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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국회판 쇼걸의 숏타임

국회를 무대 삼은 정치인


정치는 국민을 위한 진지한 싸움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신성한 공간을 개인의 쇼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 나경원이 있다. 그녀의 정치 행보를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정책과 민생보다는 언제나 카메라와 언론의 관심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텐트 농성, 그 뻔한 연출의 민낯


2025년 여름, 나경원은 국회 본관에 텐트를 설치하며 철야 농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텐트 안에는 손선풍기, 커피, 스마트폰 등 편의용품들이 가득했다. 더 황당한 것은 본인이 직접 인스타그램에 텐트 인증샷을 올린 것이다.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농성인가? 누가 봐도 캠핑이고, 누가 봐도 연출이었다. 진짜 절박함이 있다면 SNS 인증샷을 찍을 여유가 있을까? 나경원의 이런 행동은 진정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언론 플레이를 위한 쇼에 불과했다.

나경원표 정치 퍼포먼스의 3가지 패턴


1. 쇠파이프로 연출한 투사 이미지


2019년 국회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난 나경원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녀는 강인한 투사의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지만, 국민들은 "저런 사람이 법을 만드는 사람이냐"며 당황했다. 정치적 의견 표현을 넘어선 과격한 퍼포먼스였다.

2. 전략적으로 흘리는 눈물 정치


나경원에게 눈물은 정치적 도구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카메라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다. "당했다", "왕따당했다"를 외치며 동정표를 얻으려 한다. 하지만 너무 자주, 너무 계산적으로 흘리는 눈물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3. 가족을 정치 도구로 활용한 연민 마케팅과 봉사 쇼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정치적 콘텐츠로 활용한 사례다. 그리고 장애인 봉사활동행사에서  발가벗긴 아이를 목욕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는 정치적 메시지 전달을 넘어 개인의 사생활, 특히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의 모습까지 정치적 도구로 소비한 것이다.

진정성 없는 쇼의 한계


나경원의 문제는 그녀의 모든 행동이 너무나 뻔한 연출이라는 점이다. 진짜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까?"라는 계산된 모습만 보인다.

정치인의 쇼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경원의 쇼는 그 반대다. 냉소와 조롱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또 저러네", "또 연기하네"라는 반응이 나오는 순간, 그 쇼는 실패한 것이다.

국회는 당신의 사유 무대가 아니다


나경원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국회가 자신의 무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국민의 공간이다. 정치인은 그곳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일 뿐이다.

진짜 정치인이라면 욕을 먹어도, 피를 흘려도 묵묵히 입법과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나경원은 무대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카메라가 없으면 존재감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쇼를 끝낼 때


2025년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벌어진 갈등에서도 나경원은 여전히 같은 패턴을 보였다. 국회 로텐더홀에 텐트치고 바캉스 농성을 하면서 마치 권력 투쟁의 피해자인 양 연기했다.   이미 그녀의 패턴을 너무 뻔하고 식상한 쇼걸의 숏타임이다.

정치는 쇼가 아니다


판사 남편을 둔 덕인지, 국회법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관련  1심재판을 6년 동안이나 하는 나경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정치 철학은 무엇인가?
당신이 이루고 싶은 정책은 무엇인가?
쇼와 퍼포먼스를 제외하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주유비 정산하자

출처/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9015559?od=T31&po=1&category=0&group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