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
이 단순한 원칙이 무너진 사회는 정의를 잃고, 결국 혼란에 빠진다. 얼마 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하급 지휘관과 병사들의 포상을 주장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제안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상벌(賞罰)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는 문제 제기다.
상명하복 vs. 윤리적 저항
"국회 담을 넘지 않겠습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명령에 따라야 할 군인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A중사는 상부에서 내린 '국회 월담' 지시를 거부했다. 그의 결단은 동료 병사들의 동요를 불러왔고, 결국 일부 부대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서도 특임대대장의 진술을 통해 이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들의 행동이 내란 사태를 막은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군 수뇌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할 시간적·지적 여유가 없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책임을 회피했다. 합참 계엄과장이었던 권영환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며 모호한 발언을 하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여기서 문제가 분명해진다. 비윤리적 명령을 거부한 병사들은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고, 불법적 지시를 내린 상급자들은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상벌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정의는 사라지고 권력의 논리만 남는다.
상벌 체계의 붕괴
과거 역사에서도 상벌의 중요성은 반복해서 강조됐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상앙은 "상이 확실하면 백성은 용기를 내고, 벌이 엄하면 백성은 죽음을 각오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 역시 관리의 공과에 따른 상벌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에서 상벌은 종종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은 정부의 방해를 받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의료진의 헌신은 과로사로 돌아왔다.
반면,이재용 삼성 전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유죄 판결 후 감형과 사면을 받아, 경제권력의 사법 특혜를 받았다.
그리고 땅콩항공 사건의 조현민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법이 특권층에게는 매우 관대하여, 한국 사회는 점점 잘한 사람이 벌을 받고, 잘못한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상벌의 복원
첫째, '윤리적 저항'을 제도화해야 한다. 독일은 나치 전범 재판 이후, "상급자의 명령이 인도주의적 원칙에 위배될 경우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법을 만들었다. 한국 군대에도 유사한 조항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법한 명령 거부 권한"을 군형법에 명시하고, 이를 실천한 병사에게 포상과 진급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상벌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군사법원과 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상벌을 관장하는 기구는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립적인 상벌 심사 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사회, 법조인, 학자 등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포상 제안이 단순한 정치적 공세로 끝나지 않으려면, 상벌 원칙이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12·3 사태 관련자의 포상과 처벌은 국회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한 후,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상벌이 바로설 때, 대한민국은 미래를 열 수 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법의 정신은 정의에 있으며, 정의란 각자에게 마땅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벌 체계의 정립은 단순히 개인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반이 된다.
12·3 사태는 한국 사회가 상벌의 부재로 인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동시에 일선 군인들의 윤리적 결단이 국가적 위기를 막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공정한 상벌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다. 반면, 상벌이 왜곡되면 체제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커지고, 결국 사회의 근간이 흔들린다. 이재명 대표의 포상 제안이 단발성 이슈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번 기회를 계기로 상벌 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가 촉발되어야 한다.
군대뿐 아니라 공직사회, 기업, 교육현장까지 올바른 상벌 시스템이 정착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잘한 사람은 상 받고, 잘못한 사람은 벌 받는 사회"라는 단순한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우리는 헌법 제1조가 명시한 '민주공화국'의 참뜻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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