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는 기자가 기자인가
기자의 존재 이유는 질문에 있다. 의심하고, 파헤치고, 묻고 또 묻는 것이 기자의 본능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언론 현장에서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중요한 사안이 터져도 질문하지 않고, 의혹이 제기되어도 침묵하며, 권력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는 기자들이 넘쳐난다.
얼마전 이준석의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일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매불쇼에서 이명수 기자가 증언한 그날의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이명수 기자는 장인수 기자와 함께 의도적으로 이준석을 찾아가 명태균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질문했다. "어제 5시에 명태균과 전화했죠? 무슨 내용으로 했어요?"라는 구체적인 질문에 이준석이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침묵했다. 이명수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 순간 현장의 분위기는 기이했다.
"저는 옆에서 '아이, 걸렸다. 이 기자들 난리 나겠구나' 했는데, 질문이 끝나자마자 다음 질문은 '오늘주한 미국 상공 회의소 행사인 암참(AMCHAM)에서는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였어요. 명태균과의 전화에 대해서는 단 한 명도 묻지 않았고, 심지어 저를 한번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저게 무슨 얘기지라고 이렇게 쳐다보는 기자도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기자들의 이중적 태도였다. 오히려 그들이 화를 낸 것은 다른 언론사가 기자회견 시간을 단독 보도했다는 사실이었다. 공보실 직원들이 그 일로 사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정작 단일화라는 중대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해진 각본 속의 꼭두각시들
이들 기자들에게는 이미 '정해진 기사'가 있다. 단일화를 할지 말지에 대한 추측성 기사, 지지율 변화에 대한 분석 기사, 후보들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스케치 기사들 말이다. 이런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콘텐츠 밖의 것들은 아무리 중요해도 '튕겨낸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더 이상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편집국장과 팀장의 눈치를 살피고, '이거 올리면 까일 텐데'라는 계산부터 한다. 권력자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른 기사는 애초에 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기자인가, 아니면 권력의 대변인인가.
2010년 G20의 데자뷔
이런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을 때, 그 어떤 기자도 손을 들지 않았던 장면을 기억한다. 결국 중국 기자가 "동아시아를 대표해 질문하겠다"며 나서야 했던 그 어색하고 창피한 순간 말이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 기자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권력 앞에서 움츠러들고, 중요한 순간에 침묵하며, 정작 해야 할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언론 선진국의 모습인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침묵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의 침묵은 단순한 직무유기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인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다.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포기하면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독재로 변질된다.
국민의 알 권리는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실현된다.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진실은 영원히 묻힌다. 권력자들의 거짓말은 그대로 사실이 되고, 부정부패는 은폐된다. 이것이 바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이 만들어내는 가장 무서운 독재의 모습이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

기자들의 침묵은 말뿐 아니라 손끝에서도 드러났다. 2025년 6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MBN 카메라 기자가 김혜경 여사의 팔을 움켜쥐고 꼬집으며 등을 밀치는 장면이 영상에 포착되었고, 이는 슬로우 비디오로 확인된 명백한 신체 접촉이었다. 우연한 접촉이라 보기 어려운 이 장면에 대해 시민들은 성희롱과 폭력으로 규정하며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MBN은 사건 직후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당사자인 기자는 끝내 해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언론계가 ‘한 명의 일탈’ 또는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집단적 침묵으로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도, 질문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진실 앞에 질문하지 않고, 폭력 앞에 침묵하는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언론개혁의 진짜 과제
언론개혁은 단지 가짜뉴스나 허위보도만을 겨누어서는 안 된다. 정작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 의심하지 않는 언론, 권력에 길들여진 보도 관행에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론은 영원히 권력의 나팔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자 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권력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국민의 편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기자의 본분임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언론사 내부의 자기검열 구조와 상명하복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질문하는 용기를 되찾아야 할 때
진짜 기자라면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권력자들이 답하기 싫어하는 질문,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질문, 국민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두렵다면 기자 뱃지를 떼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 감시에 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은 스스로 그 존재 이유를 포기한 것이다. 침묵하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제라도 질문하는 용기를 되찾지 않으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없다.

https://malasu.tistory.com/m/555
[언론개혁 1]언론은 언제부터 썩었나? 이명박에서 윤석열까지
왜 이 연작을 시작하는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부정적이고 나쁜 사건, 사고, 사회적 병폐나 정치적 왜곡을 마주할 때마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래서 언론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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