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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뉴라이트 찌라시 문건 팩트체크

지금부터 비상계몽령을 선포한다.

어제 강ㅇ가 별 족같은 글을 보내왔다. 뉴라이트글인데 카톡으로 돌고있나 보다. 주장이 그지 같고 왜곡되어서 강ㅇ한테 팩트체크 글을 보내려다. 너희들도 그런 글을 받아봤을 것 같아 단톡방 잠시 개설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에게 어떤 나라인가?

조선시대 부터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1. 지배기간 비율이
중국 503년 : 일본 36년이다.

우리에게 일본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중국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중국 503년 : 일본 36년으로 중국이 훨씬 더 큰 원수다.

2. 중국은 한국에겐 천년 원수다.

3. 일본은 한국에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부스러기가 아니라 근대산업화 기반과 기술, 재산을 남겼다)
      
암튼 일본은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중국은 침탈만 해갔다!!

■ 일본에 위안부가 있었다면 중국은 50만에 이르는 '환향녀'가 있다!

환향녀 뿐인가?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당시 조선 인구의 10%를 청으로 끌고 갔다.

걸핏하면 우리의 처녀들을 중국놈들이 공물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중국은 사실상 1392년 이성계의 조선건국에서
부터 1895년 시모노세끼 조약때까지 503년간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왕조는, 이성계가 나라이름도 명나라에 조선과 회령 중에서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성계의 쿠데타는 잘못된 것이고 망국적 치적이므로,
최영 장군의 명나라
정벌계획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을 세우고,

영은문의 전신 홍살문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오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 때

■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영은문'으로 이름까지 바꿔 세운 것이다.

■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이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나라였다.

치욕적이게도 중국 황제가 승인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들의 진이 빠졌다.

■ 심지어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사신이 한 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者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 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영은문이었다.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 한다는 것이다.

■ 1894년 발발한 일본과 청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 이등박문과 중국(청) 이홍장 간의 조약으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가 있었기에 일본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될 것이다.

■ 그리하여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독립이라 하면
일본으로 부터 독립만 아는데,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과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온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3년 동안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주사파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잊혀졌다.

1950년 6·25 남침을 김일성과 모의하고
적극지원하여 우리국민
수십만명을 살상한

■ 마오쩌둥을 존경한다는 정신나간 전직 대통령까지 등장했다.

■독립문에 대한 무식과 오해가
희극이 돼버린 사례가

■ 문재인의 2018년 3·1절 기념식이다.

대통령이 3·1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독립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없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우리 국민들의 비극이다.
대통령이란 자가 독립문이 일본 독립문으로 알고있으니 개가 웃을 일이다.

■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미국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겐 8.15 광복절뿐 아니라

1895년 4월17일도
광복절임으로 둘 다
기념해야 될 것이다.

■ 중국과의 관계는
오래된 역사이니 잊자고 한다면,

■ 일본도 이젠 잊고, 극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 좌파 정권의 자칭 지도자라 했던 자들의 경우,
무식하면 용감은 하겠지만,

국민과 국가를 이끌 지도자 될 자격이 훨씬 뒤떨어졌던 것이 이제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 역사 이래 침략하고, 빼앗아 가기만 했다!

무식하고, 사악하고,
멍청하고, 찌질한, 바보들!

그래서
공산 사회주의 선전선동에
현혹되어 동조하고 부화뇌동하는
일부 좌경세력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일본이 시켜주었고,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은 미국이 시켜주었음을 알고

우리 나라 현재의 안전과 후손들의 안녕을 위하여 이런 점들을 잘 분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박 광 수 (경남매일 주필)

♡ 글이 너무 좋아 1200 여명의 톡친들에게 뿌리오니 무한 퍼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저걸 강ㅇ가 보냈는데 너그들도 다 봤지?
노인들 카톡에서만 돌고있나 보던데....

그려. 역사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현상이다. 바람직혀.
근데,  저런 병신같은 뉴라이트 자학사관에 빠진 글로 역사를 배운다면, 차라리 모르니만 못한 거다. 지금부터 펙트체크 해보겠다.

조선이 명, 청의 '속국'이었다는 표현은 현대의 식민지 개념과 혼동하는 거다. 당시 조공, 책봉 관계는 외교적 형식이었지, 중국이 조선의 내정이나 군사를 직접 통제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조선 왕이 왕위 계승 시 명의 승인을 받았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였을 뿐이란 거다. 반면에 일제 강점기는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식민지 시대였고, 강제 징용·징병, 문화 말살 등 직접적 피해가 있었다. 두 시기를 단순히 '지배 기간'으로 비교하는 건 역사를 왜곡하는 거다.

예를 들어 니덜이 어렸을 때 옆집에 덩치가 존나 크고 힘이 쎈 친구가 살고있었다고 치자. 근데 니덜은 이 친구와 싸워 봤자 손해인기라. 왜냐면 옛날에 많이 싸워 봤거든, 너는 항상 존나 맞았지만 옆집 친구도 눈탱이 밤탱이 된 적도 있었던기다. 어떤때는 니가 불알을 걷어 차서 그 친구가 뒈질뻔 한 적도 있었지. 그게 고구려 시대다.

그래서, 너그들은 "그래 씨발아! 니가 이 동네 짱 해라! 대신 나 건드리지는 마라. 씨발! 나도 한 성질 하는 거 알지? 대신 내가 너 한테 형이라고 할게"

그래 된거다. 조선과 명이....
실제 걔가 나이가 더 많은 형 맞고....

근데 또 옆집에 사는 새끼가 있었는데....
하 이 새끼 완전 생양아치 인거다. 덩치는 비슷한데 너그들을 형님 형님하면서 술도 존나 많이 얻어 먹었거든? 근데 어느날 너그들 집에서 술을 먹다가 이 십세 너그들을 술에 약을 타서  뻗게 만들어서 팔다리를 묶어 놓고 니 여동생을 존나 때리는 기라. 그리고는

"너는 내 여자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이 집에서 살것이다. 내가 널 지켜주는 기둥서방이다. 내말은 무조건 들어."

이래 된 거다. 조선과 일본이....

일본은 부스러기라도 남겼다고? 하 신발...

다 지들 좋으려고 한 거다. 일본이 철도 깔고 공장 지은 건 맞다. 근데 그거 우리 좋으라고 한 거 아니다. 우리나라 쌀이랑 석탄 같은 거 더 쉽게 뺏어가려고, 그리고 지들이 전쟁하는데 필요한 물건들 더 빨리 만들려고 그런 거다. 마치 도둑놈이 훔쳐갈 금덩이 쉽게 옮기려고 지름길 닦아놓는 거랑 똑같은 짓인 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땅이랑 돈 엄청나게 뺏어갔다. 알겠냐? 이걸 혜택이라고 포장하는 새끼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친일파 논리를 전파시키는 새끼들... 다 디져뿌려야 한다.

물론 중국도 우리 괴롭힌 적 많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개입… 존나 빡치는 역사 많다.
근데, 옛날부터 우리는 중국이랑 문화도 주고받고, 학문도 배우고, 서로 영향 주고받으면서 찐친처럼 지낸 적도 존나 많다.

니덜이 지금 쓰는 한자도 중국에서 온 거고, 종이, 도자기, 화약, 문익환 할배 목화씨 몰래 훔쳐와서 옷감 만들었다. 이거 산업스파이짓이었다.

절에서 염불 외는 불교도 중국 통해서 들어온 거다. 그리고 강ㅇ 니가 믿는 개신교도 중국을 통해서 들어 왔다.

그니까... 좋은 관계도 있고, 안 좋은 관계도 있었던 거라고. ...오래된 친구처럼, 웬수 같았다가 찐친 같았다가 하는 거지. 세상 모든 관계가 어디 흑백논리로 딱 잘라지든?

일본 식민지배는 우리 위해서 한 거 하나도 없다. 다 지들 배 채우려고 발악한 거지. 근데 중국이랑은 훨씬 복잡하고 여러 겹의 관계가 있었던 거다.

니덜 "조공" 이라고 알지?

뉴라이트가 설파하는게 뭐냐면, 조선은 명, 청에게 수백년간 조공을 바치며 사대했다고하는 거다.

사대한 거는 맞다. 사대 외교란....강대국을 섬기고 존중하며, 그 정책과 요구를 따르는 외교 방식이다. 강대국과의 갈등을 피하고,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이는 강대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국제적 충돌에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그러나 국익을 제한적으로 행사하며, 자주성 부족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그래서 지금 우리가 미국에하는 짓이 사대라면 사대인기다.

한 때 명나라 중국은 세계 최강이었다. 존나 부자 나라였다. 지금의 미국을 쌈싸먹을 정도였다. 그 당시 미국은 아예 없었고 유럽인데 유럽보다 경제력과 기술이 한참 앞서 있었다. 그래서 조공무역이 엄청 발달했다.

조공무역이란?
옛날 중국 황제 나라 (종주국) 랑 주변 나라 (조공국) 들이 하던 특별한 무역 방식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주변 나라가 중국 황제한테 예쁜 선물 바치는 기다. 그냥 주는 게 아니고, "형님 나라 짱!" 하면서 존경심 표시하는 거지. 선물은 특산물 같은 거였다.

그리고 선물 바치러 온 김에, 중국이랑 물건도 같이 사고팔고 하는 거다. 중국 황제는 선물 받고 답례품도 주고, 무역도 넉넉하게 허락해 줘서 조공국은 중국 물건 싸게 얻고, 자기네 물건 비싸게 팔 수 있었던 거지.

중국 당,송,명나라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경제에 가까웠다. 내부 시장이 워낙 크고 풍요로워서 굳이 해외 무역에 크게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근데 왜 조공무역을 했을까?

중국 입장은 주변 나라들한테 "나 짱이야!" 힘 자랑하고, 질서 유지하고. 무역으로 이득도 챙기고.

주변 나라 입장은 중국 힘 빌려서 나라 안전 챙기고, 덤으로 무역 이득까지 얻고, 중국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다.

조공무역은 그냥 선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관계 + 경제적인 이득 이 섞인 복잡한 시스템이었던 게다. 겉으로는 "형님 아우" 관계지만, 속으로는 서로 계산적인 무역거래를 했던 거다.

이때 조공 무역은 조공을 하러간 나라들이 훨씬 이득이었다. 왜냐면 중국이 엄청 선진국이라 배울 게 많고 신기술과 신제품이 존나 많았다는 거다. 항해술, 조선술, 무기 제조 기술, 도자기, 비단, 종이, 화약, 의약품 등등...

그래서 각 나라는 중국에게 조공하는 횟수를 늘려달라고 중국황제에게 때를 쓰고 그랬다고 한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통해 부탁을 하곤 했다더라.조공을 받치는 나라가 삥을 뜯긴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을 삥뜯으려 서로들조공을 원한 거다.


명나라때 조공국 숫자는 이게 딱 몇 개 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데...왜냐면 시기마다, 또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 그래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수십 개에서 많게는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중국은 조선을 제1의 조공국으로 대우 해줬다고 한다.

일본에 위안부가 있었다면 중국은 50만에 이르는 '환향녀'가 있다?

맥락 자체가 틀리고 억지 비교다. 일본군 '위안부' 는 일본 '군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다. 멀쩡한 나라 쳐들어가서, 신발아! 어린 여자들 강제로 끌고 가서 군대 '위안소'라는 곳에 가두고 성노예 시킨 거잖아.

이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계획하고 실행한 인권 유린인 거다. 그래서 지금도 국제적으로 비판받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니?

'환향녀'. 이건 전쟁 중에 (주로 병자호란) 청나라 군대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말한다. 전쟁통에 납치, 약탈당한 건 진짜 비극적인 일이지만, 일본군 '위안부'처럼 국가가 계획적으로 성노예 만든 거랑은 차원이 다른 거다.  

환향녀들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겪었지만, 이건 전쟁의 비극이지, 특정 국가가 조직적으로 여성 인권을 짓밟은 범죄랑은 비교할 수 없는 거다.

억지로 둘 다 여자들이 고통받았으니 똑같다?

이게 진짜 개소리다. 맥락, 책임 주체, 범죄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냐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약 10만 명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3만~4만 명 정도였다. 근데 포로인 환향녀가 50만 명이라고?  

이는 당시 사신이었던 최명길이 남긴 기록에서 유래한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 청나라는 당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50만 명의 포로를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실제 포로 수는 그보다 훨씬 적었겠지만, 많은 조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매우 좋지 않았다. 이들은 청나라에서 모욕을 당했을 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가족들과 사대부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인조는 이러한 여성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효종 시기에 들어서 사대부들은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정절을 잃었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 당시 조선 남자 새끼들은 참 비겁했단
소리다.남자새끼들이 지가 힘이 없어 처맞고 지 여자까지 빼앗겼으면서도 그 탓을 힘없는 아녀자한테 화풀이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새끼들이 지금 위안부는 창녀였다... 개소리하는 뉴라이트 십세들이란 걸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당시 조선 인구의 10%를 청으로 끌고 갔다.?

"조선 인구 10%" 라는 숫자는 정확한 통계 기록은 없다. 당시 조선 인구가 정확히 얼마였는지도 추정치일 뿐이고, 끌려간 숫자를 정확하게 센 기록도 없거든. 당시 조선 인구를 대략 1000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데,10%면 100만 명이다 100만명. 신발!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끌려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정확한 숫자는 기록에 없고 한 몇만명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병자호란. 참 젓가튼 역사다. 영화 <남한 산성>을 함 찾아 봐라. 그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 지금 이 시기에도 시사점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503년간 조선을 속국으로 지배했다"는 건 과장이다. 조선이 조공-책봉 관계를 맺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속국'은 아니었었다. 조선은 내정, 외교, 군사 면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가졌었다.

이성계가 명나라에 국호를 요청한 건 맞지만, 이건 단순히 새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행위였다. 당시 동아시아 질서에선 흔한 일이었다.

"이성계의 쿠데타가 잘못이고 최영 장군의 명나라 정벌이 맞았다"는 건 부질없는 생각이다.

최영의 요동 정벌은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 봤을 때 위험한 도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해석은 조선을 지나치게 중국 종속적으로 보고, 이성계를 부정적으로, 최영을 미화하는 편향된 시각이다. 역사는 단편적 사실만 보지 말고 당시 맥락과 여러 측면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이런 편향된 해석은 반중 감정이나 친일적 역사관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최영의 요동정벌시기는 고려말 우왕때인데 우왕은 공민왕과 신돈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의혹을 받았다. 신돈의 씨라는 소문도 돌았었다. 이로 인해 왕권의 정당성이 흔들렸고, 권신들이 실권을 장악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래서 권문세족이 득세하고 이인임 등이 국정을 농단하며 토지 겸병과 세금 착취가 극심했다.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고, 국가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을 수행할 국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4불가지론을 최영에게 설명했지만 고집불통 최영이 이성계의 말을 안들었다.

이성계의 4불가지론

1.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 명은 국력이 압도적입니다.
2.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 장마철은 병참과 이동에 치명적입니다.
3.적국(명)의 지형을 모르는 것은 불가/ 요동은 고려군에게 낯선 전장입니다.
4.군심이 이반된 상태에서 출병하는 것은 불가/백성과 병사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명은 이후 200년 이상 동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했다. 이것만 보면 고려가 당시 명과 전쟁을 벌였다면 완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전쟁을 중단시켰고 이는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되었다.

최영의 강경론은 민족적 자존심에 호소했지만, 부패한 지배층과 피폐한 국력으로는 실행 불가능했던 거다. 그 반면에 이성계는 체제의 한계를 직시하고, 전쟁 대신 권력 재편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수립의 기회를 만들었던 거고.....

"강경론 vs 현실론"의 대립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성계의 선택은 무모한 도전보다 체계적 개혁이 장기적 생존에 필수적임을 보여준 거다. 다만, 이성계의 행동이 쿠데타라는 점에서 도덕적 논란은 남는다.

내 생각은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나쁜놈이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전쟁을 한 새끼는 더 나쁜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나쁜놈이다.
당시 최영이 우크라니아의 젤렌스키였지 않았나 싶다.

시진핑이 트럼프한테 "한국은 예전에 중국 일부였어"라고 말한 건 진짜로 있었던 일이다.. 2017년에 그 둘이 정상회담 할 때 이런 얘기를 했다.

근데 이걸 어떻게 해석할지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시진핑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북한 문제를 얘기하면서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이 커서 도울 수 있다"는 걸 강조하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일부였다"라는 말도 좀 애매하다. 진짜 영토로 중국 땅이었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중국은 나중에 "그냥 조공 관계 같은 거 말한 거다"라고 해명했다. 중국은 원래 역사적으로 주변 나라들을 자기네한테 조공 바치던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반영된 발언일 수도 있다.

"500년 이상 속국으로 생각", "스스로 기어들어갔다" 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한 거다. 조선은 조공,책봉 관계 속에서 자주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능동적인 외교 전략을 펼쳤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책봉과 공물은 사실이지만, '치욕적', '진이 빠졌다' 는 표현은 감정적인 과장이다. 조공/책봉 관계는 당시 국제 질서 속에서 외교적 필요성과 경제적 교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스템이었고, 조선은 이 관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중국 사신이 조선 국왕보다 서열이 높았다는 건 의식이나 예절 상의 순서를 말하는 거다. 예를 들어 요즘으로 치면, 외국 대사가 방문했을 때 의전 순서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과 비슷한 거다.

의전 서열에서는 높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사가 우리나라 대통령한테 명령하거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니것 처럼,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예의를 갖춰 맞이하고 의례적으로 높은 대우를 했지만, 조선의 실질적인 통치권은 여전히 국왕에게 있었다. 사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고, 조선의 내부 정치에 직접 간섭할 권한은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중국 사신이 조선 왕보다 서열이 높았다"는 말은 맞기는 하지만, 그걸 가지고 "조선이 완전히 중국에 종속됐다"고 해석하는 건 너무 과장된 거다.
겉으로 보이는 의식과 실제 권력은 다른 문제다.

그만큼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중국이 최강이었고 조선이 약했던 거다. 그 당시 세계를 둘러 봐라. 그렇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나?일본도 옛날에 우리에게 그렇게 했다. 조선 일본통신사절단도 그래서 보낸 거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와서 뇌물 받고 돈 많이 벌어갔다는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먼저 당시에는 조선이 명나라나 청나라에 사대 외교를 펼쳤기 때문에, 중국 사신이 오면 공식적으로 예물을 주는 게 정상적인 외교 관례였다. 이건 그냥 국가 간 예의를 지키는 거였다.

근데 문제는 일부 중국 사신들이 욕심이 많아서 공식적인 선물 말고도 더 많은 걸 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었다는 거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 기록에도 사신들이 과도한 선물을 요구해서 골치 아팠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중국 사신들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조선 상인들이랑 몰래 거래하면서 돈 벌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인삼 같은 귀한 물건의 무역을 독점하려고 한 기록도 있다.

그런데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는 표현은 좀 과장됐음
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 정확한 증거는 별로 없다.

요약하면, 당시 국제 질서가 불평등했기 때문에 생긴 구조적인 문제이고 일부 사신들의 개인적인 욕심과 부패였다. 그렇다고 조선도 이런 문제에 그냥 당하기만 한 건 아니고, 중국 조정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진정서를 올리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중국 사신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례는 분명히 있었지만, 이걸 현대적 의미의 "뇌물"로 보기보다는 당시 조공 체제의 불균형과 개인적 부패가 섞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영은문.

영은문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한 것은 맞지만, 이걸 그냥 '굴욕적인 행위'로만 보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다.

조선 국왕이 영은문까지 나가서 중국 사신을 맞이한 건 맞다.'영은' 이 '은혜를 맞이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은혜'가 중국 황제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도 맞다. 근데 이걸 현대 시각으로만 판단하면 오해하는 거다. 이건 그냥 외교 의례, 요즘으로 치면 외국 정상이 방문할 때 공항에 대통령이 마중 나가고 의장대가 도열하는 거랑 비슷한 외교의례였다. '은혜'라는 말이 지금 들으면 좀 굴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겉으로 보여주면서, 실제로는 안보나 무역 같은 실질적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이었던 거다.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가 있었기에 일본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될 것이다."

저 주장이 얼마나 멍청한 개소리고 잘못된 사관인지를 알려면,청일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동학혁명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의 부패를 알아야 한다.

청일전쟁(1894~1895년)

청일전쟁은 동북아시아, 특히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 제국 간의 패권 다툼이 폭발한 사건이다. 이게 존나 중요한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이 나기 직전의 동북아 상황을 알아야 된다. 최대한 쉽게 풀어서 청일전쟁 시기 동북아 상황을 설명해 볼게.

1894~1895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은 그냥 단순히 두 나라가 싸운 게 아니었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완전 존나 복잡한 상황이었다.

청나라는 옛날엔 되게 강했는데, 영국과 아편전쟁이후로 점점 맛이가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은 영국 아덜이 무역적자가 나니까 아편을 팔아 손실을 만회하려다가 일어난 전쟁이다.
하- 아편전쟁도 존나 중요한데 여기서 또 샛길로 빠지면 글이 존나 길어지니까 생략할게.

한마디로 아편전쟁은, 영국 십세들이 생 양아치들이었다는 거다. 지금 세계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따지고 올라가면 영국 애덜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똥을 싸놔서 그런 거다. 암튼....

청나라는 서양 국가들한테 존나 다구리 당하고 있었다.베트남에서 월남을 놓고 프랑스와 싸워서 지고 뭐 암튼, 우리 힘쎈 형이 이제 다 늙어서 동네 북이 된 거다.

그 반면에 일본은 쥐어터지는 청나라를 보고 또 일본 근해에 출몰한 미국 흑선에 감동을 먹고 반성을 존나 한다.

" 하- 뭐야... 서양 오랑캐가 아니라 재덜 기술이 후덜덜하구나 야..." 하면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걸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엄청 빠르게 발전하면서 "야 이 새끼들아! 좀 만 기둘려 내가 이제 동네 짱 먹을 거다!" 이렇게.야망을 품는다.

그럼 우리 조선은?

가만히 보니께 조선을 지켜주던 우리 힘센 형이 저 서양 것들에게 존나 터지고 있는 거다. 그러니 "하- 저 새끼들 상대하면 안돼겠구나 야..." 하면서 대문을 잠그고 안 나온 거지. 말하자면 쇄국정책을 했다.

러시아는 "아! 따뜻한 바다로 나가고 싶다~" 하면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려고 했고 얼지 않는 부동항 확보에 사활을 건다.

영국 등 서양 것들은  "와-신발! 아시아에서 왜 일키 먹을 게 존나 많은 겨. 베리굿- 베리굿 " 하면서 막 밀치고 들어오고 한마디로 식민 제국주의가 시작이 된 거지.

이때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큰 반란이 일어났다. 탐관오리 때려 죽인다, 이자놀이 하지말고 평등권 보장하라 그리고 세금 좀 작작 걷어라... 난리법석이 나고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근데 조선 정부가 이걸 진압하기 힘들었던 거다. 군대가 형편 없었걸랑. 그래서 청나라에게 "헝아! 나 좀 도와줘!" 했는데, 일본이 "난데스카? 조센 빠가야로! 글타면 나도 군대 보낼 거야!"라고 끼어들었다. 그 전에 청일간에 맺은 텐진조약에 그런 게 있었거든. 아싸!가오리! 한 거지 일본은...

사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조선을 차지하고 싶어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청나라를 한 번 확 밀어내버리고 조선을 내 나와바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속내를 들어낸 거다.

이 청일전쟁이 왜 중요하냐면, 이 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됐다.

1. 청나라가 완전히 약해졌다는 게 세계에 드러났고
2. 일본이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고.
3. 조선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결국 나중에 일본 식민지가 되는 첫 단계였던 거지
4. 서양 나라들이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에 개입하게 됐고.

쉽게 말해서, 청일전쟁은 "누가 조선을 먼저 차지할까?" 싸움이었는데, 이게 결국 동아시아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은 거다. 일본이 이기면서 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고 드디어 일본이 짱 먹은 거다.

그리고 나서 청나라 이홍장을 일본으로 불러 들여 맺은게 '시모노세끼 조약'이지. 근데 일본이 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을 독립시켜줬다고?

아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에 뭔 내용을 담았냐면?

1895년 일본이 청나라를 이기고 맺은 조약에 "조선이 독립국이다"라고 쓴 건 사실이다. 근데 이건 마치 두 도둑이 "이 물건은 네가 가져!" 하고 합의한 것과 같은 거다. 일본이 "헤이.이홍장! 이제부터 조선은 내 차지! 맞지?"라고 선언한 거다, 진짜 조선 독립을 인정한 게 아니었다는 거다.

503년 중국 지배에서 해방?

조선은 중국의 완전한 식민지가 아니었다. 조공을 바치긴 했지만 우리만의 정부, 왕, 법, 군대가 있었고 내정은 우리가 다 알아서 했다. "503년 지배"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낸 거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직접 통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가 있었기에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
"고?

어휴- 욕 마렵다.#&&#₩÷@?#^#&#

이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에 일본은 조선에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알고나 하는 소린지... 불과 10년 후에 을사늑약 강제로 맺고, 15년 후엔 나라를 통째로 빼앗았다. 개시키들.... 조선을 "독립"시킨 게 아니라, 청나라 없이 마음대로 먹어치우려고 한 거다.

쉽게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한여자를 노리고 있었는데, 한 명(일본)이 연애은 아니고 그냥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한 명(청나라)을 쫓아내면서 "이제 넌 자유야!" 라고 말한 뒤, 얼마 안 있어 그 여자를 강간한 거다. 이런 새끼한테 "강간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해야 할까? 절대 아니다.

결론은,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 독립의 시작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배로 가는 첫 단계였다는 거다. 그래서 역사는 똑바로 알아야 하는 거고....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

독립신문 영문판 1896년 6월 20일 사설에 따르면, 독립문은 청나라와의 오래된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근거로서 건립된 것이 맞다. 그러나, 같은 면에는 이 문은 청나라 뿐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 모든 유럽 열강들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라고 분명하게 쓰여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립문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만을 상징한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자료인 셈이다.

문재인 마오쩌둥 존경 발언.

이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국빈 방문 때  베이징대학에서 연설할 때 했다고 주장하는 건데 앞뒤 자르고 맥락 무시하고 "문재인 빨갱이에요!" 라고 왜곡한 거다.

연설전문을 분석해 보면, "마오쩌둥을 존경한다"는 직접적인 발언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연설 맥락을 살펴보면, 한중 양국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강조한 거다. 함께 힘을 합쳐 침략자 일본과 맞서 싸웠던 항일의 역사 경험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다. 직접 가서 전문을 읽어 보기 바란다.

문재인 베이징 대학 초청연설 전문

https://www.yna.co.kr/view/AKR20171215067000001


"문재인이 독립문에서 만세불러서 한심하다"는 주장 ....

문재인 대통령이 3.1절에 독립문에서 만세를 부른 건 맞다. 근데 이걸 "한심하다", "개가 웃을 일"이라고 비난하는 건 그냥 감정적인 공격이다. 독립문은 우리나라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니까, 3.1절에 거기서 만세를 부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이 중국에서 독립시켜주고, 미국이 일본에서 독립시켜줬다"는 주장.....

완전 개소리 미친 개소리다. 일본은 우리를 "독립"시켜준 게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식민지로 만들려고 청나라와 맞짱 뜬 거다. 그리고 이겨서 조선을 강간한 거다.

그리고 미국도 물론 일본 패망에 기여했지만, 우리 독립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도 졸라 많이 들어 가 있다. 2차대전 주요 승전국 수장인 장개석이 임시상해정부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등등 조선의 항일 운동을 존나 부러워 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우리 중국인은 조선의 저런 기개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외국의 "도움"으로만 독립한 것처럼 말하는 건 역사를 무시하는 거다.

"1895년 4월 17일도 광복절로 기념하자"는 주장...

미친...

4월 17일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일인데, 이날은 광복이 아니라 일본 침략의 시작이었다. 이 조약 이후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더 심하게 침략했고, 결국 완전히 빼앗아 간 거다.  이런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자는 새끼는 뇌에 우동사리가 가득찬 새끼다.

병맛글 마지막 부분은.....

"민주당 재덜 삘갱이에요~ 삘갱이.빨갱이.빨갱이"
하면서 끝난다.

글쓴 nom은 바로 저 말을 하려고 길게 되도 않는 억지 논거를 세워서 팩트를 왜곡하며 글을 쓴 것이다. 할 줄아는 게 그저 빨갱이 타령뿐인 거다.

그래... 느그덜이  빨갱이라고 욕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15년 하고 나머지 62년간 친일파 후예, 독재자 후예들의 정부의 성적표를 함 찾아 봐라. 누가 더 실력이 있는 정부였는지 말이다. 그건 객관적인 통계 팩트만 봐도 금방.차이를 알 수있는 초딩 산수다 산수.

지금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인터넷 기반시설. 이거 김대중이 앞을 내다 보고 정책에 옮긴 거다.

반도체? BTS? 한류문화?
찾아 보거라. 김대중이 무얼했는지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

전대가리가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수로 가두었을 때 감옥에서 우리나라가 가져야 할 미래의 먹거리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그거 함 봐라. 기가 막힌다 진짜.

노무현?

지금 K 방산 존나 인기있지? 돈도 존나 벌어들이고....앞으로 더 번다. 방산주 올라간 거 봐라. 이게 다 노무현의 국방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방위산업 자주화 정책이 지금의 K-방산 성공의 밑거름이 된 거다. 당시만 해도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시작한 국방 기술 자립은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산업으로 성장시킨 거다. T-50 고등훈련기, K9 자주포, 중형 잠수함 등 주요 방산 프로젝트들이 다 이 시기에 탄력을 받았다.

문재인?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K-방역으로 세계적 모범이 되었고,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을 이끌었다. 또한 2019년에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이런 성과들은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까? 소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세력들은 이런 객관적 성과보다 이념적 공격에만 집중한다. 팩트와 성과를 보지 않고 무조건 '좌파=나쁘다'는 등식을 고집하는 거다. 왜? 지덜도 아는 거지..실력이 존나 없다는 것을...

실제로 OECD 경제 지표, 각종 국제 평가를 살펴보면 이런 진보 정권들의 경제 성적표가 훨 낫다.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 혁신 산업 육성, 사회 안전망 구축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치를 바라볼 때는 "빨갱이" 같은 낡은 이념적 프레임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성과를 봐야 하는 거다. 산업 정책, 외교 안보, 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거다. 그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정부가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했는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가다. 감정적 비난과 이념적 공격으로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이제는 "빨갱이" 같은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정책과 성과에 기반한 건설적인 토론이 필요한 때란 말이다.

근데 내란수괴를 풀어주는 나라라니....
참! 족가튼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C baral....


[주간 뉴스타파] 대통령과 뉴라이트 그리고 아스팔트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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