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광장, 엇갈린 함성
대한민국의 광장은 뜨겁다.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분출되는 활화산 같은 곳. 그러나 언젠가부터 광장은 찢겨졌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깃발을 든 채 서로를 향해 증오의 함성을 내지르는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때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함성은 이제 서로를 멸절시키려는 저주가 되어 광장을 부유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명한 입장 변화는 이러한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윤석열 지지자는
경악! 계엄할 줄은 몰랐다. 미쳤네! →→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계엄을 택했을까? →→탄핵인용되면 내란이다!
로 이제는 헌재를 때려부술 기세로 의식이 변질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단순한 개인의 변덕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병리적 현상이 응축된 결과다.
극단적 지지층, 그들은 누구인가?
극단적 윤석열지지층은 맹목적인 충성과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확증 편향),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한다(인지 부조화). 집단 토론을 통해 의견이 더욱 극단화되고(집단 극화), 권위 있는 인물의 지시에 맹종하는 경향(권위에 대한 복종)을 보인다. 또한, 특정 프레임에 갇혀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프레이밍 효과)도 강하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불안정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된 정치 지형은 사람들을 극단적인 생각으로 내몰고, 자신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할 대상으로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을 맹신하게 만든다.
정치인의 선동과 언론의 공모
오늘날 대한민국의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증오와 분열의 장이 되었다. 이는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정치인들, 극우 개신교 지도자들,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누며, 허위 정보와 과장된 표현으로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며 국민을 희생시키는 반민주적 행태다.
극우 개신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며,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
언론은 진실을 전달하기보다 정치적 선동을 여과 없이 보도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조회수와 클릭을 우선시하며, 사실 확인과 균형 잡힌 보도를 외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극단적 지지층이 탄생하며,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정치인의 선동과 언론의 편향된 보도가 만들어낸 결과다.
광장의 회복
국민의 힘은 국민 분열을 멈추고 통합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개신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과 용서를 전파하고 언론은 진실과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비판적 사고와 연대를 통해 건강한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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