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전해야 할 교회, 증오를 설교하다
늘 궁금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라던 교회 목사들이 왜 증오와 혐오를 전파하는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디로 갔는가.
성경을 펴놓고도 그 본문은 잘라버린 채, 대신 ‘마귀’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그리고 그 옆에 정치인의 이름을 붙인다.
김정은. 이재명.
사랑은 사라지고, 남은 건 정치와 혐오뿐이다.
부산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미인가 교육기관. 초·중등학생 188명이 다닌다. 겉으로는 ‘여름캠프’, 속으로는 학교. 그러나 이곳의 교육과정은 국어·수학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과 종교적 극단주의다.
캠프 강단 위에서 한 아이가 묻는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김정은이나 이재명 같은 사람도 사랑해야 하나요?”
목사는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마귀를 내쫓는 겁니다.”
그 순간 사랑의 복음은 증오의 교리로 변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적대심이 뿌리내린다.
법망의 틈, 그 속에서 자라는 극단
이 기관은 대안학교 인가를 신청했지만, 교육청은 거절했다. 정치적 편향성이 이유였다.
그러자 ‘캠프’라는 이름으로, 수업료 없이 운영하며 법적 제재를 피했다.
교육청은 “학교가 아니니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단체가 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결과는 ‘무혐의’.
대한민국의 법은 이렇게 선언한 셈이다.
“아이들에게 증오를 가르치는 건 범죄가 아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거리로 나가 탄핵 반대 집회에 서고, “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외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국가관’을 배우고 있다고 믿는다.
교회 안에는 ‘외부인 출입금지’ 경고문, ‘애국 집회 안내’, ‘공산주의 규탄’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 문구들이 아이들의 교과서다.

청년을 이념의 전위로 내모는 교회
문제는 아이들만이 아니다.
또 다른 교회는 청년들을 노린다.
찬양대 자리, 성경공부 모임, 심지어 예배 시간조차 정치적 선동의 무대로 변한다.
“이게 바로 사기 선거고, 부정 선거입니다.”
“문재인이 찍은 사람 손 다 잘라!”
이런 발언이 강단에서 터져 나와도, 지도자는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의 “아멘” 소리가 강당을 메운다.
교회는 청년을 믿음의 제자로 길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부 교회는 청년을 정치의 병사로 키우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공감,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심어지는 건 음모론과 증오다.
사랑과 증오, 뒤집힌 본질
교회는 원래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길 잃은 청년을 일으키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부 교회는 그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마귀’를 심고, 청년들에게는 ‘적’을 가르친다.
사랑의 설교는 사라지고, 혐오의 연설만 남는다.
더 심각한 건, 이 모든 과정이 ‘합법’이라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미성년자 교육기관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캠프’로 포장하면, 감독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든, 행정과 법은 모른 척한다.
침묵은 방관이 되고, 방관은 곧 동조가 된다.
방치된 오늘이, 더 어두운 내일을 만든다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청년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린 영혼과 젊은 세대를 정치와 종교의 거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사랑을 전해야 할 교회가 증오를 설교하면, 그 죄는 단순한 거짓말보다 무겁다.
그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미래 세대 전체를 병들게 하는 죄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모든 기독교 신앙의 기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는 그 기초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손에는 성경 대신 정치 구호를 든 채, 다음 세대를 향해 혐오를 전파하고 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는 더 많은 ‘마귀’라는 이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이들의 마음을 갈라놓고, 청년의 미래를 앗아갈 것이다.
결론: 우리는 지금 말해야 한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팔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 사랑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사랑을 설교해야 할 교회가 증오를 설교하는 현실, 당장 멈춰야 한다고.
오늘 침묵하면, 내일의 세상은 더 깊은 어둠 속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아이와 청년이 ‘마귀’라는 이름을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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