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의 진단과 전우용 역사학자의 통찰을 통해 본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교육 개혁의 절박성

서론: 충격과 경악, 법원 습격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민낯
21세기 대한민국은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사회 내부적으로도 전에 없던 혼란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불황과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정치적 양극단화는 극에 달하며,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최근 벌어진 ‘법원 습격’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자 법치주의의 상징인 법원이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해 공격받는 초유의 사태는, 단순히 정치적 혼란을 넘어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경고하는 묵시록적인 징후와도 같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법원 습격’이라는 사건이 현실로 벌어지자, 많은 국민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단순히 극단적인 일부 세력의 일탈 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극우파시즘세력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날카로운 지적과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으로 교육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를 ‘후기 파시즘 사회’로 진단하며, 교육 시스템이 파시즘적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본 글에서는 김누리 교수의 ‘후기 파시즘 사회’ 진단과 함께, 전우용 역사학자와의 대담 내용을 분석하여 ‘민주주의 오해’의 역사적 기원을 탐색하고, 극우파시즘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교육 개혁의 절박성을 논하고자 한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민주주의 오해’가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과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시민적 각성을 촉구한다. 김누리 교수의 심층적인 분석과 전우용 역사학자의 역사적 통찰을 융합하여, 극우파시즘 세력의 위협에 직면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교육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한국 사회는 후기 파시즘 사회, ‘정상성의 병리성’과 극우 세력의 발호
김누리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를 ‘후기 파시즘 사회’로 진단하며, 이는 군사 독재라는 전기 파시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파시즘적 태도와 심성이 사회 곳곳에 내면화된 사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정상성’ 자체가 병들어 있다고 지적하며, ‘정상성의 병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병든 자일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단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극단적인 일부 극우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시스템과 가치관 자체가 병리적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인 것이다.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특정 유형의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병리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분석한다. 윤 대통령의 언행과 행태는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나 ‘황당’, ‘충격’,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정상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윤 대통령 개인의 일탈 문제를 넘어,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심층에는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파시즘적 잔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극우 세력의 발호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된다.
극우 세력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병리적 ‘정상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소외감과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혐오와 배제, 폭력적인 언사를 통해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특히 ‘법원 습격’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며,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2. 교육, 파시즘을 내면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 경쟁과 우열, 지배와 복종의 내면화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의 ‘후기 파시즘’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교육’을 지목하며, 파시즘의 핵심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를 통해 구성원을 파시스트로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는 학교, 언론, 종교 기관, 군대 등을 의미하며, 특히 ‘교육’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박정희 시대의 파시스트적 교육은 경쟁과 우열, 지배와 복종을 당연시하는 가치관을 주입했고, 이러한 교육 시스템은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경쟁 만능주의가 교육 시스템에 더욱 강화되면서, 파시즘적 가치관은 더욱 공고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교육 시스템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경쟁, 우열, 지배라는 파시스트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경쟁, 중고등학교의 입시 경쟁, 대학 서열화와 취업 경쟁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 교육은 학생들을 끊임없이 줄 세우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시스템 속에서 타인과의 공존과 연대, 다양성 존중과 같은 민주적 가치를 배우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을 내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교육 시스템은 극우적 사고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극우 세력은 사회를 경쟁과 적자생존의 정글로 인식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 다윈주의적 사고방식은 경쟁 교육을 통해 내면화된 가치관과 일맥상통하며, 극우 세력이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이용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기반이 된다. 김 교수가 경고하듯이, 한국 교육 시스템은 ‘전교 1등’을 ‘압도적인 파시스트’로 만들 수 있으며, 서울 법대와 의대와 같은 명문대가 오히려 한국 사회 퇴행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3. 민주주의 오해의 역사적 기원 –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정권의 유산
전우용 역사학자와의 대담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민주주의 오해’의 역사적 기원을 밝혀준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용어 자체가 번역 과정에서부터 오해가 발생했으며,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조작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어원을 분석하며, ‘데모스(Demos, 민중)’와 ‘크라토스(Kratos, 지배)’의 합성어인 데모크라시가 ‘민중 지배’ 혹은 ‘민주정’으로 번역되었어야 옳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의(主義, -ism)’를 덧붙여 ‘민주주의’로 번역되면서, 민주주의가 마치 하나의 ‘이념’처럼 오해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民)’이라는 한자 자체에 내포된 역사적 맥락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민’은 한쪽 눈이 멀거나 찔린 사람을 의미하는 상형문자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지배 계층에 복속된 피지배 계층, 무지하고 천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데모크라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쳤으며, 당시 동아시아 사회, 특히 군주제 질서에 익숙했던 지배층에게 ‘민중이 지배하는 체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심지어 위험한 개념으로 여겨졌다. 일본은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民主主義)’로 번역하면서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았으며,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폄하와 불신을 내포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은 이러한 ‘민주주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이들은 일본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 체제를 옹호하며, 민주주의는 서구 열강의 혼란스러운 체제이며, 조선 민족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해방 이후 군사독재 정권 역시 민주주의를 ‘혼란과 분열의 씨앗’으로 규정하고, ‘안정과 효율’을 내세워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내세워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특정한 이념적 틀 안에 가두려 했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보편적인 정치 시스템이 아닌, 특정 이념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국 사회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만연하게 되었으며, 이는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폄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를 ‘가짜 민주주의’, ‘좌파 민주주의’ 등으로 폄하하며, 자신들의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주장을 정당화하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인다.
4.독일 교육 개혁 사례 – ‘경쟁 교육은 야만’이라는 선언과 민주시민 교육 강화
김누리 교수는 한국 교육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며, 독일의 교육 개혁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은 68혁명 이후 히틀러 파시즘 청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교육 개혁을 통해 ‘내면의 파시즘’을 해체하고자 노력했다. 독일 교육 개혁의 핵심 구호는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였다. 이는 경쟁 교육 자체가 파시즘의 정신적 뿌리인 사회 다윈주의, 즉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경쟁을 최소화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등학교부터 등수와 석차를 없애고, 학교 간 경쟁, 대학 서열화, 대학 입학 시험을 폐지했다. 대신 학생들에게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조한다. 또한, 독일은 ‘선동 판별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선동과 거짓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교육한다. 이러한 교육 개혁을 통해 독일은 과거 파시즘의 그림자를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독일의 교육 개혁 사례는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한국 사회 역시 경쟁 교육을 철폐하고,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 개혁을 통해 극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경쟁 대신 협력과 공존, 다양성 존중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비판적 사고 능력, 공감 능력, 소통 능력, 공동체 의식 등을 함양하는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전우용 역사학자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론: 교육 개혁만이 극우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미래를 열 수 있다
김누리 교수의 진단과 전우용 역사학자의 통찰은 한국 사회가 극우파시즘 세력의 위협으로 인해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법원 습격’ 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현실은 한국 사회가 ‘후기 파시즘’이라는 깊은 병을 앓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 개혁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경쟁 교육을 철폐하고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하는 혁명적인 교육 개혁을 통해, 한국 사회는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인간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개혁은 단순히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문화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경쟁과 우열, 지배와 복종의 파시즘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협력과 공존, 평등과 연대의 민주적 가치관을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계뿐만 아니라, 정치계, 언론계, 시민사회 등 사회 구성원 전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며, 교육 개혁만이 극우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https://youtu.be/YhRYUkFEQwY?si=ERhHs6zEdKK0D9Z9
https://youtu.be/TfzAMCE0trs?si=bZizc-ZD7pAZngw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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