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분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박구용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바로 “시스템의 물렁화”다. 이 말은 단지 제도나 규범이 느슨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던 근본 질서와 권위, 그리고 도덕적 기준 자체가 해체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체에서 액체로 – 해체되는 질서
예전의 사회는 고체형이었다. 가족, 학교, 국가, 종교 등은 굳건한 구조를 갖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체계 안에서 자신을 정의했다. 아버지는 권위였고,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다르다. 가족은 다양해졌고, 전통적인 규범은 약화되었으며, 정답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기존의 ‘고체 시스템’이 물렁물렁한 액체 상태로 바뀐 것, 그것이 바로 박 교수의 첫 번째 문제의식이다.
이런 시대 변화는 단순한 문화적 다양성의 확산이 아니라, 철학적·정치적 균열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세 가지 큰 흐름으로 나뉜다.
세 가지 반작용: 반권위주의, 반지성주의, 해체주의
1. 반권위주의 – 도덕의 민주화
첫 번째 반응은 반권위주의다. 1968년 유럽에서 촉발된 이 운동은, 1.2차 세계대전을 만들어낸 세대인 “아버지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선언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단지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도덕의 주체가 더 이상 특정 권위자(나이 든 남성, 아버지, 교사 등)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사고의 확산이었다.
이 반권위주의는 페미니즘, 생태주의, 탈식민주의 등의 철학과 연결되며, 억눌린 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도덕은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그 핵심이다.
2. 반지성주의 – 감정의 정치와 파시즘
두 번째 반응은 반지성주의다. 이는 지식과 이성을 부정하고,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는 정치 문화로 나타난다. 백신 음모론, 혐오와 분노의 정치, 트럼프식 선동 등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박 교수는 이 흐름이 보수주의 진영에서 주로 나타나며, 도덕적 권위를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위계를 만들고 감정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고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20대 남성의 급격한 보수화 현상도 이 흐름과 연결된다.
3. 해체주의 – 기존 질서의 근본 해체
세 번째 반응은 해체주의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로 대표되는 사유 방식으로, 기존의 진보와 보수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상식’이라는 전제를 근본부터 의심하고 분해하는 작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해체주의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기존 담론을 해체하면서 그 속에 숨겨진 권력 구조, 배제의 논리,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 그 목적이다.
도덕주의에 갇힌 진보, 감정정치에 능한 보수
이 세 가지 흐름은 오늘날 정치 지형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며, 우리가 겪는 혼란의 원인이 된다. 진보는 반권위주의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도덕주의라는 족쇄에 갇혀 있다. 반면, 보수는 반지성주의를 적극 활용하여 감정을 자극하고 대중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진보를 말하면서 강남에 살아?”, “정의 말하면서 포르쉐 타?”라는 식의 공격은 진보의 ‘도덕성’을 무기로 삼아 역공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박 교수는 이것이 진보 진영이 스스로 설정한 도덕 프레임에 갇혀 당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20대 남성의 극우화 – 설명되지 않는 현재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박 교수는 20대 남성의 급격한 보수화를 꼽는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만 유일하게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과반의 부정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있어서도 압도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는 과거 세대가 갖고 있었던 자생적 저항의 감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박 교수는 이것이 단순한 성별 갈등이나 남성 권위 회복 욕망이 아니라, 반지성주의와 위축된 남성성, 대안 모델의 부재가 결합된 복합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자
박 교수는 해답이 서양도 고전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인간 모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따라갈 수 있는 새로운 남성 페르소나, 도덕과 권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한 시민자유대학 프로젝트, 여론조사, 철학 공연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시도는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도 가능하다”는 철학적 태도에서 출발한다.
마치며
이 강의는 단순한 철학 강의가 아니다. 정치, 윤리, 문화, 세대 갈등까지 아우르는 날카로운 시대 진단이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묻는 철학적 보고서다. 물렁해진 시스템 속에서 무엇이 해체되고 무엇이 재구성되어야 할지를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다.
그리고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로 깜짝 놀라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켜온 김어준. 이번엔 또 외딴섬처럼 멀어진 20대 남성들을 향해 ‘구출 작전’이라도 시작한 듯하다. 정확히 뭘 하겠다는 건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움직이면 뭔가 꿰뚫고 있다는 신호다. 여론조사 ‘꽃’처럼, 이 프로젝트도 그냥 기대하게 된다.
가장 소외된 세대를 향한 최초의 철학적 호출이 시작되었다.
https://youtu.be/o4nsDbih9IU?si=soNLDs7LyV_NqY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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