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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넷플릭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주의
스포가 포함된 글이니 영화를 먼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03년 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개봉 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어른다운 감정, 어른다운 행동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어른다움'에 있다. 결혼 2년 차인 샬럿은 아직 관계와 감정에 서툰 젊은 여성이고, 결혼 25년 차인 밥은 중년의 권태와 상실감에 빠진 남자다. 자칫 통속적인 불륜으로 흐를 법한 위험한 설정임에도 영화는 세속적인 욕망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늘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서 찾아오지만, 그 감정을 모두 손에 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난잡한 욕심이 되고 말 것이다. 이들이 나누는 사랑은 활활 타오르다 재가 되는 불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은은한 온기가 전해지는 따뜻한 무엇이다.

키스

영화 마지막, 밥이 길거리에서 샬럿에게 키스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딥키스나 프렌치키스가 아닌, 가벼운 키스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담긴 의미는 깊다.

그 키스는 그동안 쌓인 감정의 찌꺼기, 예를 들면 욕정 같은 것을 다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키스가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키스. 마침표를 찍는 키스. 서로를 축복하며 보내주는 키스였다.

키스 후 택시를 타고 떠나는 밥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밝고 자연스러운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 마음과 정신의 평화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어른다운 행동이었다.

외로움이 닿은 자리


젊은 유부녀와 중년 남성의 만남이라는 설정은 자칫하면 불륜 멜로나 중년의 치기 같은 통속적인 이야기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이 차이에서 오는 권력 관계나 욕망의 추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두 사람이 서로를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밥은 샬럿을 젊음으로 소비하지 않았고, 샬럿은 밥을 아버지 같은 의지처로만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같은 외로움을 겪는 두 사람이었고, 인생의 다른 지점에서 비슷한 혼란을 느끼는 영혼들이었다.

소피아 코폴라는 관객을 선정적인 자극으로 끌지 않았다. 대신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의 결을 믿고 보여줬다. 덕분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른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정을 머무르게 하는 어른다움


밥과 샬럿이 도쿄에서 느낀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있고, 책임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모든 감정을 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성숙함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선택하지 않을지 아는 것, 아름다운 순간을 아름답게 남겨두는 것이 어른다움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밥이 샬럿의 귀에 속삭이는 말을 관객에게 들려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감정은 굳이 설명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장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


다만 이 아름다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바로 일본 문화를 다루는 시선이다. 영화 속 일본인들은 주인공들의 이질감과 소외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우스꽝스러운 장치로 소모된다.
과장된 영어 발음이나 TV 프로그램, 병원 장면 등에서 일본인 캐릭터들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배경 소음처럼 그려진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본 일본의 '이상함'을 코미디 소재로 삼은 점은 실제 일본 관객들에게는 꽤나 불쾌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문화적 이해 없이 타자의 문화를 도구로만 사용한 오리엔탈리즘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른다움이 남긴 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세속적이지 않은 사랑, 추하지 않은 이끌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어른다운 감정과 어른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의 성숙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도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사랑. 이 영화가 23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여운 때문이 아닐까?


번외

영화의 배경인 2000년대 초반 도쿄는 세계 최첨단 도시였다.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신주쿠와 시부야는 과잉된 정보와 소음으로 넘쳐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묘하게 고립돼 있다.

이 시기의 일본은 여전히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지만, ‘잃어버린 10년’의 후유증 속에서 사회 전반에 무기력과 정체감이 깔려 있었다. 영화에 흐르는 정서 역시 번쩍이는 도시 풍경과 달리 차분하고 공허하다. 호텔이라는 공간, 자동화된 일상, 정중하지만 거리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시대 일본의 분위기를 은근히 반영한다.

스칼렛 요한슨은 1984년 11월 22일생으로, 2002년 도쿄에서 진행된 촬영 당시 17세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5살 많은 20대 중반의 유부녀 '샬롯'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영화가 개봉한 2003년 하반기 시점에는 18~19세였다. 상대 배우였던 빌 머레이는 당시 52세로, 두 사람의 실제 나이 차이는 35살에 달했다. 

그녀는 수차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선정될 만큼 완벽한 이목구비와 비율을 자랑한다.

또한 영화 <Her>에서는 목소리 출연만으로도 관객을 매료시키며 제8회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