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3
첫사랑
a long long time ago.....
1960년대…….
그 시절 풍광과 사람 사는 모습이
아주 오래 전에 본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왕년에 나는 어쩌꾸 저쩌구.....'
약간의 과장과 구라를 섞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할라치면
동심에 젖어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런 것 같네요.^^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어린 내 눈에 비치는 산하(山河)는 황토 빛 벌거숭이였고
일상의 모든 것들이 부족해,
학교복도, 거리곳곳엔 '근검절약' 의 표어가 항상 눈에 띄었습니다.
주전부리도 자연에서 채취한 아주 옹색한 것들이 많았었죠.
마을을 조금 벗어나 들판에 흔하게 서있던 사탕수수 대를 뚝- 꺾어,
거기서 나오는 단물을 쪽쪽- 빨아 먹으며 부족한 당분을 섭취했습니다.
메뚜기, 개구리를 잡아 들판에서 불을 놓아 구워 먹으며
모자라는 단백질을 보충하였지만
그래도 영양부족 탓에, 아이들 얼굴엔 마른버짐이 하얗게 피어있었죠.
1원에 두개짜리 눈깔사탕을 차마 깨물어 먹지 못해
입안에 번민과 갈등을 해가며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새 고무신하나 얻어 신으려
시멘트 바닥에 고무신 뒤창을 벅벅 문질러 구멍을 낸 다음,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면,
어머니는 야속하게도 고무신 땜장이에게 그 구멍을 감쪽같이 땜빵을 해와,
내 속을 홀딱 뒤집어 놓았던 그런 무정한 시절이었습니다.
좀 산다는 집도 그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었던.......
너도 나도 궁핍한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갈 땐 운동화를 신고, 집에 와선 고무신을 신어야만 했죠.
운동화는 그 시절 귀한 외출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무신은 꼬맹이들의 놀이 도구였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선을 그어 놓고 발가락에 고무신을 걸친 다음, 휙- 발차기를 합니다.
그렇게 고무신을 누가 멀리 보내나 시합을 한 후에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책가방을 들어주는 놀이도 했었습니다.
또 고무신은 싸울 때 벗어 들고 칼처럼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고,
개구진 장난에 동네 유리창을 깨 도망을 쳐야 할 때는
고무신을 벗어 양손에 꼭 쥔 채 도망을 쳐야만 했습니다.
고무신이 워낙 미끄럽고 잘 벗겨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세 잡히고 말았습니다.
도망치다 고무신이 벗겨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고무신을 찾으러 가
직사하게 꿀밤을 얻어맞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더운 여름날,
하루 종일 빨빨거리다 집에 돌아와 고무신을 벗으면
뒤꿈치와 발가락 사이엔 땀에 범벅이 된 때꼬장이 더덕더덕 붙어있었고
발가락이 팅팅- 불려있기가 일수였죠.
땀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방수고무신이니
그 땀을 고스란히 발가락이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고무신은 냇가에서 배가 되고 올챙이를 담아 놓는 어항도 되었습니다.
‘범표’, ‘타이어표’, ‘기차표’, ‘말표’, ‘왕자표’ 고무신.
그 중에서도 ‘타이어표고무신’이 질~ 질겼습니다.
진짜로 폐타이어로 만들었다 하더군요.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약간 맹~해서 조금은 푼수같던 코지지리 아이였습니다.
그당시 우리 학교는 1학년 때 남녀혼성반으로 편성되어
그대로 3학년 때까지 올라 가 4학년 때 남녀가 구분되어지는 학급체계였습니다.
1학년 때 그 여자아이는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고
울음보도 많이 터트렸던 아이였습니다.
과수원을 하는 부잣집 딸이라서 그런지
학교 올 땐 아주 깨끗한 옷차림이었지만
돌아갈 때 옷차림은 지저분해지는 아이였습니다.
물론 공부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여자아이가 2학년 때 내 짝꿍이 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탐탁치가 않았지요.
그런데 이아이가 나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인물 했걸랑요.^^
사실 나는 1학년 때부터 짝사랑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경숙이...... 그 경숙이가 내 첫사랑이었습니다.
그 때는 경숙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처럼 보였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옷도 공주처럼 참 예쁘게 잘 입었죠.
항상 깨끗한 원피스치마에 흰 운동화......
그리고 발목에 레이스가 달린 흰 양말이 유난히 돋보이는 아주 예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시절 앨범을 보면
경숙 이는 그리 예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코지지리 짝꿍 여자아이가
훨씬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릴 적엔 사고가 미숙하기에
옷차림이나 공부를 잘하냐에 따라 미의 기준이 많이 좌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들들에게
여자 친구를 지금의 너의 美의 잣대로 사귀지 말고
무조건 많이 사귀어 두라고 말합니다.
“지금 아무리 못 생긴 여자아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여자로 성숙되어지는 과정은 오묘한 신 의 장난이 개입되어지기 때문에 그중에 하나 둘은 나중에 네가 말도 붙이길 어려울 정도의 예쁜 숙녀로 자라날 것이다”
우리 아들들 역시 나를 닮아서 학습능력이 뛰어납디다.
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더군요.^^
2학년 가을소풍 때였습니다.
우리학교는 해마다 항상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모 대학캠퍼스로 우거진 숲과 광장의 잔디가 어우러져
어린이가 놀기에는 아주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소풍 때 우리들에게 가장 흥미를 끄는 것 중에 하나가
다름이 아닌 ‘보물찾기’라는 놀이가 있었지요.
쪽지에 간단한 학용품 따위를 적어 나무나 돌 틈 사이에 숨겨놓고
이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는 놀이 말입니다.
점심시간 전,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놀던 주위엔 아주 울창한 오리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대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벌들이 서식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곳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주의사항이 끝나고 호각소리와 함께
우리는 보물을 찾아 각자 흩어졌습니다.
나는 신나게 싸돌아다니며 주위를 샅샅이 뒤진 결과 보물 몇 개를 찾았습니다.
대부분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 따위들이었지요.
한참동안 정신없이 보물을 찾아 돌아와 보니
어쩐 일인지 경숙이가 선생님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내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생각을 해보십시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이 즐거운 소풍날에 마냥 울고 있습니다.
' 어느 놈이 때린 것일까?
아님, 보물을 못 찾아서? ‘
그런 거라면 그 까이꺼! 내가 찾은 보물을 다 줄 수도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이기에…….
선생님이 왜 우냐고 경숙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하-고 예쁜 것이.......
아-글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저 하염없이 슬피 울기만 하였습니다.
흐 미~
내 가슴이 찢어지는 줄만 알았슴돠
가만!
이거 울 이쁜 효리가 보믄 안 되는데…….
어짜지……. 지랄 났다. 고칠 수도 엄꼬…….
그렇다고 사랑했던 걸 부정할 수도 엄꼬…….
에라이~ 모르것다, 죽기 아니믄 까무러치기다.
다 늙어서 뭘 어케 할라꼬……. Go~~~~다. ^^
선생님이 경숙 이를 달래며 재차 묻자
경숙이가 울먹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보물을 찾는 것에만 열중하느라 선생님 말씀을 잠시 깜박하고
자신도 모르게 오리나무 숲에 들어갔었나 봅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무서움에 급히 뛰어 나오느라
물통을 그만 숲속에 떨어뜨리고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노란색 물통!
그날 아침,
꽃무늬 원피스에 긴 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따고,
머리엔 빨간 핀으로 활짝 꽃을 피우고
노란색물통을 어깨에 둘러맨 경숙 이는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였습니다.
나는 그런 경숙이가 황홀했었습니다.
아마 그 물통은 그날 경숙이의 코디네이션에 키 포인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란색물통은 그 시절 경숙 이에겐 무척 소중한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훌쩍이는 경숙 이에게
나중에 돌아갈 때 찾아주겠다 하며 울지 말라 달랬습니다.
선생님의 위로 말에 울음을 차츰 멈추며,
그래도 못내 아쉬운 듯
오리나무 숲을 쳐다보는 경숙이의 젖은 눈망울이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은 참을 수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때
내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까이꺼! 내가 찾아주자.
그래서 그 물통을 경숙 이에게 전해주면
경숙 이는 나에게 무척 고마워하며
그동안 속으로만 끙끙 앓던 내 마음을
어쩌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즉시 오리나무숲으로 갔습니다.
벌이 서식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저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작업은 원래 쉽지 않은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해!
'작업은 어렵다. 그러나 그 작업의 열매는 달콤하다!'
머 대충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숲은 대낮인데도 약간 어두웠습니다.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길을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경숙이가 어떻게 거기를 들어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월매나 무서웠을까……. 고 어리고 예쁜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넘 조숙했나……. 의심 없이 걍 받아드리세요^^)
조심스레 발을 떼며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저만치에 노란색물통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물통을 전해주면 활짝 웃을 경숙 이를 생각하니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물통을 집어 들고 숲을 나오며 나는 기쁜 나머지 그것을 빙빙- 돌렸습니다.
그때 물통이 나뭇가지에 탁- 부딪쳤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목덜미가 따끔했습니다.
무지 아팠습니다. 벌에 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물통을 빙빙 돌리다 나뭇가지에 있던 벌집을 건드렸었나 봅니다.
나는 정신없이 손을 휘저으며 도망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더욱더 벌들을 흥분시키고.......
이제는 귓전에서 윙윙거리며 벌떼들이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삽시간에 벌떼공격으로 수십 방을 쏘였습니다.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습니다.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미친 듯이 죽어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이윽고 숲을 빠져 나와 넓고 환한 곳에 이르자 벌들이 안 보였습니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지 아팠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목덜미와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공포에서 벗어나고 정신을 차리자
나는 또 다른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내 모습을 보면 분명히 추궁을 할 텐데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입니다.
그 둘러댈 핑계거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물통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겁에 질린 나머지 정신없이 달리다 놓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걱정할 여유가 내게 없었습니다.
당장 선생님 앞에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점점 부어올라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선생님의 호각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들 모이라는 신호였습니다.
어쩔 수없이 저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주저주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주치는 아이들이 나를 보며 토끼 눈을 뜨고 놀라는 모습에
나는 더욱 더 겁을 먹었습니다.
이윽고 선생님이 내게로 달려왔습니다.
벌써 누가 고자질을 한 모양입니다.
'우라질 시끼들!'
선생님이 나를 보자 깜짝 놀라 기겁을 하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내 얼굴을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어머나' 소리만 연발하셨습니다.
그사이에 다른 선생님이 구급상자를 가지고 급히 달려오시고
즐거운 소풍이 마치 외계인처럼 얼굴이 벌겋게 퉁퉁 분 괴물 출현으로
온통 발칵 디비졌습니다.
아이들이 구름처럼 내 주위로 몰려들고
부어 오른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만 딱 딱 벌렸습니다.
보나마나 뻔할 뻔자죠.
내가 느끼는 내 얼굴이 내 얼굴 같지가 않고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도 무슨 고무풍선 만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이 내 얼굴에 약을 바르며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진짜 무지무지 쓰리고 아팠지만 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에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더구나 쪽팔리게 경숙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손길이 내 부은 얼굴에 닿을 때마다
얼굴이 따끔거리고 화끈거려 미칠 지경이었지만
나는 입을 꼭- 악문 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끝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칭찬을 하였습니다.
사내대장부라 아픈 것도 잘 참는다고.....
그 순간, 속으로 나는 외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단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울음을 보일 수없는.......
가슴앓이 하는 남정네 라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혼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생님이 고마웠으니까요.
그렇게 한참을 선생님의 구급처치를 받고 있는데
우리 반 사내아이 중 한명이
경숙이 에게 뭔가를 전해주는 게 보였습니다.
물통이었습니다.
내가 찾아 들고 오다 떨어트린 노란색 그 물통이었습니다.
씨바!
경숙이가 좋아라 웃었습니다.
아주 활~짝 웃었습니다.
나는 경숙이의 그 환한 웃음에 그만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어머나! 내가 너무 세게 눌렀나 보군아. 미안하다 살살 할께........."
하시며 호들갑을 떠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에 더욱 더 서러워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저 물통은 내가 찾은 거란 말이여요.
저 새끼가 들고 온 저 물통은
내가 경숙이 에게 전해 주어야 한단 말이여요.
그래야 경숙이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 말이여요.
저 새끼 땜시 내가 억울해서
시방,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단 말이여요.
얼굴은 하나도 안 아프요.
마음이 아프요.
너무 속상해서리........
* 경숙이는 가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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