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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짐 푸는 중

언론과의 전쟁

2019-08-29

 

[예수 가라사대...."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간음한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저 에피소드만 보자면 현대의 한국인들보다 고대 사람들이 더 양심적인 것 같다.

 

한 사람의 허물을 다 같이 욕할 순 있다. 그러나 그 허물을 핑계로 칼을 들어 그의 살가죽을 벗겨 내려면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양심이고 그 양심의 두려움은 미혹을 떨쳐내고 마침내 진실을 쫓아 더 나은 판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할 근거인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인이라면 자기 반추는 더 엄격하게 해야만 한다. 단지 사실만 전달하는 정보제공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을 쫓을 수 있게 지혜로운 기사를 제공할 직업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 많고 지식과 정보습득이 많다고 지혜로운 언론인이 되는 건 아니다. 지혜는 취득한 지식과 정보가 양심이란 촉매를 만나 만들어낸 화학 반응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남의 티끌은 후벼파듯 잘 보면서 나의 검불은 보지 않으려는 작금의 광기의 의혹 보도 홍수는 전적으로 언론의 책임이고 후에라도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악한 야망을 품은 재벌언론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무엇이 사실이고 가짜인지 분간할 수없는 찌라시만 양산해내어 이전투구 사회를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홍수처럼 쏟아진 쓰레기 보도 더미에서 진실을 찾기엔 웬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 결과 정치혐오와 정치 무관심이 조장되고 저들이 바라는 눈멀고 귀먹어 마침내 입 닫아 순응하는 우민화된 대중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이웃 나라 일본은 욕하면서 정작 우리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6.10항쟁 이후 무소불위였던 독재 권력의 공백을 재벌과 배를 맞춘 언론사가 차지했다. 저들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민중의 피로 신성불가침 성역을 만들어 점령했다. 그러고는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순기능이 절대적이고 바른 언론이 담보되지 않고는 실현 불가능한 체제이다. 언론은 사회 담론을 공론화하고 합리적인 여론을 만들어 내어 정책을 실현하는 조력자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오만한 엘리티즘으로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내려는 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우리는 그간의 역사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 모든 언론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위험하다는 신호란 것을...

 

한 목소리의 언론은 광기의 전주곡이고 진실을 잃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래서 재벌의 광고가 주 수입원인 자본에 종속된 지금과 같은 언론 지형에선 저들의 의도된 기획을 의심해봐야 한다.

 

진실찾기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언론인의 직업적 의심은 장려해야 할 미덕이고 기사 취재시 의심을 가능한 한 충분히 넓게 펼쳐 수색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간지대를 철저히 지키는 수칙 또한 지켜야 한다. 함부로 예단하고 결정하여 확증편향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조국은 이미 범죄자가 되었다. 범죄자여야만 하는 언론의 확증편향으로 그는 저들 앞에 무릎 꿇길 강요당했고 이에 굴하지 않자 마침내 가족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상식적이지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저들의 무서운 집념에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혁명 중이다. 혁명은 적폐와의 전쟁이다. 이미 오래전 노무현 대통령이 개전한 상식대 비상식... 원칙과 반칙에 대한 전쟁 말이다. 그 전쟁 중에 우리는 우리의 장수를 지키지 않고 내치는 반역을 저질렀다. 그리고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적폐들의 자살골 덕분에 운 좋게 기회를 다시 잡고 문재인 정부를 만들어 내었지만, 전투에서 이긴 것일 뿐 혁명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혁명을 완수할 것인가

미완의 혁명으로 남길 것인가

무엇이 되든

그 시작과 끝은

언론의 모습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