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마음 속 작은 동화

아버지

2008-02-23

    아버지
 
 삶이란 어쩌면……
 그리움으로 시작되어 그리움이란 마침표를 찍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내 삶에 끝까지 남을 그리움이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그 그리움을 만나러 가는 차표를 한 장 쥐어준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만나러 갈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며칠 후
 아버지는 퇴근 후 우리 가족을 시내로 불러 내셨다
 술을 한 잔 거하게 하신 아버지는
  무척이나 행복해 하셨다.
 
       나는 안다.
       그것은
       아들의 입학식 날 내가 느꼈던 그 감동과 같은 것이기에......
 
 그 날 아버지는 제과점에서 단팥죽을 사주셨다.
 그 맛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모습……
       온 가족이 단팥죽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숟가락을 쪽-쪽- 소리 내어 빨아 먹었다.
 
그 소리에 
어머님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시며
우리 오 남매(막내 태어나기 전)에게 곱게 눈을 흘기셨다.
 
       그 모습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 하찮은 단팥죽 한 그릇은
 온 가족이 함께 한 것만으로도 이 세상 그 어떤 진귀한 음식보다
 더 할 나위 없는 내 생의眞.味 였음을......
 
        얼마 후……
        아버지는 다니시던 도청을 그만 두셨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안정한 일용의 양식을 보장하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떠밀려 자신의 날개를 펴고
        때 늦은 저녁 비상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비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뒤, 아버지의 삶은.......
        아픔이었다.
 
 제기랄!
 
        아버지의 잇단 사업실패로 집안이 기울어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고향을 등진 서울에서의 사춘기 시절은
        쾌활했던 나의 성격조차 바꿔 버렸다.
 
 
 실체는 없고 말로만 있는 부잣집 장손......
 그 몰락한 집안을 내가 일으켜 세우리라는 무언의 기대와 압력.....
 
        하지만......
        내가 그런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아니, 그저 이유 없는 반항의 겉멋만 들어서.......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자학하며 온갖 지랄 폼만 잡았었다.
 
 커가며.......
  나는 분노만 키워갔다.
 
        말년에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보내시고
        중풍에 몇 년을 분노의 회한을 토해내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많은 시간
        나 역시 분노의 팔매질을 허공에 해대며 방황을 했었다.
 
 
 무언가 당연히 있어야 할 내 것이......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그런 억울함이 사춘기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내 나이 마흔 아홉.......
        이 허망한 나이에 이제야 아버지를 바라본다.
 
비정한 승부에서 뒤쳐진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권위라는 껍데기를 짊어지고 비틀거리다가
 집안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고개도 못 들고"주저앉아 있듯이.......
 아버지는 나의 찬란한 사춘기를 송두리째 빼앗아간 죄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거울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닮아 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차츰
        깨달아 갔다.
        그것은 아주 천박한 배앓이였음을......
       
 그리고 허 접하게 살아오며 철이 들고
 삶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때쯤
 아버지는 내 삶에 시리도록 아픈 간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고백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내게 찬란한 빛 이였음을......
 
 
 그리고......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찌지리 바보처럼 못했던.......
 이제는 하지 않으면 영원히 파묻힐 화석이 될 것만 같아
 사랑이란 지극히! 그 평범한 말을.....
  당신께 하렵니다.
 
        사
        랑
        합
        니
        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마흔 여섯의 찬란한 빛은
 내게
 내 두 아들에게
 또 그들의 아들들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으로
 빛으로......
 이어져 가겠지요.
 
        이제는 당신이 살아계셨던 나이보다 더 늙은 나
         그 내가 지금 아들에게 듣고 있는......
        하지만 내가 당신께 부르고 싶었던......
        정말 당신 앞에서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부르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말!
 
그것은
아빠입니다.
아빠~
 

 
 

'내 마음 속 작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말라야의 강가에서  (0) 2024.11.06
유년기: 짝꿍  (7) 2024.10.15
유년기- 우리 아버지는 건맨  (0) 2024.10.13
유년기- 첫사랑  (1) 2024.10.13
유년기 - 탕수육! 그 환상적인 달콤함........  (1)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