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1인 1표제 통과 소식을 접하고....
온라인 여론조작에 휩쓸리는 것과 계파 파벌주의에 갇히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직관적으로는 온라인 여론조작이 더 무서워 보인다. 감정적 쏠림, 선동, 인기투표. 그러나 실제 정치 실패 사례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온라인 여론에 휩쓸려 실패하면 그 실패는 금방 드러난다. 과장된 이슈, 잘못된 선택. 그래서 바로 반작용도 온다. 변덕스러운 여론. 빠르게 방향을 튼다. 반면 계파 파벌주의는 조용하다. 실패가 실패로 인식되지 않은 채 그냥 쌓인다. 그런데 이 차이가 너무 치명적이다.
지난 보수 정당의 친이·친박 계파 정치를 보자.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제 신호는 계속 나왔다. 비선 개입, 인사 실패, 정책 무능. 내부와 외부에서 경고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계파 구조 안에서 그 모든 문제 제기는 '배신'이 됐다. 의사결정은 빨랐지만 수정은 불가능했다. 결과는 국정농단과 정권 붕괴였다. 효율처럼 보이던 계파 정치가 실패를 키운 사례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의원과 계파 중심의 공천이 작동하던 시기, 2012년 총선과 그 이후 선거들에서도 민심의 경고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공천 기준은 경쟁력보다 계파 간 균형에 맞춰졌다. 내부 안배가 우선되면서 선거가 끝날 때마다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 내부에서도 신호가 있었지만, 결국 계파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반영되지 못했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02년 노무현 국민참여경선. 당내 주류 입장에서는 최악의 비효율이었다. 통제 불가능, 혼란.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민주당은 민심과의 단절을 끊어냈다. 완벽한 판단이어서가 아니다. 잘못된 구조를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파가 장악한 구조였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이 논리는 정치 밖에서도 반복된다. 오너 라인, 핵심 라인만 살아남는 기업. 의사결정은 빠르다. 보고는 깔끔하고 반대는 없다. 그런데 시장 변화 신호가 차단된 상태에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실패는 연쇄적으로 터진다. 반면 내부에서 불편한 보고가 올라오고 의견 충돌이 허용되는 조직은 느리다. 그러나 치명적인 실패를 피한다.
1인1표제가 주는 의의는 민주당 내부를 넘어 한국 정당사 전체로 봐도 작지 않다. 한국 정당은 한 번도 당원이 실질적인 권력 주체였던 적이 없다. 정당은 늘 위에서 만들어졌고, 의사결정은 소수 엘리트와 계파의 몫이었다. 당원은 동원 대상이었지 결정 주체가 아니었다. 1인 1표제는 이 오랜 구조에 처음으로 제도적 균열을 낸 사례다. 정당 권력의 소유권을 조직과 계파에서 당원 개인에게 일부 이전하겠다는 선언이다. 2002년 국민참여경선이 후보 선출의 예외적 실험이었다면, 이번 결정은 정당 운영 원리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계파는 효율처럼 보이지만 실패를 누적시키는 구조다. 온라인 여론은 위험하지만 드러나는 위험이고 계파는 조용히 쌓이는 위험이다. 정치에서 더 무서운 건 소음이 아니라 침묵이다.
민주당 1인 1표제는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위험을 제거한 선택이 아니다. 위험의 성격을 바꾼 선택이다. 고칠 수 없는 내부 권력 구조를 줄이고, 관리하고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택했다. 그래서 나는 이 결정을 환영한다.
물론 숙제는 남았다. 온라인 여론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숙려 장치, 정책 토론 구조, 후보 검증 시스템. 이것들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이 제도는 실패할 수 있다. 1인 1표제는 만능이 아니다. 출발선이다.
그래서 기대를 건다. 민주당은 이제 줄 서는 정당이 아니라 설득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빠른 결정이 아니라 틀린 결정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그게 민주정당의 생존 조건이다. 이번 선택이 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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