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05
1970년대 중반, 그때는 지금 아이들처럼 대놓고 여학생에게 접근한다는 게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아니...... 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 배짱 좋고 얼굴에 철판을 깐 놈들! 나는 졸라 부러웠었다. 하지만 그런 얘들이 정말 괜찮은 여학생에게 작업을 걸면, 그 여학생에게 듣는 말은 “ 흥-! 별꼴이야! “ 이었다. 성공 확률 거의 제로라 하겠다.
그 시절, ‘Cool’ 하다는 것은 발랑 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요즘처럼 “ 나! 너 좋아하는데 우리 사귈래?””좋아!” 또는 “됐거든!” 이 얼마나 편한가? 서로 애태울 필요도 없고 아까운 세월도 죽일 필요 없는 상호간에 정말 확실한 소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남자나 여자나 가면을 하나씩 쓰고는 탐색전으로 진을 다 빼는, 너무나 고루한 구애의 몸짓을 하였다. ‘여자는 내숭....... 남자는 후까시......’‘순간의 쪽 팔림은 영원하다.’ 등등...... 서로가 이런 보이지 않는 벽에 연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청춘의 열정은 서서히 지쳐갔던 것이었다.
고삐리들이 여자 친구를 만들려면 우연을 가장해서 그리고 운명처럼 뭔가를 꾸며야만 했다. 그래서 상대방 여학생이 화들짝 놀라 도망가지 않게 내숭 피울 시간을 약간 주어야 했다. 많이 이용되었던 것이 주로 편지였다. 등교 길에 버스 안에서 그녀의 가방에 살짝 집어 넣는 것 말이다.
그 시절, 버스 안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무릎에 받아 주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다. 이것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아주 자연스럽게 여학생에게 액션을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학버스관습이었지만 때론, 이 아름다운 관습이 짓궂은 얄개들에 의해서 악용되기도 하였다.
방과후, 한 패거리의 친구 녀석들과 귀가 길에, 버스 안에서 앉아 있는 여학생이 발견이 되면 장난끼가 발동이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 가방을 너도 나도 무릎에 올려 놓는 것이었다. 여학생의 무릎엔 금새 산처럼 가방이 쌓이고 난처함과 부끄러움에 볼이 빨갛게 물든 여학생의 모습은 참 귀여웠다. 우리는 그렇게 짓궂은 장난을 걸면서 여학생에게 호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여하튼, 편지는 가장 효과적으로 나의 맘을 전달 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그것 또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만약 반응이 없다면 쪽 팔림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편지 내용도 지금 생각하면 유치 찬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 달빛이 창문을 두드리고 호수같이 맑은 그대의 두 눈이 아른거려 잠 못 이루고 있는 이 밤......” ㅎㅎ 닭살이지 뭐....
통학을 하다 보면 늘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기 때문에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버스를 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버스 안에서 자주 만나는 여학생들이 있다. 혹, 그들 중에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다면, 덜컹거리는 버스에 오르때 마다 심장도 덩달아 빨라진다. 고백하지만 나도 그런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효리 위치 확인 중 ^^)
어느 날, 나는 그날도 기대를 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역시나 그 여학생이 있었다. 반가웠지만 내색은 금물이다. 쪽 팔리니까..... 나는 결코 그녀 옆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빈 공간이 있더라도 선뜻 발이 옮겨지지가 않는다. 혹시 불규칙한 내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들릴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한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버스 안은 점점 콩나물 시루가 되어간다. 그러면 나의 몸은 그녀 옆으로 자석처럼 저절로 이끌려간다. 더불어 나의 심장은 더 빨리 뛰고 그녀의 볼 역시 내 눈에는 빨갛게 물들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설령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나는 짜릿한 즐거움에 행복했다. 고로, 그 행복함을 일부러 깨트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겨운 통학의 일상에서 잠시나마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10대 청춘만의 특권이 아니던가?
어느날이었다. 만원 버스안은 유난히 사람이 붐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녀의 가녀린 등이 내 품 안을 가득 채웠다. 엄청 따뜻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칼이 나의 뺨과 콧등을 맘껏 희롱 질 하면서 싱그런 다이알 비누 향기를 마구 뿌려대었다. 나는 그 향기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아득히 꿈속을 헤매었다.
그때, “ 아아-“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더 비명을 질러대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녀를 향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나는, 혹시 내가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옴짝달싹 할 수없는 틈바구니 속에서 엉덩이를 빼고 뒤로 물러 나려 용쓰자, 그녀의 머리도 뒤로 제켜졌다.
아뿔싸! 그제서야 나는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풀어놓은 내 교복 호크에 걸려 마구 꼬여 있었던 것이었다. 불가항력에 의해 그녀와 너무 붙어있다 보니, 혹시나 내 거친 숨결이 그녀에게 전해질까봐, 나도 모르게 좌우로 고개질을 해서 그렇게 된 것 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풀어 보려 했지만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점점 그녀는 울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킥킥거리고 웃고들 있었다. 내 손은 그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서 빨리 벗어나려 힘이 점점 더 들어갔고 그녀의 비명도 높아만 갔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저씨가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저씨는 이 황당한 시츄에션의 당사자가 아니니, 나보다는 더 여유롭게 머리칼 한올 한올을 풀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이고 급제동과 급발진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슬슬 짜증이 나는지 손놀림이 점점 우악스럽게 거칠어지더니만 갑자기 머리를 한 움큼 잡더니 확- 잡아 제켰다. 그러자 두둑- 소리와 함께 교복의 호크는 트더지고 마침내 그녀의 머리와 나의 몸은 분리가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와- 하고 환호를 지르고, 여기저기서 킥킥대고, 버스 안은 이 해프닝으로 말미암아 웃음 바다가 되어버렸다.
흐미~ 미치고 팔딱 칠 노릇이고 존내 쪽 팔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 정도였으니 그 여학생인들 오죽하랴...... 나는 한편으론 멋쩍고 미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고개를 까딱-하고 계면쩍게 웃었다. 그때 내 눈엔 원망에 가득 찬 그녀의 두 눈에 맑은 이슬이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울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물이 내 마음의 습자지를 적셨고 그 눈물의 농도가 얼마나 짙었던지 습자지는 갈갈이 찢어지고 있었다. 얼마 후,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서자 그녀는 그곳이 내릴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뛰어내려갔다. 달아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빨갛게 물들어 나를 아프게 하였다.
소녀여! 진짜 진짜 미안해!
버스가 도심지로 들어서고 한적해지자 나는 교복호크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어미가 알을 품다 떠나버려 차갑게 식은 비둘기 알에 하늘거리며 붙어 있는 솜털처럼 슬퍼 보였다. 그 뒤로 나는 그 여학생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통학시간을 다른 시간대로 옮긴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찾아볼까도 하였지만 그녀가 부끄러워할까봐 그러질 않았다.
이렇듯, 너무 과도한 운명과 우연은 인연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름 모를 소녀여!
이 밤!
그대에게서 나던 다이알 비누향기가 사뭇 그리워
나는 잠 못 이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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