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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고

펜으로 짓밟힌 정의: 언론의 폭력


그날도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자실 문을 열었다. 커피 향이 가득 찬 방 안에서 법조 기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전화를 붙들고 목소리를 낮춘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건, 검찰이 또 뭘 흘렸나 보자고."

선배 기자의 말에 신입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자가 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알았다. 이곳에서는 누구보다 검찰과 가까워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에게는 마치 오래된 과제처럼 느껴졌다. 바로 ‘출입처 저널리즘’의 폐해였다. 검찰을 오래 출입한 기자들은 마치 검사처럼, 법원을 오래 출입한 기자는 법관처럼 사고하게 된다는 것을.

'단독'이라는 이름의 덫

검찰은 마치 마술사 같았다. 적절한 시점에 기사를 터뜨려 여론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틀어놓는 능력. 기자들은 그들의 손짓만 기다렸다. 오늘도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대형 로펌 변호사가 연루된 부패 사건이었다.

"검찰발 단독 기사로 띄워. 단독 붙여야 클릭 수 오르지 않겠어?"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기사가 작성되었다. 제목은 자극적이었다. '대형 로펌 부패 사건: 검찰, 내부 문건 확보!' 신입 기자는 문서를 뒤적이며 자괴감을 느꼈다. 사실상 검찰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받아 적었을 뿐인데, 대중은 이를 '단독 보도'라고 믿을 것이다.

"왜 이렇게 써야 하는 거죠? 우리가 검찰 홍보팀도 아니고..."

신입 기자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선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검찰하고 친해야 돼. 안 그러면 네가 쓴 기사 누가 믿어 주겠냐?"

조국 사태, 야만적인 언론

그날도 그는 데스크의 호출을 받았다.

"이번엔 조국이야. 가족 문제부터 샅샅이 파헤쳐. 단독으로 터뜨릴 수 있으면 더 좋고."

기자는 의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언론은 정책이나 자질 검증 대신 그의 가족사를 끝없이 캐내고 있었다.

며칠 뒤, 그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검찰청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검찰이 곧 새로운 압수수색 소식을 흘릴 거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이거 크다!"

한 기자가 속보를 외쳤다. 기자실은 금세 난리가 났다. 모두가 검찰에서 흘러나온 자료를 받아쓰기에 바빴다. 기사 제목은 더 자극적으로 바뀌었다.

"조국 딸, 입시 비리 연루? 검찰, 긴급 압수수색!"

검찰의 발표가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조국의 가족은 순식간에 '범죄자 집안'으로 낙인찍혔다. 기자는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검찰이 의도적으로 흘리는 정보에 우리가 너무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고민할 틈도 없었다. 상사는 연일 단독 기사를 요구했고, 클릭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송사와 신문사 모두 조국 가족을 둘러싼 의혹 보도로 도배되었다. 정작 의혹의 진위 여부는 뒷전이었다.
기자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며 조국 딸의 인터뷰 영상을 떠올렸다.

"저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학생일 뿐인데..."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느꼈다. 이건 단순히 조국이라는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언론과 검찰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거대한 프레임이었다. 마치 오래된 관행처럼 자리 잡은 ‘출입처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는 메모를 남겼다.

"조국 사태는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진실은 묻히고, 권력의 쇼만 남았다. 국민은 그 쇼의 관객이자 피해자였다."

검찰이 흘린 이야기, 언론이 만든 드라마

그 사건은 순식간에 국민적 화제로 떠올랐다. 검찰은 사건 초기 단계에서 피의자의 혐의와 사생활을 포함한 정보를 흘렸고, 언론은 이를 단독 기사로 포장해 보도했다. 그러나 피의자의 목소리는 없었다. 오직 검찰의 시각에서 그려진 이야기뿐이었다. 며칠 뒤, 피의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눈물로 호소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재판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론 때문에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혔어요. 제발 진실을 밝혀 주세요."

기자는 그 장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는 알았다.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마치 오래된 관행처럼 굳어진 ‘출입처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법조 기자단, 그들의 울타리

신입 기자는 얼마 후 법조 기자단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는 검찰과 언론이 얼마나 가까운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흘린 건 꽤 센 건데, 잘 다뤄 줘야겠지?"

검찰 관계자는 마치 거래를 제안하듯 말했다.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검찰의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전지적 검찰 시점'에 익숙해져 있었다.

"왜 우리는 검찰의 말만 듣고 기사를 써야 하죠?"

다시 물어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대신 선배 기자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래. 검찰과 언론은 공생 관계야. 네가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마치 ‘출입처 저널리즘’이라는 낡은 틀에 갇혀버린 듯했다.

변화의 불씨와 좌절의 나날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검찰이 흘리는 정보에 의존하는 대신, 피의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기로 한 것이다. 그는 피의자의 변호인을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다.

"검찰과 언론의 프레임을 벗어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

첫 시도는 예상보다 험난했다. 피의자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고, 변호인도 그를 경계했다.

"언론이 피의사실 공표를 부추기며 우리 가족을 파탄 낸 장본인 아닙니까? 이제 와서 진실을 말한다니, 웃기지도 않네요."

그는 더 많은 대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겨우 어렵게 얻어낸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지만, 회사 내부에서도 반응은 싸늘했다.

"검찰이 말한 것과 다르잖아. 이런 기사 내보내면 우리가 신뢰를 잃는 거 몰라?"

결국 그의 기사는 보류되었고, 대신 검찰에서 흘린 정보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자극적인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공멸의 기로

좌절감은 계속되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때, 그는 또 다른 시도를 했다. 이번엔 조국 전 장관의 가족과 가까운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론은 우리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정육업자와 같아요. 검찰이 지시하는 대로 칼을 휘두르죠."

그 말은 뼈아팠다. 그가 속한 언론이 이미 '정육업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다시 그는 기사를 썼다. 이번에는 조국 사태 보도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무차별적인 여론 몰이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데스크는 이 기사를 완전히 거부했다.

"조국
편들다가 우리가 보수 언론과 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면? 우린 그럴 힘도 없고, 의도도 없어. 그냥 중립인 척하며 흘러가는 대로 둬."

그의 글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검찰과 언론의 공생 관계는 너무도 강고했다.

누구도 승자가 되지 않는 싸움

그가 검찰의 논리를 벗어나 쓰려는 모든 기사는 번번이 묵살되었고, 동료 기자들조차 점차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너 그렇게 튀다가 잘릴 수도 있어. 너만 이상한 놈 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한 선배 기자의 충고는 결국 경고처럼 다가왔다.

그는 다른 방법도 시도했다. 독립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국민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검찰과 언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조국? 가족 비리로 망가진 사람 아니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진실을 설명하려 해도, 이미 굳어진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악순환

그는 다시 노트북을 닫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검찰과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은 이미 너무 깊이 박혀 있었고, 그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진실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특정 지역 출신 기자를 특정 출입처에 배치하여 유착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도 했다. 취재 기자가 아닌 대변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에도 검찰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흘렸고, 언론은 이를 받아쓰며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그 괴물에게 먹히고, 또 누군가는 그 괴물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다.

기자는 점점 깨달았다. 검찰과 언론은 더 이상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공생하며, 권력을 더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유지하는 대가는 국민이 치러야 했다. '출입처 저널리즘'이라는 그릇된 관행이 그들의 공생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었다.

피의사실 공표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재판이 끝날 때쯤 무죄 판결을 받든 말든, 이미 여론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 뒤였다. 언론은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냈고, 검찰은 또다시 그 희생양을 앞세워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했다.

결국, 이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모두가 패자가 될 운명이었다. 국민은 왜곡된 정보 속에서 판단을 내리고, 검찰과 언론은 자신들이 만든 괴물에게 언젠가 먹힐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좌절의 순간

하루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쓰던 그가 멈춰 섰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렸다.

"과연 내가 쓰는 이 글이 의미가 있을까? 이미 누구도 듣지 않을 진실을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지?"

그는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체제와 대중의 무관심. 그리고 그 체제 속에서 길들여진 자신. 그는 모든 게 허무해졌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실? 그런 건 애초에 이곳에 없었다. 검찰과 언론이 합작한 이 거대한 희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대해졌고, 더 악랄해졌다. ‘출입처 저널리즘’의 굴레 속에서 진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검찰과 언론이 만든 괴물은 이미 너무 거대했다. 그 괴물은 진실을 삼키고, 사람들을 속이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담기지 않았다.

그 괴물은 이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희망도, 정의도, 그리고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도. ‘출입처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그 괴물은 끊임없이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이 괴물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답은 없었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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