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area/yeongnam/1174455.html#cb
구미시는 이승환의 콘서트에서 정치적 발언 가능성을 이유로 대관을 취소했다. 그런데, 구미시가 그동안 개최한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문화예술 행사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구미시의 이중적 태도와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다.
1. 구미시의 ‘박정희 사랑’, 어디까지 가나?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그를 찬양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열어왔다. 박정희 관련 뮤지컬, 전시회, 추모식, 심지어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박정희 숭모관’ 건립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행사는 구미시가 주관하거나 예산을 지원해 개최됐으며, 명백히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내용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는 논리는 누가 만들었는가?
공공예산을 들여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를 미화하는 행사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의 공연에서의 발언 가능성만으로 공연을 막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2. 박정희 찬양 행사는 공익적이고, 이승환 콘서트는 공익에 반한다고?
구미시장은 "문화예술회관에서의 공연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박정희를 주제로 한 각종 문화행사를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구미시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승환의 콘서트는 공익에 반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표현의 장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박정희 기념 행사는 찬양 일색의 메시지를 담아 특정 이념을 강화하고, 보수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반면, 이승환의 콘서트는 정치적 발언 가능성을 이유로 대관이 취소됐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창작의 본질을 무시하는 처사다.
3. 구미의 정치적 잣대, 박정희는 되고 이승환은 안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그의 독재 정권, 유신헌법, 언론 탄압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도 구미시는 박정희를 찬양하는 행사를 반복적으로 개최하며, 그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어떤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박정희 뮤지컬과 같은 행사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하지만 구미시는 이를 문화 행사로 포장했다.
반대로, 개인의 공연에서의 발언 가능성만으로 "정치적 선동"의 우려를 들어 대관을 취소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검열과 편향된 행정이다.
4. 구미시의 이중 잣대, 공산당식 통제와 무엇이 다른가
박정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사상검증 서약서 요구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반공을 빌미로 국민의 사상을 통제했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사건은 구미시가 과거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강요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개인의 사상을 검열하고 표현을 제한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구미시가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존중한다면, 특정 인물을 찬양하는 행사는 허용하면서 이승환의 공연은 금지하는 이중 잣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5. 구미시가 박정희 행사에 쏟아부은 예산, 왜 이승환 공연은 막는가?
박정희 추모관 건립에 천억 원 이상이 투입된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판의 대상이다. 이승환 콘서트는 시민들이 직접 돈을 주고 표를 사서 관람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구미시는 이 공연을 "공익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막았다.
구미시민의 세금은 박정희를 찬양하는 데 쓰이면서도, 이승환의 공연은 "시민 안전"을 이유로 거부됐다.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공익임에도, 구미시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며 공익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6. 구미시는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다. 구미시는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행사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도, 개인의 공연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이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처사다.
결론: 구미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자격이 없다
박정희 찬양 행사는 되고, 이승환의 공연은 안 된다는 구미시의 태도는 명백히 잘못됐다. 예술가의 표현을 억압하며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이번 사건은 구미시의 정치적 편향성과 권위주의를 드러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구미시는 지금이라도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창문을 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이 정의를 잃으면 폭력이 정의가 된다 (2) | 2024.12.23 |
---|---|
내란 음모의 덫, 당신은 공범인가? (1) | 2024.12.23 |
2024년 우금치를 넘은 민중의 승리, 남태령에서의 전봉준 정신 (2) | 2024.12.22 |
남태령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민심의 목소리 (1) | 2024.12.22 |
남태령에서 막힌 건 길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3) | 202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