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9
민주주의2.0 에서 '진보의 길'님이 발제 한 [노공이산님의 "공정한 시장"에 대해 토론을 제의합니다"] 란 토론이 종료되었다. 토론은 노공이산님이 언급한 [공정한 시장주의-약자에게 자유로운 시장]에 대하여 '진보의길' 님이“과연‘공정한 시장’이 존재 가능한 것인가?” 또,“노무현을 진보주의자로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제기로 시작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의 공방이 오갔지만 인터넷 토론이 예의 그렇듯이 합의된 결론 없이 서로간의 관념의 차이만 확인한 것 같아 아쉽다.
토론이 워낙 고차원적이라 나의 짧은 지식을 한탄하며 그저 눈팅만 했지만 나름 인터넷으로 알음알음 공부는 했다. 허나 아직 개념잡기에 한참 부족한 것 같고 좀더 열공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이쯤에서 혹시 그 동안 배운 것을 까먹지는 않을까? 복습하는 차원에서 공부한 것을 한번 끄적여 보겠다.
국경 없는 시장(市場)
시장은 인간이 출현하고 공동체를 이루어온 역사와 함께 늘 같이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장은 또 긴 역사만큼이나 크기도 비약적으로 커지고 대단히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시장 안에서 생존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타고난 조건과 능력의 차이로 인해 빈부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그런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심화되었고 그 현상에 반동하여 사람들은 사회체계를 부단히 바꾸어 왔던 것 또한 인간의 역사이다.
그 결과 사회주의가 출현하였고 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대결로 인하여 인류가 다 함께 공멸할뻔한 일촉즉발의 냉전시대도 겪었다. 그래서 이 냉전의 역사는 오늘날의 시장이 인류의 생과 사를 가름할 수도 있는 대단히 위험한 실체란 증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국경 없는 시장은 아담 스미스가 말한“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유방임적 시장이 단순 명백한 자연적 자유질서다”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와, 인간의 욕망을 한도 끝도 없이 쌓아 올려가는 바벨탑이 되어가는 듯하다.
2008년 10월 오늘, 대한민국은 대폭발의 임계점이 느껴지고 있다. 이 서늘해진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프리온처럼 자가증식을 하는 신 자유주의 시장은 핵폭탄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폭탄이 있다면 해체방법 또한 분명 있을 것이라 믿기에,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분명한 것은, 냉전을 무사히 넘겼던 인간의 지혜를 모아 이 난관을 극복하는 대안제시를 위한 노력을 꼭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시장
공정(公正)하다는 것은‘올바름’과‘평등’이라는 두 가지의 뜻이 내재된 단어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 안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 즉, 부정(不正)하게 보여지는 현상은 인간이 가진 도덕과 법이란 잣대로 바로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서로의 합의 하에 계속 고쳐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불평등한 현상을 바로 잡기 위한 평등한 잣대는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또 완벽한 평등은 존재 하지도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한다.
요 근래,“자본가의 착취 없는 완벽한 평등사회”,“종교와 세속생활이 일치된 이상국가를 만든다” 라는 원대한 비전을 내걸었던 카다피의 리비아 국가 건설이 결국 실패한 것만 보더라도 완벽한 평등은 일인 독재체제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유토피아 일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이 언급한‘공정한 시장’은 절대적 개념이 아닌 보편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옳다고 본다. (점점 나도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것다. ^^)
쉽게 말하겠다. 노무현의 말한‘공정한 시장’은 한마디로‘판 깨지 말자’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닮은 고스톱
이게 뭔 말인고 하면, 고스톱을 즐기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 고스톱은 생존의 수단이고 심심하지 않기 위한 삶의 목적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이기에 이들은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여기서 고스톱 하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 모은 하우스가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국가라면 화투패가 펼쳐지는 곳은 바로 시장이다.
이 고스톱 판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곳이다. 노동과 분배가 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고 기회균등이 있다. 화투짝 맞추는 팔 운동이 노동이요, 각자 같은 수의 화투장을 받는 것이 분배요, 펼쳐진 판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여 내 패를 고르는 것이 선택의 자유이고 순서가 차례로 돌아 가는 것과 이긴 자가 선을 잡음으로써 자연스런 권력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기회의 균등이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공돈만 밝히는 얌체를 막고자 연사금지라는 룰도 있다.
그뿐인가? 먼저 판을 벌릴 사람이 모아지면 법을 만든다. 각자 다른 지방 출신이라도 지역주의 없이 모두가 합의 하에 광은 몇 점, 광박, 쪽, 대통령, 싹쓸이, 폭탄 기타등등...... 따위의 룰을 정하고 나서 모두가 삥 둘러 앉은 초기의 고스톱 판은, 학벌, 직업, 남녀노소, 위아래 차이가 전혀 없는 우리가 바라는‘평등한 사회’바로 그 모습이다.
하지만 판이 거듭될수록 빈부의 차이가 생겨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숙명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고스톱은 골프나 당구처럼 핸디캡을 둘 수 없기에 아무리 평등을 추구하며 판을 시작해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돈 떨어져 사정사정 눈칫밥 먹으며 광을 팔던 서민, 천민이 판(시장)에서 빠지고 이윽고 고수 세 명(재벌, 부자, 중산층)이 짱 박아 놓고 치지만 결국 중산층도 오링 당하고 아웃이 돼야만 하는 게 고스톱 판이다. 그렇다고 판이 깨지나?
아니다. 그래도 판은 굴러간다. 끝장을 보기 위해서 바로 맞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때쯤이면 정상적인 고스톱 판인 5~3인제에서 나올 수 없는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 나오기도 한다. 마치 정상적인 시장의 형태가 아닐 때 경제학자도 학을 띠는 공황현상이 나온다는 것이다.
판 깨지 말자!
나는 고스톱을 잘 못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이다. 나에게는 아주 쓰라린 고스톱 일화가 있다. 점 200 맞고에서 27만 7천원을 얻어 맞은 적이 있다. 그 일화는 지금 친구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분하고 그 돈이 아까워 울고 싶다. ㅠㅠㅠ
이처럼 맞고는 아주 큰판이 되어 버린다. 판 주위에서 중산층, 서민, 천민이 개평 좀 얻어 볼까 기웃거리지만 이미 돈독이 오른 재벌 부자는 얄짤 없다. 여기에 불만이 터져 나온다.
“C Ba! 얼른 끝내! 술 먹으러 가자!..... 야! 쩜 1000으로 올려!”
하지만 그렇게 판을 깨어선 안 된다. 이것은 고수나 하수나 마찬가지다. 다 같이 행복하게 즐기는 게임이 되려면 고수도 고-고-를 남발하지 않는 배려를 하여야 한다. 몇 판은 잃어주는 것도 좋겠지....물론 하수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말이다.
언젠가 김동렬이 영화‘타짜’를 평하면서 주인공인 고니가 제일 하수라고 평했던 적이 있었다. 폼 나는 주인공인데 왜......?
그 이유는 고니가 판을 깨려 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돈 잃고 칭얼거리며 어서 끝내자고 보채면 하수다. 쪽 팔리는 일이다. 대신 고수들의 맞고를 눈 여겨 보면서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 성향을 관찰해서 다음 기회에 역이용해야 하는 교육의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맞고도 언젠가는 쫑이 난다. 그렇다고 판을 덮어 버리면 이들의 고스톱 사회는 끝이 나는 것이다. 고스톱을 하는 목적이 삶이 심심하지 않기 위한 원초적 본능의 행위라면(행복추구) 어떡하든 판이 다시 이어져야 한다.
사회투자국가와 비젼 2030
다른 판으로 옮겨가면 된다고? 그건 나라를 잃은 난민일 때나 이민 갈 때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래서 나는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 고스톱 판에 노무현의‘공정한 시장’의 개념을 도입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우스장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여 한 판당 고리(세금)를 걷고 대박을 낸 고수에게는 특별고리(종부세)를 더 얹어 걷어 두툼한 고리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비싼 맥주, 빼갈에 기름진 청요리 배달시켜 먹지 말고(그게다 거품이 되어 돌아온다. 미국 봐라) 정 먹고 싶으면 자금이 떨어질만한 사람이 광 팔고 나가 직접 슈퍼에 가서 소주사고 깡새우(넝심 말고) 사다가 먹어야 한다. (물론 심부름 값 챙기고......)
그리고 하우스장은 고수가 크게 먹으려고 판돈을 올리려는 시도를 막고 눈속임 하는 기술은 안 쓰는지, 나 같이 어리버리한 하수들에게 점수 속임질은 하지 않는지, 또, 반대로 하수가 점수 날 때 흔든 것을 잃어 버리고 계산은 안 하는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여 감시하고 챙겨 주어야 한다. (나 이거 많이 까먹었다) 그리고 하수가 번번히 피박 쓰는 것을 막기 위한‘쑈당’을 적극적으로 도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친구들은 실제로 이런 적이 있었다. 판에서 아웃 당한 천민 세 놈이 잔 심부름 해서 모은 돈과 고리로 걷은 돈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마이너리그를 펼쳐서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 중산층에 되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재벌과 부자, 중산층과의 합의 하에 행하여진 일이다. 이것이 바로 재교육을 통한 기회부여다. 이런 시스템은 미국의 프로 야구가 가장 큰 본보기라 할 수가 있겠다.
사실, 지금까지 예를 든 것은 참여정부의 ‘비젼 2030’에 다 나와있는 사회투자국가론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님도 작년 벤처기업 특강에서 언급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다 같이 추구하는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은 다양하고 합리적인 견제의 수단을 가짐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은 진보?
내가 공부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사람 사는 세상 즉,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기는 모순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으로써 진보는 심각하게 받아드리는 반면에 보수는 그 정도가 덜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경향이나 태도를 보인다는 것 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2007년 10월 18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벤처코리아 2007' 행사에 참석, 혁신벤처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했던 진보적 노무현 특강 '시민민주주의를 제안합니다' 내용 중 일 부분을 퍼오는 것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노무현은 진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진보주의는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가치입니다. 본시 민주주의 안에는 진보주의 사상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대립적인 개념이라고 책에 써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등한 사회만이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 누구로부터 자유입니까? 사람으로부터의 자유 아닙니까? 사람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하늘의 지배를 받는데 내가 뭐 ‘자유를 달라’ 이렇게 아무도 말하진 않아요, 그렇지요?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는데 그걸 자유와 속박의 문제로 얘기하진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유와 속박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중에서도 지배관계에서부터 발생하는 속박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을 얘기할 때는 평등이 근본입니다.
어쨌든 연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해 있는 가치입니다. 진보라야 민주주의입니다. 그 동안에는 시민민주주의,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면서 자꾸 민주주의라고 주장하고 내려온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개선하려는 것이 지금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한다, 그러나 완결은 없다는 명제가 성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토론을 보노라면 인문사회과학용어가 내 머리를 쥐나게 한다. 그래서 일일이 용어나 인물을 검색해서 그 주석을 찾아가는 것이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들었다.
본 것 또 보고 본 것 또 보고..... 마치 뺑뺑이를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지금 담론을 펼치는 정치, 사회, 종교, 과학, 문화가 결국엔 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하고 사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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