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타임라인을 채우는 비현실적인 장면들 속에서, 청소년불가 등급의 호러물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우리 수준이라면, 우리는 큰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K 열풍은 신기루고, 대한민국은 사상누각이다. 윤석열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45년 만에 벌어진 계엄령 선포는 우리 사회 엘리트층의 몰상식과 비루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국가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의 비겁한 침묵은 집단사고와 천박한 기회주의의 전형이며, 무책임한 복종주의의 향연이었다
"생각이 없으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
- 한나 아렌트-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엘리트 공직자로서의 품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갖은 핑계와 거짓말로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그 비겁함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결국 이러한 고위 공직자들의 비굴하고 천박한 행태는 위기 상황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헌법적 가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언제나 문제는 윗분들이다. 조선이 망할 때도, 동족상잔의 비극과 전시작전권 상실의 전란 속에서도, IMF환란과 지금의 내란까지도, 문제의 근원은 지체 높은 엘리트, 권력과 재물을 쥔 윗분들이었다. 나라가 망할 때마다 엘리트들 사이에 만연한 그릇된 풍조는 망조의 신호탄이 되어왔다.
구한말. 서구 개인주의를 잘못 받아들여 사회 결속력은 약화되고 내부는 분열되었다. 외세에 의존한 엘리트에 의해 한반도는 열강들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고 , 결국 식민지라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했다. 이완용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이런 혼란을 틈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국권 피탈에 앞장섰다. 이들의 배신은 나라를 더욱 수렁으로 몰아넣었고, 경술국치라는 치욕으로 이어졌다.
이승만 정권 초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기회주의적 아첨꾼들이 득세했고, 반공주의는 정권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권력에 줄을 서고 충성을 맹세하는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는 도덕적 타락과 불공정을 고착화했다. 반공주의는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고, 이후에도 폭력적 통치의 명분으로 작용하며 사회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켰다.
IMF 외환 위기 역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그리고 탐욕스러운 기회주의적 엘리트들은 국가 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이들은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법과 윤리를 무시했고, 결국 수많은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엘리트가 망친 나라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민중의 몫이었다.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민중은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는 조선 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교훈이다.
조선 말기의 동학농민운동은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부패를 청산하려는 민중의 투쟁이었다. 이후 의병 운동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일본에 맞섰다. 이들은 농민과 상인, 서민들이 주축이었다. 비록 나라를 되찾는 데 실패했지만, 이들의 저항 정신은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일파로 전락한 엘리트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협조하며 개인의 안위를 도모했지만, 민중들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3·1 운동, 광복군, 그리고 만주와 상하이에서의 독립운동은 민중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독립운동에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헌납한 이회영 이시영 명문가 형제와 안창호, 이상재, 김규식, 박은식, 여운형, 조소앙, 신채호, 채현배,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등등 많은 엘리트분들이 애쓰시고 희생하셨다. 그리고 오늘날 이런 분들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과 후손들이 진정한 우익 보수로 존중받으며 대한민국의 한 축을 맡아야 했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독립군을 탄압하던 일제 앞잡이들과 그 후손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온갖 권세를 누리고 있으니, 참 기막힌 현실이다.
현대사에서도 민중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1960년 4·19 혁명은 이승만 독재를 끝장낸 민중의 투쟁이었다. 부정선거와 권위주의에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1970~80년대 유신 독재와 군부독재에 맞선 투쟁도 마찬가지다.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은 모두 민중이 주도한 저항이었다. 엘리트들은 정권의 비호 아래 부를 축적하며 기득권을 유지했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를 흘린 건 민중이었다.
IMF 외환 위기 역시 엘리트들의 탐욕과 부패가 만든 참사였다. 그러나 그 대가는 온전히 민중들이 떠안아야 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중소기업은 줄도산했다. 가계 부채는 급증했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것도, 자발 적은 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것도 민중들이었다. 정작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엘리트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며 책임을 회피했다.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이 모든 망조의 집합체인 윤석열의 내란에서도,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윤석열이란 괴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렇게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민중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인데 어찌....
윤석열은 애초에 대통령은 물론 검찰총장도 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할 사람이 었다.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찬 그의 성품은 검찰총장 시절부터 문제를 드러냈고, 조국 전 장관 수사 과정에서 야비한 본성을 드러냈다. 대선 과정에서 그의 말실수, 무속 논란, 손바닥 왕(王)자 사건은 그의 괴기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고 대통령으로 절대 불가인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취임 후에도 정론을 외면하고 극우 유튜브에 경도되어 비판 세력을 적으로 돌렸다. 어제 외신은 그런 윤석열에게 "유튜브 알고리 즘 중독이 초래한 세계 최초 내란”이라 비웃었다.
윤석열 주변 엘리트들은 엘리트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저열하고 천박한 수준의 무리들이 그의 권력 주변에 모였고, 윤석열은 그중에서도 하자가 있는 인물들을 골라 주변을 채웠다. 그리고 이들은 윤석열을 은인으로 떠받들게 해, 공직자를 깡패 조직원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런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저열함은 해외 순방에서도 드러났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좌절과 모멸감은 우리 몫이었다.
윤석열은 권력에 대한 욕망, 독선, 무속적 맹신 속에서 계엄령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내란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 엘리트 사회의 구조적 결함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승만, IMF, 윤석열까지,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지도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세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데 진짜 따지고 보면,
이 내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했다면 윤석열 같은 인물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이 비극은 언론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언론은 이러한 기본적 사명을 저버렸다. 거대 언론사들은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득권 세력과 유착하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한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했고, 진실은 왜곡되거나 가려졌다.
윤석열의 대선 과정은 언론의 실패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무속 논란, 잦은 말실수, 부실한 공약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언론은 오히려 이를 가볍게 다루거나 덮어버렸다. 반면,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한 검증은 과도할 정도로 집요했다. 특정 정파와 결탁한 언론이 여론을 왜곡하며 국민들에게 잘못된 선택을 강요한 셈이다.
또한, 언론은 윤석열 정권 출범 후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권력의 오판과 실책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이를 정당화하거나 외면했다. 극우 유튜브와 같은 매체가 정부의 입장과 결탁하며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동안, 주류 언론은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국론은 분열되었다.
더 나아가, 언론은 권력 감시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사익을 추구하는 데 몰두했다. 대기업 광고 의존도를 높이며 경제 권력과도 유착했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보도는 점차 사라졌다. 이러한 구조는 윤석열 같은 권력자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언론 개혁이 필수적이다.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허위정보와 왜곡보도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제공의 사명을 되찾아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제2, 제3의 윤석열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권력은 견제되지 않고, 진실은 왜곡되며, 국민은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설 때 민주주의는 온전히 작동할 수 있으며,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만드는 길은 진정한 엘리트들이 판·검사가 아니라 언론인의 길을 선택하도록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 사회가 물질적 가치보다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명예와 책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과 건강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윤석열은 술에서 깨어난 맑은 정신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냥감처럼 몰려 끝내 짐승의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비록 소인이지만 사람의 최후를 맞을 것인가.
https://youtu.be/k7GUB_df6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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