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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삼성

2020-10-27

오늘날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에게 준 자부심은 실로 대단하다. 삼성의 발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본주의 승리이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성공사례다.

네 맞습니다 맞고요….
이 기적 같은 일에 삼성 오너였던 이병철과 그의 아들 이건희의 혜안이 빛나고 또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것만으로 오늘날 시가 총액 524조, 세계 기업 순위 16위, 브랜드 순위 5위라는 세계 초일류 그룹의 성장을 설명할 수가 없다.

만약에 이병철이 방글라데시아나 미얀마 또는 필리핀에 태어났어도 과연 이런 기업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하지만, 아닐 확률이 존나게 더 많다. 저급하게 우수한 DNA이라든지 우생학적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역사에 기인한 우리나라 상황과 조건에 의해 다른 나라에 없었던 잠재력이 우리에게는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삼성의 성장과 발전에서 '우리'를 빼놓고는 절대 설명이 안되고 이병철과 이건희는 운 좋게 우리를 만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리 좋고 손재주 좋고 근면 성실한 우리... 바로 너희들, 나 말이다.

아니다. 씨바...몇명은 빼자.

그 몇명이 지금

"조카유! 그게 아니고 지금의 삼성은 오롯이 이병철과 이건희의 독보적인 특별한 재능 때문이네~"

라고 주장한다면,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현대차와 100년 넘게 가전제품 세계 왕좌의 자리를 지켰던 미국의 월풀을 제키고 세계 1위에 오른 LG전자, 또 반도체 세계 2위 SK하이닉스를 설명할 수가 없다. BTS도 손흥민도 김연아도 여자 골프도 양궁도 도저히 설명이 안된단 말이다.

과거 우리가 처해졌던 환경은 마땅한 자원도
없었다. 그리고 36년이란 긴 시간 일제의 수탈로 인해 알거지가 되었고 그나마 있던 시설도 전쟁통에 잿더미가 되어서 우리는  꿈과 희망을 잃고 허덕이던 국민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고 전쟁 중에도 천막 학교를 열었던 배움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
한마디로 싹수가 있는 인재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인재는 이병철이나 이건희가 만든 게 아니다. 국가와 가정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그 수많은 인재 중에 강기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 반도체 산업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으로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 분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 강기동 박사 (1934년생)

- 1957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 1962년 오하이오 주립대 석·박사 학위 취득
- 1962-1969년 모토로라 반도체 연구소[미국] 생산기술부장
- 1972 한국반도체 설립
- 1974-1976년 삼성반도체 사장

강기동 박사는 미국 유학과 모토롤라 반도체 연구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72년 한국 최초로 3인치 웨이퍼 가동라인을 갖춘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 부품 조립업을 반도체 산업으로 알고 있던 기술 후진국 우리나라에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본격 이식한 것이다.

한국반도체는 전자 손목시계용 칩으로 설립 첫해에 420만 불(현재 가치 약 180억 원) 어치의 제품을 생산해 팔아 대성공을 이뤘지만 곧이어 중동 전쟁이 일어났고 유류 파동으로 인해 자금난에 빠졌다.

그러자 눈치빠른 삼성이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 인수작전을 펼쳤고 이에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다 1년 만에 부도가 났다. 그리고 삼성이 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서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된 것이다.

강기동 박사는 삼성반도체의 초대 사장을 맡았지만 삼성의 치졸한 공작으로 3년만에 사장 자리를 내줘야 했고 그가 가지고 있던 10%의 지분율도 포기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의 삼성전자 10%의 지분율을 생각해봐라.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아래 글은 강기동 박사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

“유류 파동이 길어지며 비용이 크게 늘어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어요. 삼성이 인수 작전을 벌였고 결국 부도가 났지요. 내가 남는다는 조건으로 ‘항복 문서’를 쓰고 팔렸습니다. ‘강기동은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곧 퍼졌고요.”

―당시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 이사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사장으로 3년 있었는데 두 분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요. 측근들이 방해했고 제가 방치한 측면도 있지요. 시계 칩 양산에 성공하고 회사가 잘 돌아가자 역설적으로 강기동은 제거된 겁니다. 제가 만든 웨이퍼 생산 공장은 흑백 TV용 트랜지스터나 집적회로를 만드는 곳으로 전락했지요.”

―떠나올 때 허망했겠군요.

“나를 믿어준 사람들, 힘든 시절 함께하고도 버려진 직원들에게 아직도 미안해요. 삼성을 원망했지만 먹고살기 급급했어요. 분을 삭이며 생각에서 지웠지요. 한국행에 반대한 아내와는 ‘이제부턴 한국과 엮이지 말고 우리끼리 살아보자’ 약속했어요. 처음에는 진공관 군용 장비를 수리하며 가족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

삼성이 돈 될만한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을 탈취하는 짓거리는 아주 유명하다.
뭐 삼성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이 거대 자본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마는 삼성은 특히 더 그쪽 업계에서 유명하다.

C바!
글이 길어져 한편 더 써야겠다.
내가 삼성을 이렇게 기~이ㄹ~게 얘기하는 이유는 삼성이 변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고 삼성의 과를 알아야 우리나라의 적폐가 보이기 때문이다.

병ㅇ야!
다시 한번 삼가 조의를 표하며 어머님의 유덕이 후세에 이어져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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