔들림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얻는 셈이다.

게다가 루틴은 캔버스와 같다. 화가에게 무한히 넓은 공간을 주면 막막하지만, 사각의 틀이 있으면 그 안에서 마음껏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 히라야마에게 매일 똑같은 일과라는 '틀'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주들이 더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새로운 빛, 낯선 사람, 날씨의 변화. 틀이 없다면 그의 하루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 덩어리였겠지만, 루틴이라는 틀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작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루틴이 누가 만든 규율인지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반복은 노동이고 지옥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서 스스로 정한 반복은 의식이자 수양이 된다. 히라야마는 과거의 억압적인 가족 관계와 사회적 지위에서는 과감히 도망쳤지만, 스스로 선택한 루틴이라는 약속에는 더 단단하게 서있다. 재즈 연주자가 일정한 박자 위에서 자유롭게 즉흥 연주하듯, 루틴이라는 단단한 대지 위에서 비로소 춤추듯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다카시라는 사람...

다카시는 시끄럽고, 지각하고, 돈도 빌려달라 하는 철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다운증후군 아이를 대하는 장면을 보면 그의 진짜 알맹이가 드러난다. 그는 그 아이를 전혀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귀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고, 마치 동네 꼬마 친구를 대하듯 자연스럽고 대등하게 소통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향한 어설픈 동정도, 불편한 기색도 전혀 없다.


이걸 놀이터 아이의 엄마와 비교해보면 다카시의 훌륭함이 더 선명해진다. 엄마는 겉모습은 번듯하고 사회적 매너를 갖춘 듯하지만 속엔 차가운 차별과 편견이 자리 잡아 있다. 다카시는 겉모습은 껄렁하고 말도 거칠지만, 약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수평적이고 다정한 마음을 보여준다. 다카시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직 덜 여문 사람일 뿐이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와 욕망에 휘둘리는 중이지만, 밑바닥에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건강한 마음이 깔려 있다.

이 영화는 보면 보수록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준다.

코모레비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

히라야마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는 무엇일까?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니면 일하는 것도 아니다. 점심시간에 올림푸스 펜 카메라를 들어올리는 순간, 바로 코모레비(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를 채집하는 행위이다.


다른 모든 일과가 생존과 생활을 유지하는 루틴이라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셔터를 누르는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미학적이고 영적인 행위이다. 그는 매일 똑같은 장소, 똑같은 벤치에 앉지만 그가 찍는 빛과 그림자는 매일 다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다는 사실을 그 뷰파인더를 통해 확인하는 셈이다.

앞서 말한 "저녁을 위한 재료 수집"이라는 관점에서보면, 이 행위야말로 그날 밤 꿈이라는 캔버스에 그려질 가장 중요한 물감을 구하는 시간이다. 낮 동안 육체노동을 하며 몸을 깨우는 것은 예열 과정이고, 찰나의 빛을 필름에 담는 순간이 그날의 핵심이다.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상자에 분류되어 쌓여있는 모습은 허투루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알차게 수확해낸 인생의 증거들이다.

흑백의 꿈과 내면의 풍요

잠들면 찾아오는 흑백의 꿈 시퀀스는 단순히 지난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 아니다. 이것은 히라야마가 낮 동안 마주쳤던 코모레비와 그날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그의 내면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시이다.


낮에 필름 카메라로 포착하려 했던 빛과 그림자의 찰나가 밤에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흐릿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는 그가 흘려보낸 하루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고유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히라야마의 풍요로운 내면세계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낮 동안 스쳐 지나간 낯선 이의 몸짓이나 조카 니코의 웃음, 거리의 풍경들이 꿈속에서 겹쳐지고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가 세상을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깊은 상처를 딛고 선택한 따뜻함

히라야마의 따뜻한 시선과 미소를 보면 처음엔 상처받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세상의 작은 것들에게 깊은 애정을 쏟는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 곳곳에 숨겨진 단서들을 연결해보면, 그의 따뜻함은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라 깊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 선택한 단단한 삶의 태도에 가깝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동생과의 만남에서 그가 부유하지만 억압적인 가정환경에서 큰 갈등을 겪고 뛰쳐나왔음을 알 수 있다. 기사가 딸린 고급 세단을 타고 온 여동생, 아버지가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에 그가 보이는 거부 반응, 그리고 여동생을 떠나보낸 뒤 혼자 오열하는 장면. 그 눈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의 대가이자, 과거의 자신과 다시 한번 작별하며 흘리는 진혼곡과 같다.


히라야마는 과거의 그림자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로 현재의 삶을 긍정한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작고 사소한 것들인 나무와 햇살, 낯선 사람들에게 더 깊은 애정을 쏟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타인의 고독과 세상의 그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과 음악이 말하는 내면의 균형

평소 나무를 사랑하고 햇살을 즐기는 평온한 히라야마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처음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살인과 광기, 죄의식을 다루는 작가인데. 그런데 '과거와의 연결고리'로 해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설 <테라핀>의 주인공 소년 빅터는 숨 막히게 통제하는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히라야마도 현실에서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신분과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청소부가 됨으로써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삶'을 죽여버린 것과 같다. 그 책은 그가 왜 그 집에서 뛰쳐나왔는지의 당위성을 확인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조카 니코가 그 책을 보고 "이거 나랑 똑같아"라고 했을 때 히라야마가 말리지 않았던 것도, "너도 그 집에서 숨이 막히는구나, 나도 그랬단다"라는 무언의 공감이었을 것이다.


코다 아야의 수필집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스스로 수액을 내어 상처를 감싸고 옹이를 만들어 단단해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상처받은 과거가 있지만 현재를 단단하게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태도와 완벽하게 겹친다. 그는 낮에는 몸을 움직여 빛을 쫓고, 밤에는 책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두 번 등장하는 이유

애니멀스의 원곡이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나오고, 단골 이자카야의 여주인이 같은 곡을 일본어로 부르는 장면. 같은 노래가 두 번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의도적인 장치이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사실 매일이 새롭고 다르다"는 것이다. 멜로디는 같지만 누가 부르느냐, 어떤 언어로 부르느냐, 어떤 공간에서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는 히라야마가 매일 같은 공원 화장실을 닦지만 그날의 햇살과 마주치는 사람에 따라 매일이 다른 퇴근 후의 날이 되는 것과 완벽하게 대구를 이룬다.

원곡은 그가 동경하는 서구의 팝 문화와 고독한 세계를 상징하고, 여주인이 부르는 일본어 버전은 그 곡이 일본이라는 토양에 뿌리내려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섞인 현실의 노래로 변주된 것이다. "Rising Sun"은 원래 뉴올리언스의 감옥이나 유곽을 뜻하지만, 문자 그대로는 '해가 뜨는 집', 즉 일본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양의 노래가 해가 뜨는 나라의 노동자 히라야마의 삶에 들어와 주제가가 되었다는 점, 이것은 빔 벤더스가 일본 문화와 서양 문화를 융합하고 싶었던 것을 보여주는 재치 있는 선곡이다.

질투와 담배, 그리고 운명의 실

이자카야 여주인을 향한 히라야마의 마음은 영화 속에서 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둘이 부둥켜 안고 있는 장면을 본 후,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 세 개와 담배를 산다. 평소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한 모금 빨아들이자마자 콜록거리며 괴로워한다. 루틴의 수호자인 그가 밤늦게 강가에 앉아 술을 마신다는 건, 내일의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 있다. 그가 홧김에 산 그 담배와 라이터 덕분에 뒤따라온 전남편과 대화가 트이게 된다. 전남편이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했을 때, 평소의 히라야마라면 라이터가 없었을 텐데. 그 엉성한 질투가 두 남자를 이어 주었고, 그림자 놀이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픈 질투조차도 이야기를 완성하는 소중한 조각이 된 것이다.

전남편의 제안과 두 그림자의 겹침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흔드는 장면 중 하나는 전남편이 이자카야 여주인에게 "사과하고 싶다. 아니 그것보다 감사를 하고 싶다...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라고 하는 순간이다.

전남편은 암이 전이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사과나 감사 같은 단어들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한 표현이다. 그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은 한때 인생을 공유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지금은 각자의 몫을 살아가고 있는 생에 대한 애틋함이 뒤섞인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다. 과거에 죽고 못 살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던 일들도 지나가는 바람처럼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거운 감정을 털어놓은 직후, 두 중년 남성이 아이들처럼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한다. 히라야마는 두 그림자가 겹치면 그대로 진해진다는 사실을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확인한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을 확인한 것을 넘어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던 그가, "사람과 사람이 겹쳐지면 분명히 무언가 변한다"는 것을 긍정하게 된 셈이다.


전남편은 히라야마가 이자카야 여주인을 향한 마음을 눈치를 챈거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접근해서 "그녀를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죽어가는 남자가 남길 수 있는 가장 무겁고 진실한 유언이다. 그리고 그 말은 히라야마에게 "당신은 그녀 곁에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인증과 다름없다.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더 뚜렷해진다. 이것이 히라야마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두 사람의 고독한 그림자가 겹쳐져서 남은 생을 더 짙고 따뜻하게 만들어가길, 그것이 감독이 열어둔 희망의 여백이다.

마지막 표정 —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한 얼굴

영화의 마지막 롱테이크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운전하며 웃다가 우는 히라야마의 얼굴이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가사는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나는 기분이 좋아"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히라야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그의 눈물은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이 새로운 아침을 온몸으로 긍정하겠다는 숭고한 의지이다.


지난 며칠간 여동생과의 만남으로 과거의 상처가 들쑤셨고, 이자카야 여주인을 향한 질투도 느끼었고, 죽어가는 전남편을 만나 죽음의 그림자까지 봤다. 그 모든 인생의 쓴맛을 삼켜낸 뒤, 다시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며 느끼는 벅차오름이다.

그리고 이 표정은 인간 코모레비와 같다. 영화 내내 그는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었던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코모레비가 된다. 웃음과 울음이 시시각각 교차하며 일렁인다. 기쁨과 슬픔은 분리된 감정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처럼 한 몸으로 섞여 있다는 것을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말없이 웅변한다.

바로 전날 밤 죽어가는 전남편과 그림자를 밟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보고 난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살아서 운전대를 잡고, 바람을 맞고, 음악을 듣고 있다는 생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너무 슬프거나 기뻐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압도적으로 다가와서 터져나오는 영혼의 전율이다.

텅 빈 의자와 완벽한 날들

히라야마의 일상은 정갈하게 가꿔진 정원과 같다. 그런데 그 정원 한가운데에 사람이 앉을 의자가 딱 하나만 놓여 있다. 그 쓸쓸함은 공유되지 못한 아름다움에서 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의 취향과 침묵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어떤 풍경이었을까. 둘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같은 나무를 올려다보고, 저녁에는 각자의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서로에게 읽어주는 날. 그렇게 매일 찍은 코모레비 사진을 함께 보며 “오늘은 빛이 참 좋았네”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이 내가 동경하는 일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빔 벤더스 감독은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을 일부러 비워둔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히라야마가 세상의 아주 작은 소리나 빛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일상의 성자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에 이자카야 여주인이 앉을 것 같은 희망을 영화는 남긴다. 두 그림자가 겹치면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히라야마 스스로가 확인했었으니까. 그 확신이 있었기에, 이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삶과 그녀의 삶을 겹쳐볼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거창한 사건이 없어도,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을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햇살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완벽한 하루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고독을 슬픔이 아닌 기쁨의 상태로 승화시킨 사람"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예술은 화려함에서가 아니라, 가장 작고 사소한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영화의 탄생 배경: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영화 <퍼펙트 데이>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시부야 구내 17개 장소에 공중화장실을 리노베이션하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서 탄생했는데, 타다오 안도, 시게루 반, 켄고 쿠마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 빔 벤더스 감독이 깊이 감명받아 단편영화 제안을 장편영화로 확장해 완성한 작품이다.

벤더스는 공중화장실이 신분과 나이를 무엇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공간이라는 점에 매료되었고, 그 공간을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관리하는 청소부의 삶과 연결하여 사회적 존엄의 이야기로 이끌었다.

각 화장실은 건축가마다 전혀 다른 설계 철학으로 지어져 그 자체가 작품이므로, 영화를 보면서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들의 디자인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도 적은 것은 아니다.

영화 자체가 성공한 덕분에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높아졌으며, 화장실 홍보라는 작은 출발점에서 깊은 인간적 감동을 담은 영화로 거듭난 이 과정 자체가, '평범한 것의 아름다움'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증명하는 뒤얘기가 되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OST 전체 목록


1.The House of the Rising Sun - The Animals (1964) 소개: 영화의 오프닝을 여는 곡이자 히라야마의 하루를 시작하는 출근길 노래. 미국의 구전 민요를 록으로 편곡하여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히라야마의 고독하지만 힘 있는 일상을 대변한다.
https://youtu.be/N4bFqW_eu2I?si=2NMPmzUAJWrghdZ4

The Animals - House Of The Rising Sun (Music Video) [4K HD]

The Animals House Of The Rising Sun Music Video from 1964 in stunning 4K HD for the first time.🎧 Listen on Spotify - https://lnk.to/RisingSunSpotify🎶 L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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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ale Blue Eyes - The Velvet Underground (1969)
소개: 루 리드가 쓴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발라드 중 하나다. 불륜을 다룬 가사지만, 멜로디는 한없이 부드럽고 멜랑꼴리하다. 히라야마의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곡.
https://youtu.be/KA4DPrEtlZM?si=UKNi_2WdjvO8zXTf

더 벨벳 언더그라운드 - Pale Blue Eyes 『가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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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 Otis Redding (1968)
소개: 오티스 레딩의 유작이자 소울 음악의 영원한 명곡. 부두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바라본다는 내용이, 특별한 사건 없이 하루를 관조하는 히라야마의 삶과 꼭 닮아 있다. 휘파람 소리가 인상적이다.
https://youtu.be/rTVjnBo96Ug?si=QIJOdpVCgj4WrGX8

Otis Redding -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Official Music Video)

Watch the official video for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by Otis Redding. The video features video clips and photos of Otis Redding in the prime of h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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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Redondo Beach - Patti Smith (1975)
소개: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의 데뷔 앨범 수록곡. 경쾌한 레게 리듬과 달리 자살한 여인을 노래하는 비극적인 가사가 대조를 이룬다. 히라야마의 음악 취향이 상당히 힙하고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https://youtu.be/H4iksb1HG9E?si=3fuW250c7UNUg32P

Redondo Beach

Provided to YouTube by Arista/LegacyRedondo Beach · Patti SmithHorses℗ 1975 Arista Records LLCReleased on: 1975-12-13Composer, Associated Performer, Lyric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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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Walkin' Thru the) Sleepy City - The Rolling Stones (1975)
소개: 롤링 스톤즈의 미발표 곡을 모은 앨범에 수록된 숨은 명곡. 도쿄의 새벽이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히라야마의 낡은 밴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드라이빙 뮤직이다.
https://youtu.be/fRDtVsAvM-8?si=-R1k6rjPxmL3M48e

The Rolling Stones - (Walkin’ Thru The) Sleepy City (Official Lyric Video)

“(Walkin’ Thru The) Sleepy City” by The Rolling Stones Composers: Mick Jagger, Keith Richards Lyrics: Walkin' thru’ the sleepy city In the dark it looks so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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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Perfect Day - Lou Reed (1972)
소개: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를 관통하는 곡. "당신과 함께라면 완벽한 하루"라는 가사지만, 어딘가 슬프고 위태로운 정서가 깔려 있다. 삶의 양면성(빛과 그림자)을 상징하는 핵심 트랙이다.
https://youtu.be/9wxI4KK9ZYo?si=1DMc92M0-iNl-UCc

Lou Reed - Perfect Day (Official Audio)

Official Audio for ”Perfect Day” by Lou ReedListen to Lou Reed: https://loureed.lnk.to/listenYDWatch more videos by Lou Reed: https://loureed.lnk.to/listen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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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Aoi Sakana (푸른 물고기) - Sachiko Kanenobu (1972)
소개: '일본의 조니 미첼'이라 불리는 가네노부 사치코의 사이키델릭 포크송. 히라야마의 컬렉션 중 유일한 일본 팝 음악으로, 몽환적이고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https://youtu.be/Aq0mdsX7WSw?si=H-EAci9W0BtRXxF3

Sanchiko Kanenobu - Aoi Sakana (Blue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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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Sunny Afternoon - The Kinks (1966)
소개: 나른하고 게으른 오후의 햇살이 느껴지는 곡이다. 부유층의 몰락을 풍자하는 가사지만, 곡의 분위기 자체는 제목 그대로 화창한 오후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https://youtu.be/TYIl6n_SRCI?si=28xfnDgAXlgYUmUG

The Kinks - Sunny Afternoon (Official Audio)

#TheKinks60 #TheKinks #TheJourneyThe Kinks are launching a 60th Anniversary Celebration of their illustrious musical career, confirming their vital import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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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Brown Eyed Girl - Van Morrison (1967)
소개: 전주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올드 팝의 고전. 히라야마의 과거 추억이나 소소한 기쁨을 상징하는 듯한 경쾌하고 따뜻한 곡이다.
https://youtu.be/UfmkgQRmmeE?si=M6Y8I7BbjGjyfUpP

Van Morrison - Brown Eyed Girl (Official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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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일본어 버전) - Maki Asakawa (영화 내 가창: 이시카와 사유리)
소개: (중요) 이자카야 여주인(마마)이 가게에서 부르는 노래. 아사카와 마키의 번안곡을 원곡으로 하며, 엔카의 한(恨)과 삶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어 히라야마의 심금을 울린다.
https://youtu.be/7KmAPOisNXY?si=Bf4ktYFq2AeVhjc5

Asakawa Maki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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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Feeling Good - Nina Simone (1965)
소개: (중요)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곡.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을 노래하며 자유와 해방감을 폭발시킨다. 야쿠쇼 코지의 마지막 롱테이크 연기와 결합되어 전율을 선사한다.
https://youtu.be/oHs98TEYecM?si=lRR7x8w6ehT-JwZZ

Feeling Good - Nina Simone (1965)

"Feeling Good" (also known as "Feelin' Good") is a song written by Anthony Newley and Leslie Bricusse for the 1964 musical "The Roar Of The Greasepaint—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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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Komorebi (Score) - Patrick Watson
소개: (중요) 히라야마가 잠들 때마다 나오는 흑백 꿈 장면의 배경 음악. 캐나다 뮤지션 패트릭 왓슨이 작곡했으며, 낮 동안의 빛과 소리가 무의식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몽환적인 앰비언트 사운드로 표현했다.
https://youtube.com/shorts/0nillvLHHJE?si=GVA2uq4l8v379rJQ

Perfect Day (piano Komorebi version) out now! #winwenders #oscars #loureed #perfect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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