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5
들어가기 전에
이글은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故 장자연씨 사건을 비롯해 청와대 행정관의 매매춘에 이어 경찰청장의 기자 성 접대 발언이 연이어 빵빵 터지는 사건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사회 밑바닥과 상층부 가릴 것 없이 부도덕한 성의식이 만연되었음에 같은 남성으로서 고민을 해보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글의 결론은 신통치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 시간 사회 그늘진 곳에서 남자에 의해 성착취를 당하는 여성들이 늘어만 가는 추세이고 그 사회의 구성원인 남자로서 과연 나는 어떤가? 반추해볼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방의 역사
다방은 차를 마시며 음악과 휴식을 즐기고 만남과 상거래도 이루어지던 우리네 친근한 생활공간이었습니다. 예전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북적여 문화계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였죠. 천재시인이며 건축사이기도 한 ‘이상‘ 이 여러 다방을 직접 설계하여 운영하거나 되판 건만 보아도 초기다방은 오늘날과 같이 돈만 쫓는 비정한 업주가 퇴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그래도 문화와 예술을 아는 지식인들이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키며 건전하게 운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902년 손탁(澤, Sontag)이라는 독일계 러시아여자가 정동에 호텔을 지으며 그 호텔 안에 커피를 파는 공간을 두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라고 하는군요. 그 후 명동에 일본인 소유의 ‘후타미(二見)’, 충무로의 ‘금강산’이란 근대적 의미의 다방이 생겨나고 예술문화인들이 이 다방사업에 많이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예전의 다방은 이재(理財)만을 위한 상업다방이라기보다는 멋과 낭만이 숨 쉬는 예술문화공간이었는데, 1960년대를 전후로 지식인계층의 남자주인 대신 장삿속이 밝은 여주인이 등장하여, 얼굴마담과 레지, 카운터, 주방장 등을 데리고 경영을 하는 상업체제로 변모하였고 이전보다 규모도 훨씬 커졌다고 합니다. [네이트 백과사전 참고]
어쨌거나 상업적이었던 예술문화계의 사랑방이었던 간에 다방의 핵심적역할은 만남과 차를 마시는 장소라는 것이고 그 만남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만남, 반가운 친구와의 만남, 또는 사업을 위한 만남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화가 귀했던 시절엔 가난한 사업가의 메시지를 받아주는 충실한 비서역할을 다방이 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 시절 다방은 우리네 친근한 생활공간이었기에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이용할 수가 있었는데 그러나 요즘은 다방을 이용하기가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닙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어느 날부턴가 많은 다방이 순기능을 잃고 호색한의 매춘을 주선하기위한 전화 받는 곳으로 변질이 되어서 더 이상 우리네 친근한 사랑방이 아닌, 음침하고 야시시한 sex사업장이 되어 버린 것만 같습니다.
레지의 배려
1980년대 초. 커피 값이 200원이었던 시절. 이때까지만 해도 다방은 지금처럼 퇴폐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권투중계가 있는 날이면 자리를 꽉 채운 동네사람들이 TV를 보며 응원의 열을 올리던 동네사랑방이었고 하루 용돈 1,000원을 쥐고나온 마음만은 열혈청춘 노인들이 잠시나마 회춘을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이나 각선미를 자랑하는 원피스 차림의 레지들이 이들에게 젊음의 묘약을 선물했기 때문이죠. 그 묘약이란 다름 아닌 세대를 뛰어넘는 레지들의 배려였습니다.
한 무리의 노인들이 다방에 들어오면 이들을 반기는 마담은 마치 친정오라버니를 맞이하듯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 오-옵 화~”
비음이 섞여 애교가 철철 넘치는 마담의 이 인사로 노인들의 완고함이 봄눈처럼 녹아내리고 평소 팍팍하게 조여 논 도덕과 윤리의 나사를 잠시 느슨하게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 레지들이 너도나도 달려 나와 팔짱을 끼고 매달리고 그 젊음에 동(動)한 고목엔 서서히 청춘의 봄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죠. 그리고 잠시 어수선한 수다를 주고받은 후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면 이때부터 마담과 레지들의 버르장머리 없는(?)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배달 다니느라 팔다리어깨가 쑤신다고 엄살 아닌 엄살을 피우며 힘없는 노인들에게 그녀들의 몸을 맡기는 것이죠. 그러면 노인들은 젊디젊은 싱그러운 몸을 조심조심 주무르며 잠시나마 젊음의 향기에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안마라는 이름을 빌어서 말입니다.
그러다 20대 젊은 손님이 들어오면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갔죠. 그 당시 커피전문점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레스토랑에서 커피를 팔았지만 비쌌죠) 20대들도 다방이용을 많이 했습니다.
노인들은 그렇게 다방을 서너 군데 더 순례하면서 하루일과를 마쳤죠. (커피 값은 물론 더치페이고 마담에게 사주는 커피도 거둬서 사줬다는.......^^)
이것이 또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라 하여 페미니스트 분들이 비분강개할 런진 모르겠으나 그 당시 내 느낌으론 그들의 그런 모습이 천박하게 몸을 내돌리는 것 같은 그런 추한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세대를 뛰어넘어 맺은 친구들이 매일 한번 씩 치루는 일상의 다정다감함으로 느꼈다면 혹. 내가 나이브한 나머지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려고만 한 걸까요?
또 다른 연예인 마담, 레지
그 시절 마담과 레지는 작은 소도시에선 연예인이었습니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커피배달을 오가는 그녀들을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가게에 손님이 오거나 당구장에서 게임을 하면서 또는 혼자 가게를 지키다 심심하면 커피를 배달시켜서는 그녀들과 가벼운 농담 섞인 수다를 떨며 무료함을 달래곤 하였습니다.
비록 그녀들은 200원짜리 커피 2잔에 오라면 오고 뭇 사내들의 야릇한 눈길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막 대할 수 있는 값싼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오로지 자신만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가난한 가족을 위해 또는 목돈을 마련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독립하기 위한 그 시절 그녀들의 소박한 꿈은 결코 마초들이 가볍게 꺾을 수 있는 값싼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내들의 짓궂은 장난과 농담을 받아주며 삭이고 또 다리가 퉁퉁 붓도록 하루에도 수십 번씩 커피배달을 해야만 했지만 돈에 얽매어 업주로부터 또는 호색한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함부로 내돌리지 않았고 손님들 역시 그녀들과의 스킨십에서 넘지 말아야할 선은 어느 정도 지켰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개중엔 돈을 쫒아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하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숫자였고 대부분 노동(배달, 청소, 손님 대화상대)을 통해 착실히 돈을 모았던 것 같습니다.
술집에서 남자들의 막무가내한 성매매 요구에 지친 여자들이 다방에서 일하며 몸을 추스르기도 했습니다. 술집보다 일을 훨씬 고됐지만 업주의 성매매 강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는 여자도 있었지만 아예 다방에 눌러 앉아 목표한 적금을 다 붓고 가게를 차려 나가거나 은퇴를 하고 또는 시집을 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미모가 받쳐 주는 여자는 스폰서도 있었습니다. 스폰서라는 게 가끔 밥과 술을 사주고 한 달(31일을 꽉 채워야함)일을 마치고 잠시 쉴 때 여관 잡아주고 같이 지내는 거죠 머.
하지만 계약이나 서로간의 강제성이 없는 짧은 만남에 짧은 나눔이었지만 그래도 풋풋함은 있었다는.......
https://malasu.tistory.com/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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