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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사라진 일본, 대한민국의 식량위기 경고음

공깃밥 한그릇 ‘2490원’···일본 초유의 ‘쌀 실종’ 사태

[주간경향] 일본에서 쌀이 똑 떨어졌다. 생산량은 늘었으나 시장에 나온 쌀이 줄어드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 쌀값은 1년 만에 70% 넘게 치솟았다. 쌀 수출 대국에서 일어난 이례적 품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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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벌어진 '레이와 쌀 소동'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쌀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가격이 1년 새 70% 이상 폭등하며, 비축미까지 방출해도 안정되지 않는 일본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머지않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이 소동은 단순한 일시적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된 감산 정책, 농업 기반 약화, 기후변화, 식량안보 정책 부재가 복합적으로 빚어낸 '예고된 위기'였다.

일본의 쌀 실종 사태는 단순히 생산량 감소나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수입 쌀과 유통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한 정책 변화도 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1995년 식량관리법 폐지 이후 일본 정부는 쌀 시장을 점차 민간에 개방했고, 2018년 감반제도 폐지로 정부 통제는 더욱 약화됐다.

그 결과, 민간 수입업자들은 가격 변동성과 수익성만을 고려해 수입량을 조절했고, 시장 수요와 공급의 간극이 벌어지자 순식간에 쌀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식량과 같은 전략물자를 시장 논리에만 맡겼을 때 얼마나 취약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역시 민간 수입 의존도가 높고, 비축 시스템은 여전히 취약하다. 만약 글로벌 곡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수출국이 수출을 제한할 경우, 우리는 언제든지 동일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본의 실패는 한국에게 뼈아픈 경고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하위권이다. 1970년 79.5%였던 자급률은 2022년 49.3%까지 추락했고,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밀, 옥수수는 1% 남짓, 콩은 10%도 안 된다. 이마저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 우리가 밥 한 끼를 먹는 것도 남의 나라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고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까지 펴고 있다. 정부는 2025년까지 벼 재배면적 8만 헥타르 감축을 목표로 잡았다. 겉보기엔 쌀 소비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식과 가공 산업에서의 쌀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가정 내 소비만 줄었다고 섣불리 판단해 생산을 줄이면, 일본처럼 시장에 쌀이 없어지는 사태는 순식간이다.

기후변화는 더한 위협이다. 이상기온, 집중호우, 폭염은 이제 계절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고, 농업 생산은 매년 불확실성에 시달린다. 병해충도 늘었고, 벼가 자라던 지역은 점점 북상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농지면적은 도시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25년 경지면적은 150만 헥타르 선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사실상 식량위기의 임계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땜질이 아니다. 한국은 지금 당장 다음의 실천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첫째, 국내 식량 생산기반을 지켜야 한다. 감산 정책은 재고 과잉 해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식량안보에는 재앙이다. 전략작물로의 전환은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생산성 확보와 품질 관리, 재배기술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 농지를 보전하고 젊은 농업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정책도 절실하다.

둘째, 해외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안정화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 국가에 곡물 수입을 의존하는 구조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국영 무역 시스템을 정비하고, 해외 농업 개발과 식량 확보 프로젝트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에 강한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 농업, 스마트팜, 정밀농업 등 기술을 접목하고, 기상 예측과 재해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재해보험 제도도 농민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

넷째, 쌀 소비 패턴에 맞는 생산 정책을 설계하라. 통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가공 및 외식 산업의 수요를 고려한 유통·비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쌀 소비에 대한 국민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식량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자원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은 뒤늦게 농업기본법을 개정하며 식량안보를 국가 전략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쌀 남아돈다'는 착각에 빠져 위기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식량은 국방과 같다. 총알 떨어지면 지는 전쟁처럼, 쌀이 사라지면 굶는 재앙이 온다.

지금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정부는 표 계산만 하지 말고, 식량 문제를 안보 문제로 다뤄야 한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 국내와 해외의 공급망 구축, 기후와 농업의 조화, 이 모든 걸 유기적으로 설계해 식량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쌀이 사라진 일본의 오늘은, 대한민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늦기 전에,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쌀은 밥 한 공기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존엄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