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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고

이재명대통령 그리고 대구 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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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확실히 떴는데도 TV 화면 속 이재명은 웃지 않았다. 나 역시 웃을 수가 없었다.

새벽 2시 반, 개표방송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란을 일으켜도 겨우겨우 턱걸이로 이기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다. 이준석이 끝내 단일화를 했더라면, 우리는  지난 20대 악몽 같은 대선을 또다시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등 골이 서늘해졌다.

IMF로 나라를 파산시켜도 이인제 때문에 간신히 이기고 최순실 꼭두각시로 탄핵을 당해도 안철수 때문에 겨우 이기고  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려 한 내란을 일으켜도 이준석 때문에 겨우 겨우 이기는 이 어이없고 부조리한 현실.

민주당은 전당원과 국회의원이 전국 방방곡곡, 골목골목, 거리거리 수백km를 누비며 목청껏 호소하고, 쇼츠를 수천 개 올리며 유세를 했다. 그 반면에  내란을 동조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국힘당은 실수 연발 코미디 같은 유세 연설에 기억나는 건 김문수의 '지랄 옆차기' 뿐인데도 40%가 넘는 이 기이한 현상.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과연 이 부조리한 공동체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는 있는 걸까? 이 새벽. 웃지 않는 이재명을 보며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왜 이렇게까지 절박해야 했을까. 왜 이기고도 숨이 턱 막히는 이 위태로운 승리를 맞아야 했을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여전히 몰표 지역의 정치적 비대칭성에 발목 잡혀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버려야 한다. 그 말은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지역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대구·경북 지역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철저히 외면했고, 윤석열과 박근혜, 이명박에게 몰표를 안겼다. 그 어떤 정책 실패가 벌어져도, 그 어떤 국정 농단이 드러나도, 그들은 기계적으로 국힘당에 투표해 왔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조롱, 배신,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깊은 피로감이었다. 겉으론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 같지만, 그 지역은 이미 정치적 다양성과 상식이 실종된 구조다.

언론, 검찰, 종교, 교육, 재계가 한데 얽힌 기득권 구조는 외부의 건강한 가치관이 뿌리내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민주당 지지자는 침묵하거나 떠났고, 남은 다수는 체제에 적응해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대구는 모두가 동일한 정치 성향으로 고착된 공간이 아니다. 변화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지난 글에 나는 ‘대구의 변화’에 희망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희망은 투쟁의 언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깨어 있는 소수 시민들의 목소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노력을 조롱하고 눌러온 기계적 몰표 구조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그래도 우리가 먼저 손 내밀자’는 자세로 접근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해 주고, 인프라를 깔아주고, 국비 사업도 지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표는 안 줘도 챙겨준다’는 비합리적인 정치적 관성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그런 잘못된 포용 전략을 바로잡고, 지역별 정책사업 조정을 통해 책임 있는 국정 운영으로 전환할 시점인 것 같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전략을 바꿔보자. 국정 운영은 생색이 아니라 계산이다. 기여와 참여, 협력과 책임을 기준으로 국가 자원을 재조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정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책 배분 체계를 재설계하자.

첫째, TK 지역에 대한 국책사업, 예산, 인프라 투자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정치적 충성도에 따른 자동 배분은 폐기하고, 사업의 국가적 파급 효과, 지역의 성장 가능성, 투자 대비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후퇴를 선택한 지역에 더는 일방적 지원은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 박근혜 정권 시절 대구·김천 혁신도시에 편중 배치된 한국가스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도로공사 등 핵심 공공기관들의 이전 배경과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전이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보은이거나, 행정 효율성과 지역 균형 발전의 명분에서 벗어난 결정이었다면, 당연히 재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지역 사회의 민주적 책무 이행 수준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책 우선순위에 반영해야 한다. 단순히 투표율이나 지지율만이 아니라, 정부의 개혁과제에 대한 수용성,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 활동, 주민 참여의 질과 범위를 모두 평가 지표로 고려해야 한다. 이는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국가 자원을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적 기준이다.

마지막으로, TK 지역 내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한 시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더 정밀하고 집중적인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 노동자, 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맞춤형 정책은 반드시 유지 확대 되어야 하며, 이는 지역 전체를 배제하는 정치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기준선이기도 하다.

정치는 메시지다. 이번에 이재명 정부는 이렇게 말하자.

"민주주의를 지켜준 국민을 끝까지 보호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위협하는 내란을 옹호하고, 반헌법적·반민주적 행태를 지속하며 반복적으로 정치적 배신을 선택한 지역에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관용은 없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에는 반드시 정책적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것이 공정이며, 그것이 정치다."

이제는 인내가 아니라 기준으로, 관용이 아니라 재설계로, 자비가 아니라 균형 잡힌 조정으로 나아가자. 그래서 대구 경북 지역에 대한 정책사업 재조정을 검토하자. 그리고 새로 출발하는 이재명 정부는 그 기준을 정확히 세우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해석은 단 한 가지.

"이게 다~ 기레기 때문"

언론개혁은 생존이다


덧붙여서/
준석아! 넌 이제 계산하자.
× 된 거 알지?
너는 이제 패배의 희생양이 돼서 조림돌림 당할 일만 남았고
난 그 생각에  졸라 달콤하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