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하늘은 무심하리만치 맑았다.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 땅은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1980년 5월, 광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곳은 숨쉬고, 울고, 분노하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거리마다 분노의 맥박이 뛰었고, 좁은 골목마다 역사의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아니, 차라리 죽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기 위해 일어섰다. 누구의 명령도, 신호도 없이 도청 앞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 그들은 군화발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마지막 숨결을 자신들의 가슴으로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 팔로 아들의 떨리는 몸을 감쌌고, 형은 동생의 눈을 가려 공포를 보지 않게 했다. 하지만 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총성이 하늘을 찢고, 쓰러지는 몸들의 둔탁한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피비린내가 오월의 따스한 바람을 타고 골목을 휘감아도 누구도 등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가 인간이냐, 괴물이냐"

탱크를 앞세운 신군부, 총구를 시민에게 겨눈 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인간성을 얼마나 깊이 짓밟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권력의 야만이었고, 무지의 폭력이었다.
그러나 광주는, 침묵하지 않았다.
M16 소총 앞에 맨몸으로 버틴 열여덟 소년, 총상을 입고도 마지막 숨에 주먹을 불끈 쥔 노동자, 눈밭처럼 새하얀 수건을 흔들며 평화를 외치던 소녀. 그날의 광주에서는 누구나가 이름 없는 영웅이었다.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을지라도, 도시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진 얼굴들.
그렇게 광주는 죽지 않았다. 진압되지 않았다. 그들은 총으로 육신을 꺾었을지언정, 정신만은 결코 꺾지 못했다. 피 흘린 자리마다 민주주의의 새싹이 뿌리를 내렸고, 오랜 세월 외면당한 진실은 결국 오늘날의 촛불이 되어 어둠을 밝혔다.
역사는 종종 말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러나 광주는 다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도시, 그곳이 바로 광주다. 그들의 침묵은 때로 어떤 절규보다 우렁차다.
저물지 않는 오월의 태양 아래, 우리는 기억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다시는 광주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꽃잎처럼 스러져간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오월, 광주의 혼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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