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을 겪었어도 보수 정치의 지지율이 이렇게나 나오는 것은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런 언론 환경에서 진보정치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대통령 부부의 내란음모가 사실상 드러났고, 야당 대표는 검찰이 십수 차례 기소했으며,
그런 나라에서 여전히 이재명이 유력 대권주자라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린다.
노무현.
그의 죽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재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비운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조직될 수 있음을, 죽음으로 증명한 사람이었다.
그를 다시 떠올리다 보니 이상하게도,
예수의 삶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와 노무현은 모두 기득권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 율법주의와 권위주의를 깨뜨렸다.
그는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한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너희는 위선자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좋게 볼 리 없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노무현도 그랬다.
조선일보와 싸운 정치인.
출입기자실을 없애려 한 대통령.
언론과 기득권, 재벌, 검찰과 싸우던 사람.
그는 결국 “논두렁 시계”라는 단어로 조롱받다,
그 벼랑 끝에서 스스로를 던졌다.
둘 다,
'너무 정직해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던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수가 죽고 난 후,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사상은 조직되었고,
시간이 흘러 로마도 무릎 꿇었다.
노무현이 죽은 후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봉하마을에 몰려든 500만 시민,
2012년 문재인,
2017년 촛불혁명,
그리고 2024년까지 버텨온 이재명의 민주당.
이건 그냥 투표의 결과가 아니다.
이건 조직된 민주주의다.
살아남은 시민의 서사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예수가 부활한 건 신화가 아니라 기억이고,
노무현이 남긴 건 유산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이었다고.
예수는 죽었지만 기득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동체가 남았다. 노무현은 사라졌지만, 기득권에 무릎 꿇지 않는 정치 유전자가 남았다.
그리고 그 유전자가 지금,
이재명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비틀거린다.
언론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앞에선 비겁하다.
기득권은 언제나 착한 진보를 만만하게 본다.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노무현에게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보아도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예수에게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광주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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