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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작은 동화

유년기: 짝꿍

2008-02-28

*등장인물은 가명입니다*

한 계집아이가 있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 화사하고 말쑥했던 옷차림이,

점심때쯤엔 엉망이 되어버리는 조금은 맹했던 아이……

 

누가 조금만 뭐라 하면 금세 울음을 터트려,

마치 물 풍선 같은 울음보 계집아이……

 

하지만 웃을 때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유난히 반짝거리던 계집아이……

그 해맑던 계집아이 순영이가 내 짝꿍이었다.

 

2학년이 되고 얼마 후,

선생님은 나를 순영이 짝꿍으로 앉혔다.

아마도 선생님은 짓 굳은 사내아이들로부터 순영이가 놀림 받을 때,

조금은 내가 막아 줄 것이라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곤란한 처지에 놓인 순영 이를

내가 한 두번 도와주는 것을 아마도 선생님이 보셨던가보다.

 

그 당시,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 골려 먹는 일을 일상의 놀이로 여겼었다.

고물 줄 끊기,

양 갈래로 곱게 딴 멀리 채 잡아 당기기,

의자 뒤로 빼기,

등짝에 ‘바보’ 라는 쪽지 붙이기,

치마 들치기,

송충이 머리에 올려놓기…… 기타 등등.

 

모든 사내아이들이 그 재미에 학교에 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나는 왠지 순영 이에게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대 부분 여자아이들은

짓 굳은 사내아이들의 놀림에 즉각 반응하여 앙칼지게 대들었었다.

그래서 그것은

사내아이들의 본능(?)을 자극시켜 점점 재미를 느끼는 놀이가 되었지만,

순영 이는

그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순영 이를 골려 먹는 것은 재미도 덜했을 뿐더러,

하고 나면 곧 후회가 되곤 하였다.

그래서 아마 나는

순영 이는 보호해야 한다는 착한 생각이 조금씩 들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 말고……

아마도 부성애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

 

나와 짝꿍이 된 순영 이는 여러모로 나를 무척 귀찮게 하였다.

연필 좀 깎아 달라, 지우개 좀 빌려 달라……

 

처음엔 선생님의 부탁도 있고 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순영 이는 눈치없게 대놓고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순영이의 노골적인 대시에 이제는 내가 놀림감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따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물론 속으로 나 혼자 끙끙대는 짝 사랑이었지만

나는 그 여자아이에게 자꾸 눈치가 보여서

순영이의 존재가 사뭇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눈치코치 없는 순영이 와의 관계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만 했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책상에 38선을 그어 버렸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이 선을 절대 넘어오지 마! 넘어 오는 물건은 무조건 내 거다!”

 

처음엔 나의 전리품이 늘어만 갔다.

연필, 지우개, 노트, 심지어 책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게임이 시들해지면서

나는 방심을 하는 시간이 차츰 많아졌다.

오히려 순영이가 점점 재미를 느끼고 게임에 몰두해갔다.

하루 종일 아예 칠판을 쳐다 볼 생각도 안하고

오로지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잽싸게 나의 물건을 낚아 채 가곤 하였다.

그럴 때 유독 환하게 웃는 순영 이는

무척이나 행복해 하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약이 오르고 화도 났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제안한 일이니 그저 속으로 삭일 수밖에……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

그날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서였다.

모두들 선생님의 호통소리에

뒤 죽은 듯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무거움의 긴 시간이 흘렀다.

그 때 순영이가 갑자기 안절부절 몸을 비비 꼬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그런 순영이 모습에

나는 직감으로 순영이가 소변이 마렵다는 것을 알아 챘다.

 

겁이 유난히 많았던 순영 이는

그 무거운 분위기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선생님에게 선뜻 꺼낼 수가 없던 것이었다.

불쌍한 순영이……

 

시간이 흐르고 순영이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 갔다.

그런 순영 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 조바심에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그녀를 도와 줄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저 눈치만 살필 수밖에……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순영이의 걸상 다리를 타고 흐르는 물기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순영이가 두려움에 바르르 떨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옆을 두리번거렸다.

꼭 내가 오줌을 싼 것만 같아 혹시 누가 볼까봐 불안하기만 했다.

 

다행이 눈치 채는 아이들이 없는 듯 했다.

조금은 안심을 한 나는

재빨리 책상에서 걸레를 꺼내어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발질로 마루바닥에 번져가는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초를 흠뻑 먹은 걸레여서 그런지

도무지 물기를 흡수하질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때 순영이 책상다리 옆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구멍이었다.

 

‘오~오~ 할렐루야!’

 

궁하면 통하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마루 바닥에 작은 관솔구멍이 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곳으로  물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잽싸게........

 

내 행동은 아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진행이 되었고

순영 이는 그러는 내 모습을 고개 숙인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침착하고 재빠른 내 행동에

이제 순영 이는 더 이상 떨지도 않았고

얼굴색도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물기가 웬만큼 사라질 때쯤,

드디어 선생님의 긴 훈시가 끝이 났다.

순간

순영 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순영 이는 나를 보자 배시시- 웃었다.

바보 같은 계집애……

 

하지만 나는 기뻤다.

순영이가……

아니, 우리가 곤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서였다.

 

순영 이는 그 날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질 않았다.

나도 그녀 옆을 지켰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이다.

내 짝꿍이니까………

 

그리고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 갈 때쯤

순영이의 젖은 옷도 거의 다 말라갔다.

 

그 다음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38선은 여전히 존재 하였고

나는 빼앗긴 나의 물건을 되찾으려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를 하였다.

 

그 결과,

며칠 후 나는 그 동안 빼앗겼던 물건을 다시 챙길 수가 있었다.

아니 더 많이 챙겼다.

이제는 순영이가 게임에 흥미를 잃었는지

방심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순영 이는 아예 포기를 한 것인지

정말로 아끼던 필통까지 내게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순영이의 은밀한 몸짓을 보았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순영 이가 연필 한 자루를 내 쪽으로 살그머니 밀어 넣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할!’

 

그렇다.

그랬던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순영 이는 

내게 자기 물건을 일부러 넘겨주었던 것이었다.

‘앙큼한 계집애………’

 

나는 그 날 38선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내가 차지한 순영이의 물건을 모두 돌려주었다.

순영 이는 슬프게 나를 쳐다보며 받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나는 억지로 떠넘기며 순영이 에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이 빙신아! 니 꺼 잖여!”

 

그 해 프라타나스 나뭇잎이 학교 운동장에 무수히 나뒹굴 때쯤

순영 이는 결석을 하였다.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순영이가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나는 무척 홀가분하고 좋았다.

귀찮은 짝꿍이 없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순영이의 결석이 장기화되고

끝내는 순영이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금세 순영이의 존재를 잊어 버렸고

겨울방학이 되기 얼마 전, 나는 새 짝꿍이 생겼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였다.

남자아이였다.

나는 뛸 뜻이 기뻤다.( 나 바보 맞지.....?!)

 

시간이 흘러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학기 첫날

나는 등교 길에 순영 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소아마비 아이들이 신고 다니는 이상한 보조신발을 신고

마치 로봇처럼 걸어오는 순영 이를 본 순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문득,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두렵기까지 하였다.

내가 그동안 순영 이한테 무수히 했던 그말들……

 

‘야! 이 바보 빙신아! 이것도 몰라?’

‘이 빙신아! 울지 마!’

‘빙신!... 빙신.... 빙신…………….'

 

무심코 내뱉은 내 말들이 예리한 조각으로 깨어져

부메랑처럼 내게 되돌아와

내 마음에 무수히 박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이 박히는 만큼 점점 슬퍼졌다.

 

하지만 순영 이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해맑은 모습이었다.

 

나는 웃고있는 순영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순영이 엄마에게 꾸벅 절을 하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 교실로 마구 내달렸다.

아마도 그날 내 뒤통수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을 것이다.

 

순영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에필로그)

 

순영아! 잘 있지?

지금은 아줌씨가 되어있을 ……

아니,

어쩌면 할망탱이가 되어있을

네가 정말 보고 싶다.

 

중학교 때 우연히 너를 보긴 했었단다.

휠체어를 탔더구나.

하지만 아는 체를 하지 않았어.

왜 그 당시......

사내아이들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 잖어?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잘 있지?

그러면 됐지 뭐.

가끔 졸업사진을 보면

네가 경숙이 보다 훨 예쁘더구나.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

 

근데 순영아!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푸~하 하 하~

 

*순영이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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