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대선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는 또다시 정책이나 비전 없이, 상대를 향한 공격과 조롱으로 일관했다. 그의 토론 태도는 마치 커뮤니티 댓글창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키보드 싸움과도 같았고, 정치라는 공적 영역을 유희와 갈등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이준석 후보의 정치행보를 보면, 우리 정치가 더는 이와 같은 방식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느끼게 된다.
그가 보여준 정치의 양상은 대화도, 협치도, 책임도 아니다. 이는 혐오에 기반한 대결정치이며, 공동체를 위한 설계가 아닌, 지지층의 환호만을 겨냥한 정치다. 특히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의 지지 문화는, 극단적 언행과 차별적 사고방식을 정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 파괴력은 향후 한국 정치를 오랜 기간 왜곡할 수 있다.
이 글은 특정 후보 개인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를 병들게 하는 구조와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다. 우리는 지금, 혐오와 조롱이 통하는 정치를 중단해야 할 분기점에 서 있다.
키보드 배틀이 된 날, 이준석을 보며 느낀 절망
2025년 대선 토론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 정치하러 나온 게 아니라 싸우러 나왔구나."
이준석 후보의 토론 태도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정책은 없고, 조롱만 있다." 상대를 공격하고, 비꼬고, 낙인을 찍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자신이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은 단 하나도 없고, 오직 상대 후보를 공격해서 점수 따려는 전략만이 보였다.
그건 토론이 아니라 키보드 배틀이었다. 현실 정치가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창에서 익숙한 방식이었다. 상대를 눌러야 이긴다는 철학 없는 대결주의. 국민은 빠져 있고, 존재하는 건 '내가 얼마나 센 말을 했는가'만이다.
이준석 후보는 스스로 말한다.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중시했던 것은 바로 과정의 정당성과 포용의 리더십이었다. 노무현은 반대를 설득했고, 토론하며 신뢰를 쌓았다. 정치의 방식 자체가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는 무엇을 했나? 자신이 창당한 정당 내에서 비판적인 인사를 배제하고, 친소그룹 중심으로 권력을 강화했다. 토론도 없이 직무정지를 밀어붙였고, 갈등에 대한 조율보다 배제를 택했다. 이 방식은 '노무현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펨코,일베 세대와 이준석 정치의 추락하는 결합
이준석 후보의 지지 기반 중 일부는 펨코나 유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젊은 남성 유저들이다. 이들은 여론이 아닌, 언론이 만들어준 프레임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약자를 향한 혐오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공공의료, 여성 정책, 노인복지 등에 대해선 '주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간주하며, 경쟁 논리를 절대화한다.
이준석 후보는 이런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는 복지와 공공성에 대한 비전을 내놓지 않았고, 오히려 불필요한 것으로 폄하하거나 축소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의 정치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무엇을 해주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목록뿐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가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란 공동체를 위한 약속이고, 책임이며, 설계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은 조롱과 갈라치기, 혐오로 동원을 시도하며 정치 그 자체의 품격을 허물고 있다. 우리는 이 흐름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신'을 소환할 자격이 있는가
이준석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도 '노무현 정신'을 언급했다. 하지만 정치란 상징을 차용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신은 '구호'가 아니라 '방식'이다.
그가 말하는 기득권 타파, 청년 정치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과정의 민주성, 소수자에 대한 포용, 비판에 대한 수용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방식은 그와는 정반대다.
정치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천이다. 노무현의 이름을 말하려면, 그 정신을 실제로 실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치적 소비이자 왜곡일 뿐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정치를 다시 묻고, 다시 세워야 한다.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정치문화를 용인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 이 흐름을 멈추지 않으면, 조롱과 분열의 정치가 다음 세대를 잠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글이 쓰인 이유다.
억지 눈물 짜내느라 용쓰는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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