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시작된 하나의 인사 검증 과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하고 깊은 정치적 역학이 작동하고 있었다.
의혹의 실체와 언론 보도의 문제점
강선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보좌진 잦은 교체, 사적 심부름 지시, 예산 갑질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의혹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 보도의 여러 문제점이 드러난다.
먼저 '5년간 46명 교체'라는 충격적인 보도는 국회 규정상 승진이나 회기 변동 시 발생하는 형식적 면직과 재임용을 중복 계산한 결과였다. 실제 면직자는 27명으로 통상적인 수준이었다는 반박이 나왔지만, 이미 부정적인 선입견은 깊이 각인된 후였다.
사적 심부름 지시 의혹 역시 맥락이 생략된 채 부풀려진 면이 있다. 변기 수리 건은 물난리 상황에서 근거리 보좌진에게 '살펴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고, 실제 수리는 업체가 했다. 쓰레기 처리도 일상적인 생활 쓰레기가 아닌 차량 내 물품이나 음식물 처리였다는 해명이 있었다.
특히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특수한 가정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언론은 일방적인 폭로에만 집중했다. 강 후보자에게 유리한 전현직 보좌진들의 증언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조국 사태와의 비교: 왜 다를 수밖에 없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사태를 떠올리며 민주당을 지적한다. 하지만 두 사건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의혹의 본질부터 달랐다. 강선우 사건은 개인의 윤리 문제로 정치적 방어가 어려운 성격이었다. 반면 조국 사건은 사회 구조적 특권과 개혁을 둘러싼 이념 전쟁의 성격을 띠었다.
공격의 주체도 달랐다. 강선우 사건은 전직 보좌진이라는 '내부자'의 고발로 시작되어 민주당이 소속 보좌진들을 공격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구도를 만들었다. 조국 사건은 검찰이라는 '외부의 적'이 주도한 총력전이어서 당과 지지자들이 쉽게 결집할 수 있었다.
정치적 상징성에서도 차이가 컸다. 강선우 의원은 대체 가능한 장관 후보자였지만, 조국 전 장관은 검찰개혁의 상징 그 자체였다. 조국을 포기하는 것은 개혁 과제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트라우마가 낳은 과잉반응
하지만 강선우 사태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반응을 보면, 사건 자체보다는 2019년 조국 사태의 트라우마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지지자들은 '의혹 제기 → 언론 집중포화 → 정치적 낙마'라는 조국 사태의 패턴을 즉각 떠올렸다. "또 시작이구나", "이번에도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학습된 위기감이 발동한 것이다.
특히 박찬대 의원의 공개적인 사퇴 요구는 지지층에게 '내부 총질'로 받아들여졌다. 조국 사태 때는 외부의 공격에 맞서 단일대오를 형성했는데, 이번에는 내부에서 칼을 꽂는다는 배신감이 컸다.
위험한 징조들
문제는 이런 트라우마 반응이 건전한 비판 기능까지 마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지지층에서는 진영의 대표적 스피커들까지 서로 비교하며 비난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배신자'로 낙인찍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한때 다른 진영 인사들까지 포용하며 외연 확장을 꾀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부의 작은 이견마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잡는 듯해, 이를 지켜보는 이들 사이에서는 깊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혹여 이 변화가, 자신감에 기반한 정치에서 트라우마에 잠식된 공포의 정치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프레임 전환의 필요성
강선우 후보자의 결단으로 인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내로남불 정권'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되찾아와야 할 지배적 프레임은 '내란 종식'과 '유능함'이다. 특검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고작 인사 문제 하나로 압도적 우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정권 출범 한 달, 지도체제마저 붕괴된 상대방과는 다르다. 진행 중인 특검 수사와 막강한 지지층이라는 힘이 있다.
성숙한 정치를 향해
조국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분노는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지만, 과잉반응으로 이어질 때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에너지를 성숙하고 전략적인 정치 참여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부의 작은 차이를 부풀릴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적을 향해 함께 총구를 겨눠야 할 때다. '누가 더 선명한가'를 따지는 순수성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이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전략적 연대가 필요하다.
강선우 후보자의 사퇴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분노와 트라우마에 갇힌 정치가 아닌, 미래를 향한 건설적인 정치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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