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해찬 전 총리가 우리 곁을 떠났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건너온 정치인이었고, 민주주의를 직업처럼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겸손이 떠오른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문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로 남았지만, 이해찬은 그것을 먼저 썼다고 말하며 기꺼이 뒤로 물러섰다. 정치에서 말은 권력이고 자산이지만, 그는 소유보다 방향을 택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삶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과 투옥을 반복했고, 14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막노동으로 학비를 벌며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을 미화하지도, 운동권이라는 말 뒤에 숨지도 않았다. 그저 버텼고, 이어갔다. 그 끈질김이 그의 정치 전체를 설명한다.
수배 중에 출판사 ‘돌베개’를 세운 선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도피 대신 생산을, 침묵 대신 지식을 택했다. 한겨레 창간에 참여하며 언론의 공공성을 믿었다. 권력 안팎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바꾸는 길을 그는 몸으로 실천했다.
노무현과의 관계는 정치적 동맹 이전에 동지였다. 민통련 시절부터 이어진 신뢰, 형님과 동지라는 호칭에 담긴 의리. 함께 기획하고 함께 책임졌다. 그것은 개인적 친분을 넘어 민주주의를 실무로 구현하려는 연대였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권력의 거짓을 드러냈고, 책임을 묻는 정치의 기본을 보여줬다. 스타가 되었지만, 스타로 살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그는 늘 제도와 구조를 고민하는 정치인이었다.
세종시는 그의 정치 철학이 남긴 공간이다. 중앙집권을 깨고 균형발전을 설계했다. 직접 살며 끝까지 챙겼다.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 또한 수사가 아니라 그의 자기 규율이었다.
그가 말한 ‘20년 집권’은 권력의 욕망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틈새’라고 불렀다. 수백 년 굳어진 구조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은 정당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분명히 했다. 노동이 강해지고, 시민사회가 자립하고, 언론과 사법이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깨어 있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된 민주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떠난 뒤에도 그는 교육자로 남았다. 후학에게 경험을 나누며 가치는 역사에서, 방법은 현실에서 찾으라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을 나누지 않았고, 어느 쪽으로도 도망가지 않았다. 또 무엇을 위해 정치하는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부재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을 잃은 상실로 다가온다.
그가 남긴 문장과 제도,
그리고 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설계하고 밀어붙였던 정치인 .
권력보다 방향을,
승리보다 책임을 택했던 정치인.
민주주의를 직업처럼,
노동처럼 살아낸 사람 이해찬.
우리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제 부디 그곳에서는 더 이상 짊어지지 않아도 되기를,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이해찬 전 총리의 삶과 신념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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