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불신 시대, 기자가 실종된 사회
대한민국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절망, 증오, 혐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무력감.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섞여 아주 더러운 기분. 이것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는‘언론’이라는 두 글자가 앙금처럼 들러붙어 있다.
“언론이 제일 역겨운 악마들 그 자체다”.
이 한 문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울분과 절규가 응축되어 있다. 나 역시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혐오스러운 단어를 언론 앞에 붙여야 겨우 속이 풀릴 지경이다. 언론이 언제 우리 사회에서 감시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너희들은 과연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언론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진실은 외면당하고, 오직 자극적인 가짜 뉴스와 편향된 시각만이 난무한다. 권력 앞에 굴종하고, 자본의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언론은 더 이상 시민의 편이 아니다. 오히려 악마의 가면을 쓰고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기만자에 가깝자.
언론의 책임 방기와 윤리 실종
내란 수괴의 망언을 속보로 중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세력을 ‘양비론’이라는 교묘한 덫에 가두는 언론의 행태는 이미 묵과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반헌법 세력에 감담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
탄핵과 체포가 지연되는 사이, 슬그머니 내란 세력을 감싸는 칼럼을 쏟아내는 뻔뻔함은 역겹기 그지없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극우 광신도들에게 폭동을 사주하는 언론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언론’의 모습인가. 이것이 ‘공정’과 ‘정의’를 외쳐왔던 언론의 실체인가 말이다.
일제강점기, 친일 부역 언론은 펜으로 총칼보다 더 잔혹하게 민족을 유린했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그때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려는 것만 같다. 외계인이 침략해도 외계인 편을 들 것 같은 언론은 역사의 비극을 망각하고, 오직 권력과 금력에 굴종하는 기레기가 되었다.
자본의 나팔수가 된 언론
그리고 재벌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 진실을 추구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견제’ 역할을 포기하고 오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홍보 기계로만 남았다. 재벌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생산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한다. 이것이 어찌 언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정보 왜곡 유통업자, 혹은 돈벌레라는 냉소적인 평가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포털 클릭 장사 시스템은 언론의 타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클릭 수에 목을 매는 언론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저널리즘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진실 탐구와 심층 보도 대신, 제목 낚시와 짜깁기,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억측만이 포털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언론은 스스로 ‘쓰레기’를 양산하며 독자들의 외면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오보와 왜곡 보도가 넘쳐나지만, 정정 보도는 인색하고 책임은 뒷전이다. 솜방망이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언론은 안하무인으로 날뛸 수밖에 없다.그러기에 ‘금융 치료’만이 해답이라는 시민들의 절규는 언론 개혁의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언론 개혁을 위한 제도적 해법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허위 사실 유포, 여론 기만, 갈라치기 기사에 대해 기업 존립을 흔들 정도의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언론의 경제적 기반을 흔드는 획기적인 개혁만이 무너진 언론 윤리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계엄 당일 조중동의 사과는 언론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슬그머니 사과하는 척 하더니, 이내 본색을 드러내고 내란 세력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하는 지금의 언론의 모습은 정말 소름끼친다.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악마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언론은‘카멜레온’처럼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기회주의적인 집단으로 전락했다.
언론은 더 이상 사회의 ‘악’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 ‘악’의 축이 되어버렸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돈벌레가 되어버린 언론에게서 ‘배짱’과 ‘패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과거 권력에 맞서 펜을 들었던 용감한 언론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눈치 보기와 굴종, 그리고 영혼 없는 기사만이 텅 빈 껍데기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언론이란 단어를 써주기도 형편없는.그들은 결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언론 스스로 변화를 거부하고, 개혁을 외면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조져야 한다. 더 이상 ‘개혁’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과 권력과 입법부의 합당한 권한과 권력으로 그냥 말 그대로 조져야 한다.나라를 위해서라도 무너져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간절한 외침에 답해서라도 한번쯤은 언론을 조지자.
'기업은 왜 언론을 사려고 할까?' 라는 질문은 언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언론의 상업화, 자본 종속, 그리고 권언 유착의 고리는 오랜 시간 동안 굳건하게 지속되어 왔다. 뉴스 광고 수익 제한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르고 클릭 수 경쟁을 멈추게 하여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사주한테 월급받고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보유통업자”. 이 말은 씁쓸하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언론은 이미 ‘공공의 이익’이라는 가치를 내팽개치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결론: 언론 개혁의 시대적 과제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중심에는 타락한 언론이 자리하고 있다. 언론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흉기가 되어버렸다. 이대로 침묵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분노해야 한다.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 개혁을 향한 끊임없는 외침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썩어 문드러진 언론 시스템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새로운 민주주의 언론을 건설해야 할 결정적인 시기다. 침묵은 곧 공조다. 야당연합은 언론개혁 법안 발의에 목숨을 걸어라 그리고 무조건 합의하고 뭉쳐라.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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