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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를 개인의 방패로 쓴 자, 네타냐후를 고발한다


2025년 6월, 이스라엘은 '떠오르는 사자 작전(Operation Rising Lion)'이라는 명분 아래 이란을 전격 타격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실존적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이라 주장했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노골적인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그는 이란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파멸을 모면하려고 미사일을 쏜 것이다.

네타냐후는 지금 세 개의 지옥문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첫째, 사법 리스크. 그는 사기, 배임, 뇌물수수 등 3건의 부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있다.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가자지구에서의 전쟁범죄 혐의로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법정에 선 총리가 전쟁을 명령하고 있다.

둘째, 연정 붕괴 위기. 초정통파 정당들이 병역 면제 법안을 놓고 정부 붕괴를 예고했고, 네타냐후는 의회 불신임안에서 겨우 61대 53이라는 턱걸이로 살아남았다. 이대로 가면 조기 총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사면초가’였다.

셋째, 국제적 고립과 여론 붕괴. 2023년 하마스의 공격 이후 안보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커졌고, 수만 명이 사망한 가자지구 참사로 국제사회는 등을 돌렸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인질보다 총리직이 우선이냐"며 거리로 나왔다. 네타냐후는 이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란이라는 ‘외부의 적’을 불러내 내부의 적을 잠재우려 했다.

전형적인 ‘Wag the Dog’, ' 위기 대응 단결' 의 활용이다. 네타냐후는 안보를 말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엔 한치의 진정성도 없다. 알자지라는 정치 분석가 오리 골드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의 생존이 아닌, 네타냐후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공격 시점은 너무도 의심스럽다. 공습 하루 전, 정부는 간신히 해산을 피했고, 하루 뒤 이란을 공격했다. 이게 우연일 리 없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 작전은 애초 2025년 4월 말로 계획됐으나, 국내 정치 상황에 맞춰 시점을 바꿨다.

미국 정보당국조차 이란의 핵 위협은 임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란의 무장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네타냐후가 말하는 “실존적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존재한 건 그의 재판과 권력 상실에 대한 공포뿐이었다.

가장 악랄한 대목은 이란 공격이 가자지구에서의 학살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전환 효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참상, 그중 3분의 1이 아이들이었다. 이 죽음의 행렬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를 “외교를 방해하려는 방화범”이라 불렀다. 맞는 말이다. 네타냐후는 외교의 문을 부수고 전쟁의 문을 열었다.

그가 믿는 유일한 진리는 하나다. “전쟁은 권력을 지킨다.”
하지만 그 대가는 누가 지불하는가?그의 정치적 도박으로 인해, 중동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무고한 시민들은 목숨을 잃고,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시민들이여, 그리고 세계 시민들이여.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한 개인의 두려움이 국가를 전쟁으로 끌고 가는 참극이다. 정치 권력을 위해 국가 안보를 인질 삼는 자, 네타냐후는 퇴진해야 한다. 그가 쏜 미사일은 이란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의 전쟁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참혹한 교훈을 남의 나라 일처럼 넘겨선 안 된다. 우리 역시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도 네타냐후처럼 정치적 파멸을 피하기 위해 내란을 꾀하고, 외환을 조장하려던 폭군이 있었다.

2025년 12월 3일, 그 자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국회 앞으로 보내며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진실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권력의 총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 용기와 단결이 결국 또 하나의 역사적 참사를 막아낸 것이다.

지도자의 망상은 전쟁을 부르고, 국민의 침묵은 독재를 키운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국가를 개인의 방패로 삼았고, 그 대가는 이스라엘 국민이 치르고 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오직 깨어 있는 시민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