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석아, 너 스스로를 한 번 돌아봐라. 너도 이제 정치판에서 오래 버틴 편이다. 네가 비록 지금은 나이를 무기로 “젊음”을 외치며 언변 좋은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외침이 자칫 빈 껍데기로 남을지 고민해 본 적은 있냐?
너는 최근에 이재명에게 자신의 사법적 판단을 빨리 받으라고 요구했더라. 뭐, 이재명이 유죄가 확정되고 대선판에서 사라지면 네가 선두에 설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본데, 네 자신부터 돌아봐라. 너도 이미 명태균에게 코가 꿰인 명태포 처지 아니더냐?
너와 이재명은 단순히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업계 동업자' 란걸 인식해라. 그리고 이 정치라는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를 존중하며 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너는 지금 그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검찰 권력의 편에 서서, 그들의 타겟을 조롱하고 있다. 이재명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는 논외로 하자. 검찰은 이미 이재명을 잡기 위해 별건에 별건을 더하고, 20년 넘게 기소를 남발하며 정치인을 사냥감 취급하고 있다.
네가 하버드에서 수학했다고 하니 그 정도의 논리적 사고는 할 줄 알겠지? 검찰이 오늘 이재명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다면, 내일 그 타깃이 네가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역사는 반복되고, 침묵했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목에 칼날이 다가왔을 때 후회하게 된다. 마틴 니뮐러의 말을 기억하냐?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마르틴 니뮐러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너는 지금 침묵을 넘어 검찰의 사냥을 부추기고 있는 거다. 너의 침묵과 방관, 혹은 조롱은 이 시스템의 야만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너는 지금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 입을 놀리고 있냐? 너와 같은 세대,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너의 비난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라.
정치인의 진정성은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연대에서 나온다. 너와 생각이 다르고 경쟁자가 될지언정, 이재명이라는 한 정치인을 검찰의 손에 떠미는 건 너를 위해서도, 정치판을 위해서도 최악의 선택이다. 검찰 권력이 오늘의 이재명을 삼키고, 내일의 너를 잡아갈 날이 오지 않도록 네가 앞장서서 비판해야 하지 않겠냐?
준석아, 이건 너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목소리가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네가 그 연대와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길 바란다. 정치판의 동업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라. 네가 지킬 건 검찰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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