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別離

기억의 조각을 잇는 시간

(엄마와의 대화 한 장면/녹음파일 스크립트 )


"어휴- 하나씩 드셔요."

오늘도 나는 엄마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차려드렸다. 엄마는 별 거 아닌 소박한 끼니에 감사하게도 참 맛있게 드신다.


"요지(이쑤시개) 드려?"

"응?"

"요지...요지 드려?"

"아니… 됐어."

이 시간 엄마와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치매로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엄마의 기억을 잡으려는 소중한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이젠 익숙해진 질문이다.
나는 장난스레 되묻는다.

"엄마가 요일을 알아서 뭐 할 거여?"

"아니... 그...ㅎㅎㅎ 그래도 알아야지.ㅎㅎ"

엄마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요일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잊혀가는 기억 속에서도 하루의 흐름을 잡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일요일은 교회 가야 하니까 "

엄마는 일요일에 교회 가는 일이 당연한 일인 듯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또 장난기가 발동했다.

"교회 가야 뭐 해?"

"응?"

"교회 가야 뭐 하냐구?"

내 말에 엄마는 갑자기 약간 당황하신 듯
한참 뜸을 들이셨다.

"그냥 그... 그래도 집에 있느니... 걸어갔다... 걸어오면 운동도 되고..."

말을 흐리셨다. 아마 누이와 무신론자인 내가 종교 문제로 다투었던 일이 떠오르셨나 보다.

"교회 가면 엄마 친구들 많어?"

"응?...친구들 많기는 뭐... 가서 이제... 아무나 만나서... 이제... 점심 먹고 같이 오고 ...이제 그러지"

"교회 가서 그러면 하나님한테 기도도 하고 해?"

"응?...그럼 . 기도해야지. 그럼  뭐... 기도 안햐~?"

"뭐 해달라고 기도해? 뭐.. 뭐 해달라고? "

"뭐 해달라고?"

"응"

"첫째 ..."

"첫째 "

"내 몸 건강하고"

"응..또 "

"그다음에... 자손들... 이제 다 ㅎㅎㅎ행복하게 다 ...다...ㅎㅎ잘 살게 해 달라고"


엄마가 천진난만하게 크게 웃으신다

"그 거 두 개"

"응?"

"그렇게 두 개만?"

"응? 그러지 뭐.. 뭘 원을 햐~?... 원할 게 뭐 있어...."

그 순간 나는 엄마의 기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는지 깨닫는다. 세상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도, 엄마의 기도는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바라시는 것은 언제나 자손들의 행복이었다. 그 간단한 소원 속에 엄마의 모든 사랑이 담겨 있었다.

"들어주는 것 같어? 하나님이 ?"

"들어줄 테지 뭐 ㅎㅎㅎ"

또다시 엄마는 당신의 대답이 우스웠던지 환하게 웃으셨다.

"하나님 있는 건 믿어?"

"믿어야지"

"믿어야지가 아니라 믿느냐고"

"믿어 ㅎㅎㅎ"

"믿어?"

"그럼"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하나님이…?!!ㅎㅎㅎ"

"하나님 어디에 있어?"

"어디에?!... 하늘에....공중에…ㅎㅎㅎ"

당신이 본 적이 없고 대답 또한 마뜩잖으니 계면쩍게 웃으셨다.

"그래도 하나님이라도 믿어야지 든든하자너.ㅎㅎ"

엄마의 계면쩍은 웃음과 말속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겨 있었고 기억이 흐려져도 신앙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보험 드는 거여?"

"응?"

"보험 드는 거여?"

"보험은 무슨 보험여...."

"목사님이 뭐 얘기하는 거 뭐 다 알아들어?"

"그...그  들어야지 그럼… "

"알아듣느냐고.. 무슨 말하는 건지.."

"알아듣지 왜 못 알아들어 ㅎㅎ"

나는 울 엄마가 알아듣지 못하셔도 괜찮다.
하늘이든... 공중이든...
하나님을 믿는다는 엄마이기에
목사님 말씀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예수님 가라사대....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라고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증거 해놓으셨다.
그러니 우리 엄마 보험 하나는 잘 들어 놓으신 거다.

"그쥬? 하나님!"

나는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저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 마음이 채워진다. 엄마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기도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로를 얻는다.

비록 엄마의 기억은 점점 흐려져 가지만, 그 순간순간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니까.

"박여사!
아일~러븅~
쪽-"


2016년 2월 18일








'別離'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리  (0) 2024.10.09
울 할머니를 꽁꽁 언 땅에 묻고 돌아와서....  (0) 202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