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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고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사연 하나를 읽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려던 글쓴이에게 동생이 연락을 했다. 동생은 뜬금없이 “이재명이 왜 은행장을 만나는지 알아?”라고 물었다. 지난달 기사를 이제야 묻는 동생에게 글쓴이는 민생 지원을 위한 만남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하지만 동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내란범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고, 여야는 그만 좀 싸웠으면 좋겠다."

이 한마디에 글쓴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치에 별 관심 없는 동생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똑같이 여겼다. 정치는 지겹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얼굴 싹 다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반응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동생이 직접 찾아본 기사일까? 아니면 사무실 동료들의 대화를 통해 들은 것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그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가 6대 은행장들과 만난 이유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취약계층의 생활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는 어땠는가?



자극적인 단어들. ‘압박’, ‘무리한 청구서’, ‘오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만남은 ‘대권 놀이’로 둔갑했고, 금융권에 ‘압박을 가하는 위험한 정치 행위’로 묘사됐다. 

언론이 원래 이랬던가? 아니다. 이명박이 은행장을 만났을 때는 "경제 회복을 위한 금융권 협력 요청", 박근혜가 대기업 총수를 소집했을 때는 "경제 성장 전략 논의" 같은 제목이 달렸다. 그러나 이재명이 하면 ‘압박’, ‘대권 행보’가 된다.

결국 이런 기사들에 노출된 동생 같은 시민들은 "이재명이 또 자기 정치하려고 은행장 만났나 보네" 하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치 혐오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김정숙 여사 사건도 같은 방식이었다. 2023년,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김정숙 여사의 인도 출장과 샤넬 재킷에 대한 국고 손실 의혹"을 고발하자,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김정숙 외유 논란'을 쏟아냈다.

JTBC, TV조선, 채널A,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김정숙 특집’이라도 한 듯 수십 개의 기사가 나왔다. 유튜브에서는 "문재인 부부가 국민 세금으로 명품을 즐겼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고, 커뮤니티에서는 "도둑질한 옷으로 패션쇼 했냐", "이참에 문재인도 수사해야 한다"는 댓글이 난무했다.
 



하지만 2025년 2월 7일, 검찰이 김정숙 여사를 ‘혐의 없음’ 처분했다. 그러나 무혐의 기사는 어떻게 보도됐나?

온갖 언론이 몇 개월 동안 "김정숙 재킷 논란"을 터뜨릴 때와 비교하면, 무혐의 결과 보도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반응이 나왔다.

"온갖 미디어에서 아주 옘병을 떨면서 사람 난도질하고, 커뮤니티에서는 살인 면허라도 얻은 듯 여사 죽이기로 난리 나더니, 무혐의 나니까 왜 이렇게 조용한 느낌이죠?"

이게 바로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검찰의 기소만으로 언론은 이미 유죄인 것처럼 여론몰이를 한다. 하지만 막상 무혐의가 나오면? 조용히 묻어버린다. 목적은 달성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김정숙 = 외유’라는 이미지를 각인당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부패한 권력은 더 뻔뻔하게 움직인다. 이재명이 은행장을 만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을 논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대통령 놀이를 했는지 여부다. 김정숙 여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미 ‘외유 논란’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는지 여부다.

가장 대표적인 언론의 기만적인 전술은 바로 ‘양비론’이다. 명백하게 잘못된 사안,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조차 언론은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마치 양측이 똑같이 잘못한 것처럼 포장한다. 이러한 양비론적 보도는 시민들에게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냉소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정치 자체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치 혐오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언론이 부정적인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여야 똑같이 문제다"라는 양비론을 강화한다. "정치인들 다 똑같으니 신경 끄고 살아라"는 무기력함을 주입한다. 이런 식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꺼트리면, 결국 가장 이득을 보는 건 기득권이다.

예를 들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내란 세력’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살펴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 행위에 대해 언론은 명확하게 비판하고 단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오히려 ‘내란 세력’을 두둔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며, 심지어 옹호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는 ‘내란 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희석시키고, 그들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언론이 던지는 프레임을 비판적으로 볼 것.
●정치적 관심을 놓지 말 것.
●무조건적인 정치 혐오에 빠지지 말 것.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이 진짜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따져볼 것.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는 기울어진 언론이 조장한 정치 혐오가 가장 큰 원인이다. 언론이 악의적으로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한, 민주주의는 끝없는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치 혐오가 아니라, 정치 개혁이다. 기득권의 프레임에 속지 말자. 정치를 혐오하는 순간, 가장 득을 보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