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 어이 친구! 한국전쟁 얘기 좀 해봐.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나: 한국전쟁이 가져온 변화가 정말 어마어마했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전쟁고아랑 미망인, 이산가족이 엄청 생겼잖아. 남자들은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고, 여자들은 말도 못 할 고통을 겪었고. 그때 고아원이 많이 생겼는데, 대부분이 해외 원조 물자로 운영됐었어. 근데 일부 고아원에서는 이걸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대. 더 안타까운 건,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거야. 이 모든 비극이 다 전쟁 때문에 생긴 거였지.

강수: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은 안 했나?
나: 이승만 정부든 박정희 정부든 이런 문제에 별로 신경도 안 썼어. 전쟁고아들 부모 찾아주는 것도 전혀 관심이 없었고. 83년에 되어서야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때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지? 10만 명이나 신청했고 1만 명 정도가 가족을 다시 만났잖아. 근데 이걸 왜 진작에 안 했을까 싶더라고. 독재자들이 이런 걸 하면 반공 체제가 흔들릴까봐 겁먹었던 것 같아. 결국 당시 정치인들은 이산가족들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 체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던 거지.
강수: 전쟁으로 여성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나: 맞아. 전쟁 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죽고 다치면서 여자들이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거야. 농촌은 기본이고,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 같은 도심에서도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했어. 큰 포목점을 운영하는 여성들도 있었고, 명동에서 달러상을 하는 여성들도 있었지. 집에서도 여자가 가장 노릇하면서 시부모님 모시고 애들 키우는 게 흔한 일이 됐고. 이런 변화가 결국 여성의 성 역할이나 사회적 지위를 크게 바꿔놓은 거야. 여자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사회 참여도 늘어났잖아. 이게 나중에 여성 권리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지.
강수: 그럼 성에 대한 인식도 변했을까?

나: 그게 참 묘한 게, 전쟁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한테 정절을 엄청 강요했거든. 근데 전쟁 후에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어. 대표적인 게 정비석이 쓴 '자유부인'이라는 소설인데, 1954년에 신문에 연재되면서 난리가 났었지. 교수 부인이 대학생이랑 키스하고 춤추는 장면이 나왔는데, 보수적인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어. 정비석이 당국에 불려가서 조사도 받고 그랬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키스신 때문에 검열에 걸렸다니까. 그때는 키스 하나만 해도 풍기문란이라고 난리가 났었나 봐.
강수: 요즘 기준으로 보면 너무 웃긴데?
나: 맞아, 그때는 키스신 하나가 엄청난 일이었지. <한국일보>에서도 사설까지 써가면서 비도덕적이라고 난리였잖아. 근데 이런 논란들이 오히려 전환점이 됐다고 볼 수 있어.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고 성적 자유도 조금씩 늘어나게 된 거지. 전쟁이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으면서 새로운 여성상이 등장하기 시작했어. 댄스홀 같은 새로운 문화 공간도 생기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돈을 벌러 나가는 모습도 많이 보였고. 하지만 이게 다 좋은 변화만은 아니었어. 기지촌 여성들이나 첩으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은 정말 힘든 삶을 살았거든.
강수: 전쟁 때문에 군대가 팽창했다는 얘기도 있잖아.
나: 그 얘기 진짜 중요한 포인트야. 전쟁 전만 해도 한국군이 10만도 안 됐었잖아. 근데 전쟁 끝날 무렵엔 60만 명까지 늘었고, 이승만이 미국한테 자꾸 요구해서 나중엔 72만 명까지 됐다니까. 국방비는 대부분 미국 원조로 해결했지만, 우리 정부도 꽤 큰 부담을 져야 했지. 이게 결국 5.16 쿠데타로 이어지는 군부 중심 사회의 밑바탕이 된 거야. 군인들이 미국에서 훈련받으면서 엄청난 엘리트 의식이 생겼거든. 이 사람들이 나중에 한국 정치랑 사회를 좌지우지하게 됐잖아.
강수: 박정희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
나: 그렇지. 박정희가 여순사건 후에 남로당 프락치 활동이 걸려서 예편당했잖아. 근데 6.25가 터지면서 다시 군대로 돌아갔어. 백선엽 같은 만주군 출신들이 구명운동을 해서 살아났다는 얘기도 있더라고. 전쟁 중에 박정희가 특별히 공을 세운 건 없었는데, 전쟁 덕분에 다시 군인이 될 수 있었고 육영수랑 재혼하게 된 계기도 됐지. 전체적으로 보면 박정희는 전쟁 덕을 엄청 본 거야. 전쟁이 없었으면 박정희가 정치 지도자가 될 기회도 없었을 거란 말이지.
강수: 박정희가 전쟁 덕을 본 건 확실하네.

나: 그래, '6.25가 박정희를 살렸다'는 말은 좀 과하긴 하지. 근데 전쟁이 박정희한테 새로운 기회를 준 건 확실해. 사실 박정희 개인의 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전쟁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군사 중심으로 바뀌게 된 거잖아.
강수: 북한도 전쟁을 겪으면서 변화가 많았겠지?
나: 그럼, 북한도 전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 원래는 여러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가졌었는데, 전쟁을 계기로 김일성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어. 전쟁 후에 숙청이 이어지면서 수령 유일 체제가 확고해진 거야. 결국 한국전쟁은 남북한 모두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켰다고 볼 수 있어. 둘 다 군사 중심 사회가 되면서 이념 대립도 더 심해지고, 군사력을 앞세운 체제가 자리잡게 된 거지.
강수: 그러면 한국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 한국전쟁은 단순히 남북 간의 전쟁이 아니야. 미국과 중국이 주도적으로 참전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국제전이기도 했지.
강수: 정말? 난 그냥 남북 간의 싸움인 줄 알았어.
나: 내전의 성격도 있지만, 국제전적인 요소를 무시하면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그래서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봐.
강수: 그럼 이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로만 끝난 게 아니겠네?
나: 맞아. 이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로만 끝나지 않았고, 한반도의 구조적 문제와 국제 사회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
강수: 듣고 보니 전쟁이 한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네. 더 얘기하고 싶지만,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자.
나: 그래, 언제든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물어봐! 나의 베스트 친구야^^
참고/ 서중석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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