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3
*등장하는 인물은 가명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동네의 풍경을
책상서랍 깊숙이 처박혀 잊혀졌던 수채화 물감을 꺼내어
내 마음 속에 스며든 향수를 조금씩 짜내
이미 나의 이데아를 적신 알코올에 잘 개기만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 이었다.
노을이 서서히 내려앉는 하루의 끝자락엔
태양의 그림자가 동동 매달렸다.
그 그림자가 마치 술집 네온이 손님을 삐끼하려는 듯
푸른 얼굴을 계면쩍게 동네 언저리에 살포시 디밀었다.
그리고 동네에서 하나 남은 종수네 초가집
곧 쓰러질 듯 비스듬히 누워있는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온 동네를 휘 감을 때 즈음
종수네 상머슴인 누렁이는 맛있는 여물로 저녁 만찬이 시작될 것이고
곧이어 종수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질 것이다.
“종~수야~~~!”
“종~~수야~~~!!”
“이 우라질 놈! 어여 들어와 밥 쳐 머거~~~~~~!”
종수 엄마의 우렁찬 저 소리는
어쩌면 '지지-직-' 잡음투성인 낡은 건전지라디오에서
그 시간에 흘러나오는 연속극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넋을 빼 놓은 동네 아낙들에게
퍼뜩 저녁밥 지어 새끼 밥 먹이라는 호통일지도 모른다.
혹은, 수다쟁이 수원 댁 사랑방에 퍼질러 앉아
날 저문 것도 잊어버린 채
서방 험담에 온갖 풍문을 만들어 내는데 여념이 없을 동네 여편네들에게
서방님 귀가 시간이 되었으니
주둥이 닥치고 싸게들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리 일 지도……
아님, 노는데 정신 팔려있을 동네 골목골목 조무래기들에게
귀가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도 같았다.
어른들은 이런 종수 엄마를 보고
“그 여편네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나!……ㅉㅉㅉ”
혀를 차곤 하였다.
동네의 어둠은
의례히 종수 엄마의 이 애달픈 자식 食보시의 세레머니가
저녁 공기를 한바탕 뒤흔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리고 60년대 중반
나의 유년기 귓속 달팽이관에 레코딩 되어버린 종수엄마의 목소리는
바늘만 올리면 들려오는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였다.
종수는 그 당시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보다 한두 살 많았으면 같이 놀았을 기억도 있을 법 한데
전혀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는 아마 나 보다 한참 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종수엄마와 종수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종수아버지는 삐쩍 마른 몸매에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 나왔지만
눈이 부리부리하고 키가 훤칠한 아주 잘생긴 아저씨였다.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사람 좋은 이웃 아저씨로 기억이 되고 있다.
그는 이른 아침에 누렁이를 앞세우고
밭일과 논일을 하러 다니는 소작농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동네는 많은 논과 밭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가 조금씩 커지고 주거지역이 점점 늘어나면서
기존의 논들이 하나 둘씩 메워져 그 위에 집이 들어섰고
논과 밭은 동네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항상 누렁이가 끄는 마차에 농기구를 가득 싣고
안쪽 동네에 위치한 일터로 농사일을 나가곤 하였다.
가끔 그가 태워주었던 우마차가 생각이 난다.
그 시절 우마차를 타는 재미는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어쩌다 그가 시내에 장을 보러 갈 때는
동네 조무래기들은 별 볼일도 없을 텐데도
우마차 타는 재미에 덩달아 따라 나섰고,
동네사람들 역시 그의 우마차에 신세를 지곤 하였다.
말하자면 요즘의 마을버스 역할을 그의 우마차가 하였던 것 같다.
종수네 집은 동네에 하나뿐인 초가집이었다.
물론 큰길에서 한참 벗어난 동네 안쪽에도 초가집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5~6살 나의 짧은 보폭으로 인지 할 수 있었던 거리를
기껏 500m 안쪽이라 감안 한다면,
종수네 초가집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것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종수네 집은 울타리가 전혀 없이 마당과 길이 붙어있었기에,
나와 부담 없이 소통이 되었던 친근한 공간이었다.
어느 해 겨울,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되던 해
종수네 초가집은 불이 났다.
한 밤중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불이야~”라는 종수 엄마의 비명 소리에
동네는 발칵 뒤집어 졌다.
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막 들려다
양말도 안신은 맨발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불길은 벌써 초가집 지붕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어른들은 들고 온 양동이와 세숫대야로 물을 끼얹기 시작 하였지만
이미 기세등등한 불의 광기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지붕 전체로 번진 불길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 불이 나를 희롱하였다.
그리고 그 불의 희롱에 마침내 나는 홀리고 말았다.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게 떠있었다.
그 보름달이
불타오르는 초가집을 빙 둘러 싸고
연신 물을 끼얹는 동네사람들을
스포트라이트 조명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는 불빛과
휘영청 보름달의 역광에 반사되는 사람들은
불의 희롱에 우왕좌왕 바삐 움직였다.
내 눈에 비치는 그 부산스러운 실루엣이
주변 사물에 투영되어
마치 그곳은 커다란 오페라 무대 같았다.
불이 춤을 추었다.
현란하였다.
누이들의 치켜 뜬 까만 눈동자 속에서도 불이 넘실넘실 춤을 추었고
내 안의 두려움과 호기심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오케스트라의 온갖 악기의 떨림처럼
동네 사람들이 내는 시끌벅적한 합창은
‘알레그로' 템포였기에 충분히 긴장감을 주었고,
종수엄마의 손에 이끌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누렁이의 “음메~” 하며 우는 소리는
관현악에 호른처럼 긴 호흡으로 구슬피 울었다.
나는 발칙하게도 초가를 훨훨 태우는 짙은 주황빛 불길이
보름달 조명과 함께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한밤에 펼쳐진 오페라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았다.
얼마 후
시내 소방서 높다란 감시 망루에서 이 불이 감지가 되었는지
멀리서 들려오는 소방차 사이렌의 등장으로
‘불의 오페라’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빨간 소방차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불빛에 반짝거리는 육중한 소방차는
무대에 오르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검은 옷을 뒤집어 쓴 소방수들이 그의 등장을 도와주었다.
이윽고 힘들게 무대에 오른 그가
목을 길게 빼며 크게 한 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바닷속 모든 물고기의 비늘을 쏟아 붓듯
은빛의 물줄기를 쏟아 부었다.
그것은 마치 하이톤 피아노 건반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불과 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이중주였다.
마침내 프리마돈나인양 현란하던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퇴장 인사를 하려는 듯
검고 투명한 드레스 자락을 하늘로 길게 걷어 올렸다.
그러자 불의 희롱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던 흙벽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슬펐던지
타다만 대들보와 서까래도 주저앉았다.
불은 동네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엔 종수네 초가집에 가려져 앞에선 보이지 않았던
병기네 파란 양철대문이 빤히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 이상한 기분은 무엇일까?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익숙했던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닌 것 같은 이 낯섦에
갑자기 한기가 내 등자락을 타고 내려왔다.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둘째 누이의 바지자락을 잡아끌며 집으로 가자고 보챘다.
하지만 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누이들의 뺨이 빨갛게 익은 채 달빛에 반들거렸다.
나는 뭔지 모를 설움에 울음을 터트렸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둘째 누이는
갑자기 울어대는 내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더 크게 울었다.
그리고 울면서 종수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는 누렁이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다 타버려 재만 남은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맣게 그을려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그의 얼굴 속에 치아가
그날따라 유난히 하얗고 길게 보였다.
웃고 있었다.
그가 허허롭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에 오줌을 흠뻑 쌌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연의 때처럼 키를 안 씌웠다.
동네가 어 수선 했으므로…….
(에필로그)
그 해 초여름 종수네 집은 동네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지어졌다.
영자누나네 뒷방에 임시로 보금자리를 튼 종수아버지는
봄철에 틈틈이 자신의 집터에서 흙벽돌을 찍어 내었다.
그 덕분에 동네 조무래기들에게는 새로운 놀이가 생겼다.
종수아버지가 흙벽돌을 찍는 한편에서 우리는 찰흙놀이에 열중 하였다.
찰흙으로 각종 동물과 탱크, 비행기를 만들어
흙벽돌 옆에 나란히 두고 햇빛 좋은 양지에 말리곤 하였다.
종수아버지는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며
늘 그렇듯이 사람 좋게 웃었다.
흙벽돌이 내 키 두 배 정도 높게 쌓이자,
민 씨네 담장위로 석류꽃이 빨갛게 핀 어느 햇빛 좋은 날,
종수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집을 짓기 시작 하였다.
나는 집을 짓는 어른들이 엄청 위대하게 보였다.
며칠 후
다시 병기네 파란 양철 대문이 보이지 않았다.
종수네 집은 멋있었다.
양철지붕이었다.
기분 좋게 울타리도 없었다.
나는 너무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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