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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국민, 우리는 지금 무엇을 빼앗기고 있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의 정치화'라는 우려와 함께, 이례적 판결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판결의 구체적인 법리 공방과는 별개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는 한 이름이 다시금 뚜렷이 각인되었다. 바로 김앤장 법률사무소다.

대체 김앤장이 무엇이기에, 대한민국 사법 정의와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일까? 왜 이 거대한 법률회사가 때로는 '보이지 않는 정부', '사법 쿠데타의 배후'라는 극단적인 의혹의 시선까지 받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정녕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앤장은 단순한 로펌이 아니다


형식상 김앤장은 수천 명의 변호사, 회계사,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로펌이다. 기업 자문, M&A, 소송 대리, 국제 분쟁 등 모든 법률 서비스를 망라한다. 그러나 김앤장의 본질은 단순한 '변호사 집단'을 넘어선다.
그들은 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배출하고 영입했으며, 검찰총장, 장차관, 청와대 민정수석, 국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전직 최고위 관료들을 퇴임 후 어김없이 고문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연봉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고문' 직함을 달고, 김앤장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특정 시기 김앤장에 영입된 전직 고위 공직자 수는 다른 대형 로펌들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다. 매출 또한 2024년 추정치로 1조 5천억이 넘어, 2위인 '법률법인 광장'의 4,111억원(추정치)의 3배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통해 김앤장은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때로는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혹을 받으며,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이것이 심각한 문제인가?


법이란 본디 만인 앞에 평등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김앤장으로 상징되는 거대 로펌의 존재는 이 대원칙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법의 상품화: 천문학적인 수임료는 기본이다. 특정 기업의 명운이 걸린 사건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자문료와 성공보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곧 '돈이 없으면 제대로 된 법적 조력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당연한 현실로 굳어지게 한다.

전관예우의 검은 고리: 퇴직한 판사, 검사가 로펌으로 직행하여 자신이 몸담았던 법원, 검찰의 사건을 맡는 '전관예우'는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사건 배당 전부터 김앤장 소속 전관 변호사가 재판부와 교감한다"는 식의 의혹은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정책 결정의 왜곡: 정부의 중요 입법 과정이나 규제 정책 수립 시, 김앤장은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 활동을 벌인다. 이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국민 전체의 이익이 아닌 소수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정책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과거 론스타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서 김앤장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을 위한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소수 특권층과 김앤장의 이익이 우선되는 '김앤장 공화국' 인가?

우리가 지금 빼앗기고 있는 것들


우리는 지금, 사법부 판결의 독립성과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법원은 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판사님이 아니라, 김앤장 고문님이 더 무섭다’는 자조 섞인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김앤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권력의 핵심 인물들을 더 많이 흡수하며 그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해왔다.


바꿔야 한다


전관예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고위 법관·검사의 퇴직 후 로펌 취업 금지 기간을 현행보다 대폭 늘리고(최소 5~7년 이상), 대상 기관 및 직급도 확대해야 한다. 위반 시 단순 과태료가 아닌, 형사처벌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으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초대형 로펌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김앤장과 같은 조합 형태의 로펌도 외부감사를 의무화하고, 주요 경영 정보를 공시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현재 김앤장은 유한회사나 주식회사가 아닌 변호사들의 조합 형태로 운영되어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수임 내역, 고문으로 영입된 전관들의 명단과 역할, 정부 부처 상대 자문 및 로비 활동 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로비 투명화법(혹은 로비스트법)' 제정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이해충돌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익적 책무를 제도화해야 한다.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수익을 올리는 만큼, 대형 로펌이 공익 사건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수행하도록 하거나, 공익활동 지원 기금을 출연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국민 전체의 권익 보호에도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민이 묻고, 감시하고, 요구해야 한다. 왜 이 나라의 법은 힘없는 서민에게는 추상같고, 김앤장과 그 고객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는가? 왜 대법원의 판결에서조차 김앤장의 논리와 주장이 그대로 반영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가? 왜 국회와 정부는 이 거대한 '법률 권력'의 독주와 그로 인한 폐해를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국민이 이 질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던지며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이 아닌, '김앤장 공화국'의 무력한 신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앤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권력자와 은밀한 거래를 통해 그들의 왕국을 확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외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특정 로펌의 영업장이 아니며, 국민은 그들의 고객이 아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것이며, 정의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김앤장의 고객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권자다.
이 자명한 진실부터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