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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짐 푸는 중

이승만은 학살자였을 뿐이다

2014-02-04

 
 <이승만 國父, 데라우치 國祖?>에 이어지는 글.
 
왜? 새누리당은 현대사에서 말도탈도 많은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려고 저렇게 용을 쓸까? 더구나 그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을 불러일으킨 당사자 중 한 명이었고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한 최종책임자였으며 마침내 부정부패, 부정선거에 분노한 민중으로부터 권좌에서 끌어내려진 독재자가 아닌가 말이다.
 
난 이승만이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스크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본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죽게 한 최악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이승만이 12년 집권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양민을 죽였는지 아는가? 그것을 안다면 새누리당의 ‘이승만국부론’ 은 진짜 반 문명, 반지성적인 도발인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저들이 사람이라면 말이다.

[ 보도연맹학살 ]

사망자 4934명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남침해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초기 후퇴 과정 중‘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을 했다.

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가 북한과 내응하고 뒤에서 배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우려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주로 헌병대), 경찰 또는 교도소 교도관들은 '북한군에 아직 점령되지 않고, 확보해두고 있는 남부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을 무차별 검속하고 즉결처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같은 반공주의 성격의 극단적인 우파단체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우발적인 학살이 아닌 철저히 일관된 명령체계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
                                                                                                                                              글 출처/☞위키백과
사진 출처/http://theworldeveryonehappy.tistory.com/2014
[제주4.3학살]

사망자 14.032명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진상조사결과에 의하면, 제주 4.3 사건 당시의 제주도 상황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약 6만 명에 이르는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콜레라)의 만연,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특히 과거 일제강점기당시 경찰출신들이 미군정경찰로의 변신,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미군정 관리들의 모리행위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로동당계열의 좌익세력들의 활동과 군정경찰,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 반공단체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글 출처/☞위키백과
사진 출처/http://blog.daum.net/brownie0815/32
[국민방위군사건]

동사자 약 9만에서 12만여 명

한국전쟁 중 1951년 1월 1·4 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2월~2월사이에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 가운데 아사자, 동사자가 약 9만에서 12만여 명에 이르렀던 사건을 말한다
                                                                                                                            글 출처/☞위키백과
사진 출처/http://blog.joins.com/media/index.asp?page=13&amp;uid=sun7u&amp;folder=34&amp;page_size=5&amp;viewType=
[거창양민학살]

사망자 500여명

거창양민학살사망자 500여 명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한국군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다. 공비 소탕 명목으로 500여 명을 박산(朴山)에서 총살하였다. 그 후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었으나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김종원(金宗元) 대령은 국군 1개 소대로 하여금 공비를 가장, 위협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국회 조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의 3부 장관이 사임하였으며, 김종원·오익경한동석·이종배 등 사건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특사로 석방되었다.
                                                                                                                                              글 출처/☞  위키백과
사진 출처/&nbsp;http://blog.daum.net/junhamond/28
[함평양민학살]

사망자 5백24명

공비 토벌대였던 11사단(사단장 최덕신) 휘하 부대였다는 점, 공비 토벌 목적으로 주둔한 작전 지역 내 농촌 마을들에서 남녀 노소 가리지 않고 무원칙하게 주민을 집단 학살
                                                                                                                                             글 출처/☞시사저널

 

사진 출처/http://www.newsis.com/

 

[나주학살]

사망자 30여명

한국전쟁당시 경찰에 의해 무고한 양민 30여명이 숨진 '봉황 철야뒷산 양민학살'사건.

나주 주민 김영태 씨 현장 증언

"그 때가 아마 51년 2월 26일 새벽 4시나 됐을 겁니다. 낮일로 몸이 고단해서 곤하게 자고 있는데 개짖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리더니 마을 앞으로 모두 모이라는 방송이 들리더군요. 옷을 주섬 주섬입고 나왔더니 "공비가 마을에 숨어 들어왔다. 공비를 찾으려 하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마을 앞으로 나와라"는 경찰의 말에 아들, 딸,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왔습니다. 

200여명의 마을 주민 모두가 만호정앞에 모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들이 쑥 훑어 보더니 "너, 너, 너 그리고 할아버지 나오시오" 그 가운데 저도 지목이 됐습니다. 명단을 보고 호명을 하는 게 아니라, 경찰들에 의해 무작위로 선별해 약 35명 정도가 지목되더군요. 이건 완전히 재수 없어서 걸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출처/☞ 해남신문
사진 출처/&nbsp;http://genocide.jinbo.net/xe/book/357
[여수.순천학살]

민간인 사망자 439명

대한민국 정부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19일, 상사 지창수와 중위 김지회를 비롯한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주동하고 군인 2,000여 명이 전라남도 여수에서 봉기하여 이것을 대한민국 정부의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좌우 세력에게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 사는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반군에 의해 친일 악질 모리배 경찰 74명, 친일 악질 우익 인사 16명을 포함해 약 150여 명이 처형됐고 정부 진압 군경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일을 최소한 439명 죽였다.
                                                                                                                                          글 출처/☞ 위키백과
사진 출처/&nbsp;http://cafe.daum.net/ic200
[대구산청양민학살]

사망자 500여명

이 작전에 참여했던 시천면 특공대장 김남준의 증언 "냄비까지 소지했던 부녀자와 어린이 등 500명으로 피란민을 이민시켜 준다며 끌고와 학살했다" 
                                                                                                                                    글 출처/☞오마이 뉴스
사진 출처/ 오마이 뉴스
[함양양민학살]

사망자 80여명

1949년부터 50년 사이 지리산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빨치산을 도왔다는 명분으로 80여명 이상의 지역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 특공대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
                                                                                                                                         글 출처/☞ 주간함양
사진 출처/ 연합뉴스
[화순양민학살]

사망자 300여명 이상

한국전쟁 전후 화순관내 군경 등에 의한 민간인학살은 총93건으로 최소 300여명이상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관련 피학살자 유족들이 과거사청산을 위한 진상규명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 진행되면서 화순에서는 피학살자는 80여명으로 파악됐으며 이중 60여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글 출처/☞ 남도뉴스
사진 출처/http://www.hwasunnews.co.kr/
[한강 인도교 폭파 학살]

사망자 800여 명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6월 28일 2시 30분 대한민국 국군이 한강인도교를 폭파하여 민간인 800여 명이 사망한 사건
                                                                                                                                       글 출처/☞ 위키백과
사진 출처/http://dae6.tistory.com/115

 
민간인 학살지도

 
하지만 저들도 이승만이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들도 사람일 것이다. 아니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지금까지 축생들에게 지배를 받아온 축생만도 못한 버러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비참하잖아. -_-
 
그렇다. 저들은 살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살려고 죽을 똥 살 똥 용쓰는 것이다. 전 글에도 말했지만 저들의 민낯이 까발려지면 살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가 되고 미래에 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도발을 하는 저들을 죽여야 한다. (죽인다고 생명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저들과 저들 자손들이 지금처럼 떳떳하게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기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대한민국 헌법전문을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참 아름다운 명문이다. 놀라운 것은 저게 다 한 문장이란 것이다. 긍지를 가지자. 우리나라 정치를 헌법전문대로만 하면 세계최고의 문명국가가 될 것이다.
 
헌법전문에 보면 “3.l운동으로 건립”,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저 문장이 헌법전문에 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가 불의라는 것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이승만을 몰아낸 4.19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의거인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갑자기 건국 60주년 사업을 한다며 건국절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주장을 한다. 이 건국절은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이 대한민국 건국운동의 시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이전 일제강점기 기간에 국내에서 중국에서 만주에서 또는 미국 등등 해외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안중근의사, 이봉창의사, 유관순열사, 윤봉길의사, 김좌진장군 등등 그 외에 만주 벌판에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독립군은 모두가 다 무의미한 개죽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해방 후 반공투쟁과 좌우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국가라는 거다. 따라서 대한국민 정통성에서 항일운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친일을 했더라도 해방 후에 빨갱이만 때려잡으면 건국운동이 되고, 반공투사가 건국지도자가 되고. 이게 바로 건국절인 것이다.(박한용의 생얼현대사 참고)
 
과연 친일파계보로 이어진 새누리당의 발악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누차 하는 얘기지만 ‘친일파는 반공 팔아 우익이 되고 우익 팔아 기득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