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며 새로운 국정의 방향타를 잡았다. 그러나 거리는 아직도 지난 대선의 격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다. 윤석열 정권의 막바지, 내란 수준의 국기문란이 드러난 뒤 극우 세력은 정치적 궁지에 몰렸고, 그 출구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현수막 정치였다. 대선 기간을 전후로 전국의 전봇대와 가로등, 심지어 초등학교 담장까지 점령한 이들의 메시지는 감정적 선동과 역사 왜곡으로 일관됐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도시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다.
점령의 수단이 된 표현의 자유
현수막은 정치 표현의 한 방식이지만, 오늘날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점령의 수단이 되었다. 시민의 일상 공간을 일방적으로 점유한 채, 때로는 혐오와 조롱, 거짓과 왜곡을 시각적 폭력처럼 퍼붓는 방식으로 남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정치 현수막은 정책이 아니라 공격으로 가득하다. "내란당 해산", "탄핵은 공범", "이재명 구속", "윤석열 탄핵" 등은 냉정한 토론의 언어가 아니다. 이들은 시민의 정치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진영 간 증오만을 증폭시키는 도발적 레토릭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초등학교 담장에 걸린 역사 왜곡 현수막이었다. 극우단체가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을 "공산폭동"이라 규정하며 만든 이 현수막은, 정치적 표현을 넘어 교육 공간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민주헌정 질서에 대한 모욕이다.



미래 세대를 향한 왜곡된 기억의 주입
5.18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인류 보편의 민주주의 유산이며, 4.3은 국가가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런데 이를 전복적 폭동으로 호도하는 메시지가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붙어 있다는 것은, 단지 무책임한 정치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향한 왜곡된 기억의 주입이다.
정당한 정치 표현이라며 면죄부를 주는 선관위, 단속을 기피하는 지자체, 이를 방치하는 교육청까지 모두 무기력한 책임 회피의 공범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지만, 그 자유가 허위와 증오의 방패로 작동하는 순간, 자유는 그 본래의 이름을 잃는다.
정치 자원의 독점을 공고히 하는 과시의 장치
현수막 정치는 소통이 아닌 과시의 장치다. 거대 정당은 전국 단위로 물량 공세를 퍼붓지만, 정치 신인이나 소수 정당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정치 표현의 불균형을 넘어, 정치 자원의 독점을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시민은 선택의 다양성을 잃고, 정치의 피상적 구호만을 반복해서 소비하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은 디지털 시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MZ세대는 더 이상 종이 한 장에 적힌 슬로건으로 정치에 끌리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랙티브한 설명, 영상 기반 소통, 그리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원한다. 그런 시민에게 지금의 현수막 정치는 무능하고 고루하며, 심지어 모욕적이다.
세계적 규제 모델을 참고한 강력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정치적 기만과 역사 부정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거리의 현수막이 그 대표적 상징이다.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가 절실하다.
독일은 이미 2018년부터 네트워크 집행법을 통해 온라인상 혐오발언을 24시간 내 삭제하지 않으면 거대 플랫폼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특히 역사 부정, 혐오 선동 표현은 형사처벌 대상이며, 홀로코스트 부정은 최대 5년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프랑스는 2024년부터 온라인 혐오표현 규제를 강화하며, 허위사실 유포나 인종·종교·역사 왜곡에 대해 형사처벌과 플랫폼 제재를 병행하고 있다. 영국의 온라인 안전법은 혐오표현이나 테러 선동 콘텐츠를 방치한 플랫폼에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등 법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했다.
한국도 이제는 결단할 때다. 단지 선관위의 형식적 검토만으로 모든 현수막을 통과시키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조치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첫째, 역사적 사실 왜곡 금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5.18, 4.3 등 국가공인 사안에 대한 허위현수막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 혐오 선동 표현을 금지해야 한다. 상대 진영을 범죄자로 규정하거나 시민을 내란 공범으로 취급하는 문구는 민주주의 질서 교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셋째, 디지털 전환 유도와 현수막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역별 설치 한도를 명확히 정하고, 디지털 전광판 및 QR 기반 정책 안내로 전환할 법적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사후 검열 및 시민 신고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시민이 직접 위법 현수막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위반 정당에 대해 과태료 부과 및 일정 기간 현수막 금지 조치를 적용해야 한다.
혐오와 왜곡의 자유는 민주주의가 보장할 가치가 아니다
혐오와 왜곡의 자유는 결코 민주주의가 보장할 가치가 아니다. 정치 표현의 자유는 사실에 기반하고 공익에 부합할 때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현수막 난립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허위와 선동을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정치 카르텔의 특권 행사일 뿐이다.
이제 정치는 거리의 외침이 아니라,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수막은 사라져야 한다. 혐오와 왜곡, 점령과 배제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치는 공간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설득하는 예술이다. 그 첫걸음은 거리의 천 조각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제 입법부가 응답해야 한다. 정치 혐오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거리부터 정화해야 한다. 법은 뒤따라서는 안 된다. 앞서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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