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미국과 협의해 핵추진잠수함 보유·원자력협정 개정 검토”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미국과 협의해 원자력추진잠수함 보유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 후보자는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 청문회에서 ‘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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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핵추진 잠수함(핵잠수함) 보유론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우리는 이미 그 꿈의 문턱까지 갔었다. 만약 2004년, 한 언론의 특종 보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글은 좌절된 꿈 '362 사업'을 통해 한국 잠수함 전력의 대체 역사를 그려보고, 현재 우리가 마주한 기회와 과제를 분석한다.
사라진 꿈: 2004년의 비밀 프로젝트 '362 사업'
2003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보고를 받고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승인한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핵잠수함 건조 사업, 코드명 '362 사업'의 시작이었다. 이 사업명은 대통령의 승인 날짜(03년 6월 2일)에서 유래했을 만큼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362 사업'의 목표는 명확하고 야심 찼다. 총사업비 3조 5,000억 원을 투입해 4,000톤급 핵잠수함 3척을 독자 건조하는 것이었다. 계획에 따르면 2012년 1번함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3척의 핵잠수함을 실전 배치하여, 동북아의 해군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당시 한국은 프랑스의 바라쿠다급 잠수함을 모델로 삼고, 러시아로부터 소형 원자로 기술 이전을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역사를 바꾼 한 편의 정보유출 기사

그러나 이 거대한 계획은 2004년 1월 26일,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의 '한국, 核추진 잠수함 개발키로'라는 단독 보도 한 편으로 운명이 뒤바뀌었다. 국가 1급 기밀이었던 사업 내용이 상세히 공개되자 국내외 파장은 엄청났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한국의 과거 우라늄 농축 실험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대상이 되면서, 핵잠수함 개발 계획은 '핵무장 의혹'으로 비화했다. 국제 사회의 압박과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노무현 정부는 결국 2004년 12월, '362 사업'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핵잠수함의 꿈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조선일보 지면 한 구석에 실린 단독 기사 한 줄. 유용원 기자는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그가 쏘아 올린 문장은 곧바로 대한민국의 자주국방 전략을 외교 갈등의 도마 위에 올렸다. 미국은 경고했고, 국제사회는 의심했으며, 국내 정치권은 스스로를 옥죄었다.
그러나 정작 누구도, 이 국가 전략을 외부에 노출시킨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가 안보를 시장의 정보상품으로 거래한 자는 무사했고, ‘핵’을 논한 지도자는 반역의 프레임을 뒤집어썼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다시는 핵잠수함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기자의 펜 끝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전략과 꿈을 단숨에 수장시켰다. 그리고 그 유용원이 지금 국민의힘 소속으로 국방위원회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다.
'362 사업'이 성공했다면?
만약 유용원 기자의 보도가 없었고, '362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1. 압도적 해군력과 지정학적 위상 변화
계획대로라면 한국은 2012년에 이미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2025년 현재, 최소 3척 이상의 핵잠수함 함대를 보유하며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을 원천 봉쇄하고, 급증하는 중국의 해군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적 억제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호주의 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보다 10년 앞서 비핵보유국의 핵잠수함 보유 선례를 만들며, 한미동맹 내에서도 훨씬 더 주도적인 목소리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
2. 기술 강국으로의 도약: 20년의 격차
핵잠수함 개발은 단순한 무기 도입을 넘어 국가 기술력의 총체적 도약을 의미한다. '362 사업'이 성공했다면, 잠수함용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은 2010년대 초에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 수출은 물론, 방위산업 전반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 K-방산의 위상을 지금보다 몇 단계 더 높였을 것이다. 아래 차트는 '362 사업'이 성공했을 경우의 가상 시나리오와 실제 역사를 비교한 것이다.
20년의 우회로: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
';362 사업';의 좌절 이후, 한국 해군은 다른 길을 걸었다. 디젤 잠수함 기술 발전에 집중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재래식 잠수함 건조 능력을 확보했다. 특히 도산안창호급(3,000톤급)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SLBM 운용이 가능한 디젤 잠수함으로, 우리 해군력의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명확하다. 재래식 잠수함은 연료전지(AIP) 시스템을 탑재하더라도 수중 작전 기간이 최대 3주에 불과하며, 배터리 충전을 위해 스노클링이 필요해 은밀성이 떨어진다. 반면 핵잠수함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동력으로 수개월간 잠항하며 30노트(시속 약 55km) 이상의 고속 기동이 가능하다. 이는 '추격'이 아닌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차이다.

다시 찾아온 기회: 꿈은 부활하는가?
20년이 흐른 지금, 핵잠수함 보유를 둘러싼 환경은 극적으로 변했다. 이재명 정부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몇 가지 강력한 무기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독자적인 잠수함 설계 및 건조 능력을 완벽히 갖추었다.
•성숙한 원자력 기술: 민간 부문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이를 잠수함용으로 전환할 기술적 기반이 충분하다.
•변화된 국제 정세:미국의 AUKUS 결정은 비핵국가에 대한 핵잠수함 기술 이전의 선례를 남겼다. 이는 한국에게도 새로운 외교적 명분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물론 핵연료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라는 가장 큰 산이 남아있다. 또한 막대한 건조 및 운용 비용, 전문 인력 양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결론: 잃어버린 20년, 그러나 새로운 출발선
2004년의 특종 보도는 분명 대한민국 핵잠수함의 꿈을 20년간 지연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골든 타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20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더 단단한 기술적 토대와 성숙한 외교적 접근법을 고민할 기회를 주었을 수도 있다. 20년 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제 대한민국은 더 철저한 준비와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대양 해군'의 꿈, 핵잠수함 보유를 향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해야 할 때다. 그 항해의 끝이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를 결정할 것이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713/episodes/25160132?ucode=L-vZykcHdB
Ep39 20년전 좌초된 362사업, 핵잠수함의 꿈
20년 전, 조선일보 유용원의 한 줄 기사로 좌초된 대한민국 최초의 핵잠수함 계획 '362사업'. 그날 가라앉은 것은 단지 하나의 무기체계가 아니라, 자주국방의 의지였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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