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9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영화 <더킹>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자주 쓰는 일종의 마케팅기술이다. 그러나 '네다바이'이고, '야바위'이고 사기질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 결국 이슈 자체를 유야무야 넘기려는 공작인 거다.
권력자나 권력기관의 비리가 터지면 신기하게 때를 맞춰 연예인 스캔들이나 정적의 비리가 터져 나온다. 정치 이슈는 잊어버리고 연예인 이슈에 집중케 하거나 물타기 하는 거다.
검찰청 캐비닛과 언론사 편집국장 책상 서랍에는 몇 년씩 묵힌 저런 이슈들이 수북이 쌓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주문만 하면 배달되는 택배 상품처럼 말이다. 이 이슈 배달은 권력자의 주문도 있지만 언론사가 자발적으로도 한다. 물론 나중에 그에 상응하는 계산서를 내밀지만....
이런 암묵적인 거래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의기투합한 공범 관계라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에 난다 긴다 하는 재벌, 언론사주, 정치인, 판검사, 고위직 공무원으로 연합된 기득권들은 혼맥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들은 힘과 정보를 공유하는 동업자들이다. 그런 동업자 의식 속에 만수산 드렁칡처럼 어울렁 더울렁 동악상조하고 있는 거다. 참 더럽고 냄새나는 관계다.
"장부 달고 밥 먹는 청와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신문기사 제목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밥을 제 돈 주고 사 먹지 않았단다. 청와대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밥을 먹고 계산은 청와대 출입 중앙기자단 이름으로 장부에 달면 됐다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청와대 행정실에서 한 달에 한번 식당별로 장부에 적힌 비용을 계산했다고 한다.
이러니 기자는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돈이 세이브가 되는 거다. 부조리지만 오래된 관행이라 얻어먹는 기자나 지불하는 관료나 모두들 죄의식이 없었다. 당연한 대우고 접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렇게 작은 밥값이 친분이 되고, 관계가 되고, 촌지가 되는 거다. 그리고 커미션이 되고 로비를 거쳐 리베이트가 되는 거고. 바로 지금 탈이 나 구속 위기에 몰린, 머니투데이 법조 기자 출신, 화천대유 김만배 대표가 걸어 온 길이 바로 저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예 골로 가는 길로 만들어 줘야만 한다.
청와대출입기자실은 대안 언론과 군소 언론의 취재원 접근을 차단하기 때문에 누구나 누려야 할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 그리고 기자실과 기자단은 취재원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기자가 취재원을 포섭하기보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포섭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애초에 독재정권이 청와대 출입기자의 수를 조정하여, 쉽게 언론 매체와 보도를 통제하려고 만든 출입기자실은, 시작부터 정언유착이고 부조리한 것이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이 부조리한 폐단을 고치려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고 사실상 정부 부처 기자실은 폐지하였다. 이에 대해 언론사와 기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기자들이 노무현을 원수보듯 악심을 품은 계기가 바로 저 개방형 브리핑룸 때문이다. 그 전에는 정부부처에 기자들이 마음대로 들어갔다. 심지어 정책담당자 책상위에 놓인 서류를 뒤져 기사거리를 찾았다고도 한다. 정책보안이 불안했을 것이고 만약에 누구에게 포섭됐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공무원이 있다면 기자가 볼 수있게 은근슬쩍 흘리기도 했을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애써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취재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바로 문만 열면 취재지역이고 정보원이니 기자들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며 기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던 거다.
기밀이 해제된 위키리스크에 보면, 당시 주한 미국대사로 근무하고 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개방형 브리핑룸 논란'을 이렇게 정리해 본국에 보고했다.
[한국 언론은 현재 정부 각 부처와 당국자들에 대한 놀라운 수준의 접근권을 누리고 있다. 미 대사관 직원들은 (한국 정부) 부처 로비에서뿐 아니라 복도에서 돌아다니는 기자들을 자주 만난다. 고위 당국자들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이 쉽다는 점은 명백하다. 정부의 내밀한 정보가 신속하게 유출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 부처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권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한국이 풍부하게 누리는 언론 자유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외국에서는 흔한 '경계(boundaries)'를 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7년 6월 26일 자 미 대사관 전문>]
이 개방형 브리핑룸은 이명박이 취임하자 마자 도로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 다시 언론과 정권은 야합을 하고 솥단지 바닥까지 박박 긁는 추접을 우리는 지켜봐야만 했다.
노무현대통령이 옳았다.
노무현을 잃고 지나고 보니
노무현의 옳았음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참 마음이 아프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 신문 가판구독도 중단했다. 정부기관들 역시 뒤를 이어 가판구독을 모두 중단했다.
가판은 하루 전날 저녁에 나오는 다음 날짜 조간신문이다. 그래서 관공서와 대기업의 로비나 압력에 따라 기사가 교체되는가 하면 신문마다 빠진 기사를 보고 뒤따라가느라 닮은꼴 신문을 양산한다. 그래서 '임시판', 혹은 `가짜판'이라는 뜻으로 가판으로 불리는 것이다.
저런 이유로 가판은, 기사를 둘러싼 뒷거래의 시발점이라는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정부나 어떤 기업에 불리한 기사가 실리면 기사를 빼 달라, 고쳐 달라는 회유나 거래가 이어졌던 것이다.
언론사가 간을 보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돈 가져와라 고쳐줄께' 이거다. 언론 권력에 의한 갑질인 거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의 가판구독 중단은 참여정부의 권언유착 근절 의지를 상징하는 조치였고 옳은 일이었다.
사실 노무현은 대통령되기 훨씬 이전부터 민주주의에 끼치는 언론의 해악을 깨닳고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금기였던 거대 언론사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곡 거짓 보도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열심히 제소를 하였고 고소 고발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거대 언론사는 그런 노무현을 길들이려 아니, 죽이려고 사력을 다 했다. 오죽하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라는 책이 출간될 정도였다.
정치인이 언론과 척을 지면 그 정치인의 정치여정은 이루 말할 수없이 고단해진다. 발언이 왜곡되고 주장이 누락되고 생각이 외면 받는다. 살아남지 못하는 거다. 그러나 노무현은 인터넷이란 신기술이 있었기에 언론의 무차별적인 집중포화 속에서도 살아 남아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우리를 위대한 민주주의로 이끌었다.
인터넷이 언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었다. 이 거대한 흐름에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위기를 느끼고 야당인 한나라당과 동업자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죽이기로 작당을 했다. 취임하자 마자 그들의 첫 일성이 탄핵이었던 것이다.
2003년 2월26일 참여정부가 출범을 했다.그리고 보름후 3월11일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거부하면 탄핵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전 언론이 한나라당의 이런 정치공세를 비판없이 받아 쓰기에 바빴고 그 뒤로 저들은 탄핵을 아예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2004년 3월12일 진짜로 탄핵소추를 했다. 그야말로 막가파였다.
저들에게 노무현은 이단아였고 변방의 촌놈이었다. 촌것이 대가리를 쳐들면 죽여야 하듯, 저들은 일진 패거리처럼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죽이려했던 것이다.
예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나자렛예수로 불리었다. 귀신마저 큰소리로 "나자렛예수다!" 라고 외쳤다고 한다. 나자렛은 촌구석이고 촌놈예수가 뭘 알겠냐? 는 비아냥이었던 거다.
하지만 변화의 기운은 변방에서 움트고 촌놈이 제일 먼저 앞장 서서 시작을 한다. 중심은 가진게 많으니 지킬게 많아 변화를 싫어하고 수구적이다. 천천히 변하자는 보수야 그렇다하겠지만, 변화를 아예 거부한 채 고여있는 수구는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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